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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레이드 걸 Dec 18. 2023

치약 뚜껑에 관한 단상

특정 브랜드의 치약을 사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친구가 건네준 이탈리아 브랜드 치약의 샘플이었는데 양치 후의 개운한 느낌이 좋아서 곧장 인터넷으로 주문해 쓰게 되었다.


치약치고는 제법 가격이 있는 편이었지만 일반 치약보다 적게(정량은 완두콩알 정도) 쓰기도 하거니와 그래봤자 한 끼 외식비-갈비탕 한 그릇 가격 정도니 크게 무리하는 것은 아니라며 세뇌 중이다.


사실 가격보다도 치약, 비누, 샴푸, 바디클렌저 류의 생필품은 일 년에 두 번 명절이면 들어오는 LG생활건강의 컬렉션으로 충분히 차고 넘쳤기에 별개로, 골라서, 그런 품을 들이고 비용을 추가해 산다는 것은 우리 가족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이를 먹고 언젠가부터 취향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가족 공용의 것이 아닌 개인 전용 물건들로 집안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호텔에서 사용할법한 두툼한 수건이나 메모리폼 베개, 고급 젓가락, 텀블러 등등...


그것은 마치 OTT에서 타인과 계정을 공유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러나 취향이 반영된 재생목록과 그를 기반으로 엄선된 콘텐츠의 추천은 각자의 퍼스널리티나 다름없으므로 알고리즘이 오염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한편 나의 자랑스러운 치약은 접착제도 아닌데 나사처럼 뱅글뱅글 돌려야 하는 타입이라 뚜껑을 여닫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원터치 캡에 익숙해진 내 둔탁한 손가락은 매번 뚜껑을 놓치고 다시 주워서 돌리는 것의 반복이다.

바쁜 아침 시간을 낭비하고 짜증을 유발한다.


좋아하는 (고가의)치약이지만 늘 양손을 수고롭게 하는 점은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다.

다른 브랜드를 찾아볼까... 하는 마음까지 먹게 될 즈음 검지로 뚜껑의 위를 살짝 누르면 보다 수월하게 닫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약간의 수고로 세면대 바닥에서 녹색 플라스틱을 찾는 일은 멈췄고 나는 이 꿀팁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 의아할 따름이었다.


내 취향은 이렇게 왼손 검지손가락의 약 3초간의 희생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땡큐... 나의 검지.


오늘도 3분간 이를 닦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개인의 취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과연 어디까지 존중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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