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셔레이드 걸 Mar 02. 2024

커피가 없는 일주일

커피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꼭 일주일이 지났다.

열여섯 살,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생을 그 어떤 강아지보다 듬뿍 사랑받았던 우리 집 둘째였다.  

   

새벽부터 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봄이 때의 경험으로 아마 오늘이 고비겠구나 싶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나는 회사에 연차사용을 알렸고 중요한 회의가 있었던 동생은 어쩔 수 없이 출근을 했다.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차키를 챙겨 집을 나섰다.

다들 서울로 향하는데 나만 텅텅 빈 반대차선으로 달렸다.     


배밭에 도착해서 아버지와 얘기를 나눴다.

간밤에 한숨도 못 주무신 듯 잠긴 목으로 커피가 2~3분 간격으로 비명을 질러댔다고 하셨다.

얼굴과 발을 만져주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발끝차가웠다.


모포로 둘둘 싸서 인근의 집으로 옮겨왔다.

뜨끈한 아랫목에 눕혔는데 소변을 지렸는지 그새 담요가 축축했다.

얼른 새 이불을 꺼내고 배변패드를 깔고 물티슈로 엉덩이를 닦아주었다.

평소에 엉덩이며 발을 만지면 극도로 싫어하던 커피였는데 그저 축 늘어져있을 뿐이었다.

열심히 다리를 주물렀지만 이제는 콧김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멀지 않았구나... 이제 곧...

얼마나 지났을까 가늘게 뜨고 있던 눈이 커지고 숨이 거칠어지더니 다리에 경련이 일었다.

몇 초간 발버둥을 치고 숨을 크게 몰아쉬더니 이내 전원이 픽- 꺼진 인형처럼 고개가 툭 떨어지고 말았다.


커피야, 커피야...     

엎드려 통곡을 했다.

밤새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던 아이가 내가 지켜본 이후로는 낮은 신음소리 한번 내질 않았다.

떠날 때는 다들 한 번씩 크게 소리를 지른다고 하던데 그마저도 없었다.

유리멘털 언니가 걱정할까 봐 마지막까지 조용히 떠난 착한 강아지였다.     


봄이 때 미리 알아본 것이 도움이 되었다.

거의 흐느끼다시피 하면서 반려동물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었지만 익숙한 듯 당일 예약을 잡아주었다.     


차로 한 시간 정도를 달려 도착한 곳의 문을 열자마자 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미리 보내준 생전 사진이 로비 중앙의 스크린에 크게 띄워져 있었다.

보리를 보느라 집에 남은 엄마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진을 찍어 전송했다.     


오후 반차를 내고 택시를 타고 달려오는 중인 동생을 기다렸다.

그동안 커피는 이동식 침대로 옮겨졌다.

눈을 꼭 감고 있는 모습이 그냥 낮잠을 자는 것처럼 보였다.

쓰다듬으니 뻣뻣하고 차가워서 또 눈물이 흘렀다.


상담하는 내내 훌쩍거렸지만 수의를 입히고 관을 맞추는 것은 그만두었다.

아무리 슬퍼도 헛돈 쓰는 것은 아깝게 느껴졌나 보다.

그럼에도 분홍빛 분골포와 꽃장식은 추가했다.

그래도 여자아이니까 예쁘게 꾸며주고 싶었다.     


동생이 도착한 뒤에 염을 하고 제상을 차려둔 분향소에서 추모를 하고 화장하는 것을 지켜보고 분골까지- 한 시간 반정도가 걸린 것 같았다.

한 줌의 재로 변한 커피를 비단 주머니에 담아 그곳을 나오기까지.     


날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겨우내 꽁꽁 언 땅을 파기란 그야말로 맨땅에 삽질, 그 자체였다.  

왜 나에겐 남자형제나 배우자가 없을까... 같은 하나마나한 고민을 할 시간에 한 삽이라도 더 뜨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K장녀인지라 삽 끝으로 마구 땅을 다져내 흙을 퍼냈다.


오래간만에 근육을 썼더니 상완근이 저릿해 올즈음 적당한 깊이의 구덩이가 보였다.

조심스레 한지를 두 장 깔고 커피를 올려둔 뒤 다시 한지를 덮었다.

가족 모두가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집에 돌아와 얼굴을 씻으려는데 퉁퉁 부은 눈과 다크서클이 보였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봄이 때와 달리 마지막을 지켜봐 줄 수 있었다는 것과 제대로 배웅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의 누름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아직도 사진을 들여다보거나 생전의 기억들, 마지막 숨을 떠올리면 자책감으로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우리 강아지들은 여전히 나를 울리고 웃게 만든다.     


모든 강아지들은 무지개다리를 건너 강아지들의 천국으로 간다고 들었다.

커피가 그곳에 무사히 도착해서 먼저 가 기다리고 있던 봄이를 만나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란다.

목줄을 하지 않아도 되고 수액을 맞거나 쓴 약을 삼키지 않아도 되는 그곳에서, 오래도록,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매거진의 이전글 치약 뚜껑에 관한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