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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레이드 걸 Feb 18. 2023

20대, 그 시절의 혼란한 맛처럼

닥터페퍼의 이국적 달콤함과 하루키의 울적한 단편소설 같았던 나의 화양연화

배수아 작가의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개정판을 구입했다.


독서를 좋아한다고 알려진 BTS의 리더, RM의 선한 영향력 덕분으로 오래전 절판되었던 책 한 권이 다시 출판 중이라는 기사를 읽고 난 뒤 왠지 모를 부러움에 단골 온라인 서점에 접속했다가 뒤늦게 개정판이 나온 것을 알게 되었고 망설일 겨를도 없이 곧바로 구매버튼을 눌렀다.


그 옛날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마음에 쏙 들었으나 전공필수 교재를 사는 것만으로도 쪼들렸던 가난한 대학생인 나는 대여연장 끝에 결국 그 책을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얼마간은 ‘도서출판 고려원’과 ‘배수아’라는 키워드가 종종 떠오르곤 했지만 곧 잊어버렸다.


졸업 후 계절이 바뀔 때 새 옷은 안 사도 사시사철 책은 마음껏 쟁여두는 조금 특이한 직장인이 되었지만 이제는 읽을 시간과 에너지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

그때 문득 생각난 고려원.

당연히 소설은 절판이 되었고 중고는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팔리고 있었다.

아무리 서점 플렉스를 즐긴다고 해도 그 돈으로 낡은 책을 사는 것은 영 내키지 않았다.

너에 대한 애정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하고 신간 알림 체크도 하지 않은 채 또다시 몇 년인가가 흘렀다.


그 무렵의 나를 떠올려보면 밝음과 우울함이 늘 동전의 앞뒷면인양 붙어있었는데 흡사 영화 서유쌍기의 청하와 자하 자매처럼 한 곳에 공존하되 교류하는 것은 불가능했던ㅡ 몹시도 기묘하고 이상한 시기였다.

가난과 불안한 미래, 무엇이든 서툴렀고 자격지심과 열등감으로 늘 주눅이 들어있고 금세 풀이 죽었다.

그런 우울한 자신을 감추려고 항상 분주히 몸을 움직이고 과장되게 웃고 별것 아닌 일에도 호들갑을 떨어댄 것이 남들 눈에는 그저 해맑은 어릿광대, 똥꼬발랄한 똥강아지 정도로 보였던 것 같다.

덕분에 나는 내가 미친 것은 아닌지 매 순간 고심했었고 그 물음은 거의 생의 반 정도를 달려와서야 답을 정할 수 있게 되었다.


답을 찾은 게 아니라 답을 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여유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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