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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난다 May 29. 2018

원두 보관하기

커피, 이야기가 되다.

"냉동실에 넣어 두면 되죠?”


냉장고에 원두를 보관하면 되는지 묻는 손님들이 가끔 있다. 연예인들의 냉장고에 들어 있는 음식으로 색다른 요리를 만들어 내는 TV 프로그램에서 보듯 냉장고는 신선식품은 물론 갈길 잃은 온갖 음식들의 안식처로 활용된다.

일반적으로 커피는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 신선도를 유지해서 장기간 보관하기에 적합한 방법 같지만 커피는 향기와 맛에 매우 민감한 식품이기 때문에 1~2주 이내에 소비할 만큼씩 구입해서 즐기는 것이 최선이다. 

잘 로스팅된 원두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좋은 향기를 발산하지만 안 좋은 냄새를 빨아먹는 훌륭한 탈취제이기도 하다. 로스팅된 원두를 확대해 보면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다공질의 구조를 띠고 있다. 이러한 구조로 인해 조미김이나 약병 등에 포함된 실리카겔과 같이 주변의 습기나 악취를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원두를 냉장고에 보관하면 냉장고 속의 음식물 냄새를 커피와 함께 맛보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냉장고 속에 있는 온갖 식품에서 뿜어져 나온 냄새 분자가 원두의 다공질 구조 속에 자리 잡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산소 투과를 100% 완벽하게 차단하는 포장재는 흔치 않기 때문에 비닐 등으로 아무리 꽁꽁 밀봉을 한다고 해도 기분 나쁜 냄새를 느끼게 된다. 냉장고에 넣어둔 빵이나 떡을 먹을 때 불쾌한 냄새를 느끼는 것도 같은 이유다. 

원두는 아로마 밸브가 부착된 커피 봉투에 넣어 햇빛이 들지 않는 서늘한 곳에 보관하면 로스팅을 한 날로부터 2주 정도는 충분히 좋은 향미를 즐길 수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변수는 공기(산소)와의 접촉이다. 커피 생두에는 13~17%의 지방이 함유되어 있는데 주로 비휘발성 지방류라서 로스팅을 한 원두에도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원두를 보관하는 동안 산소 접촉이 많아지면 산패가 더 빨리 일어나게 된다.

핸드드립 카페를 방문하다 보면 진공 기능이 없는 유리병에 원두를 넣어서 보관하는 곳이 있다. 인테리어 효과도 있고 직관적으로 좋은 원두를 사용한다는 인식을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보관의 관점에서 볼 때는 옳지 않다. 유리병에서 원두를 덜어내서 사용하면 그만큼의 공간을 공기가 차지하기 때문이다. 

진공이 가능하고 산소차단이 탁월한 밀폐용기가 없다면 가정에서는 아로마 밸브(원웨이 밸브, One way valve)가 달린 원두 봉투를 그대로 사용하면 된다. 원두를 먹을 만큼 덜어낸 다음 상단의 지퍼를 잠근 후 봉투 안의 공기를 배출시키면 안정적으로 보관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아로마 밸브라면 봉투 밖의 공기가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고 봉투 안은 원두에서 새어 나온 이산화탄소로 조금씩 채워질 것이다. 로스팅 과정에서 생성된 이산화탄소는 산소와 달리 산패와는 무관하다. 


나는 유리병과 알루미늄 증착이 된 원두 봉투에 각각 동일한 양의 원두를 담아 2주간 향미의 변화를 비교해 보면서 이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카페를 오픈한 후부터 지금까지 손님들에게 판매하는 원두 봉투 그대로 보관을 하면서 핸드드립 커피를 추출하고 있다. 독자들도 같은 방법으로 실험을 해 보면 공기와의 접촉이 많은 원두의 향미가 확실히 떨어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간혹 선물로 받은 대용량의 원두를 제때 처리하지 못해 난감해하는 경우가 있다. 커피는 일반적으로 3, 4주째부터 산패가 진행되는데 신선한 향미를 유지한 채 오랫동안 보관할 마땅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고민을 하는 손님들에게 커피를 반드시 마셔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말한다. 마시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커피를 분쇄해서 가까이 두고 향기를 맡으면 더 오랜 시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쓴 “로스팅 날짜”라는 글에 원두의 보관에 관해 간략하게 설명을 했었는데 최근에 원두 보관 방법을 궁금해 독자분이 있어서 내용을 좀 더 보충하여 새로운 글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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