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가 되다.
인도네시아는 브라질, 베트남에 이어 세계 3위의 커피 생산국이다. 생산량 중 아라비카 커피는 30% 정도이고 믹스커피 등 가공용으로 쓰이는 로부스타 커피가 70%를 차지한다.
인도네시아 커피는 카페에서 판매 중인 10여 종의 원두 중에서 판매량이 적은 편에 속한다. 풍부한 과일의 향미, 좋은 밸런스, 클린컵 등 소비자들이 매력을 느끼는 요소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보니 아프리카나 중남미 스페셜티 커피보다 인기가 덜 한 것 같다.
인도네시아 커피는 흙(Earthy), 풀(Grassy), 숲(Forest), 버섯(Mushroom), 시골스러운(Rustic) 등의 노트(Note)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무거운(Heavy) 바디감(Body)과 초콜릿의 쓰고 단맛(Bitter sweet)이 특징적이다.
인도네시아 커피의 독특한 향미는 커피가 식었을 때 더욱 도드라지는데 기겁을 하며 싫어하는 손님도 있고, 뚜렷한 마니아 층도 존재한다. 이러한 향미는 웻헐(Wet hull)이라는 인도네시아의 특유의 가공방식에 의해 형성된다.
커피의 과육을 제거하지 않고 건조하는 방식을 내추럴(Natural), 과육을 깨끗이 제거하고 파치먼트 상태로 건조하는 방식을 워시드(Washed), 과육을 일정 부분 남기고 건조하는 방식을 펄프드 내추럴(Pulped natural or Honey processing)이라고 부르는데 웻헐(Wet hull)은 변형된 워시드(Washed) 방식이다.
커피 체리의 과육을 벗겨낸 후 2~3일 발효를 거쳐 파치먼트(Parchment) 상태로 건조하는 것까지는 일반적인 워시드(Washed) 프로세싱과 같은데 웻헐(Wet hull)은 건조 과정에서 생두의 수분이 40% 정도 되면 파치먼트(Parchment)를 제거(Hulling) 한 후 생두 상태로 2차 건조를 한다.
생두 상태에서 2차 건조를 하기 때문에 먼지, 빗물, 흙탕물 등이 생두에 배어들어 인도네시아 커피 특유의 향미가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가공한 생두는 눈으로 보기에도 색이 진하며 균일하지 않고 로스팅 후에도 색깔이 들쭉날쭉하다.
인도네시아 커피의 이러한 가공 방식은 특유의 향미를 만들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비가 잦은 자연환경 속에서 건조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된 것이다. 또한 열악한 노동환경과 부족한 가공시설로 인해 제대로 된 관리가 힘든 상황에서 서서히 정착되어 온 것이기도 하다. 이는 더치커피나 인도 몬순 커피가 특유의 향미를 가지게 된 과정과 유사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 커피는 만델링으로 대표되지만 지역과 가공방식에 따라 다양한 커피가 있다. 카페에서 판매되었던 인도네시아 커피로는 만델링, 가요마운틴, 플로레스 바자와, 술라웨시 토알코 자야, 와하나 하니 내추럴 등이 있다.
만델링과 가요마운틴, 플로레스 바자와는 전통적인 웻헐(Wet hull) 방식으로 가공되어 인도네시아 커피 특유의 향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 중에서도 수마트라 섬 북쪽의 만델링 커피는 그 향미가 더욱 강하다.
술라웨시 토알코 자야는 100% 워시드(Washed), 와하나 하니 내추럴은 100% 내추럴(Natural) 방식으로 가공된 커피로 중미의 스페셜티 커피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이러한 커피들은 전통적인 웻헐(Wet hull)과는 다른 가공방식을 적용하여 생산된 것으로 기존의 인도네시아 커피에 비해 평가가 좋고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커피 농부들에 대한 교육, 과학적인 가공방식과 최신 시설의 도입으로 양질의 커피가 생산되는 것은 커피농부나 소비자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으로 지구 상의 커피가 모두 비슷한 향미를 갖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괜한 걱정을 하게 된다. 과일의 좋은 신맛과 단맛, 향긋한 꽃향기가 가득한 커피만을 격찬하고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커피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태도를 보게 되는 건 무슨 이유일까?
웻헐(Wet hull) 방식으로 가공된 인도네시아 커피는 음악으로 치면 발라드와 댄스곡을 주로 부르는 대중적인 가수가 아니라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언더그라운드 가수이다. 음식으로 치면 찰지고 기름진 광어회가 아니라 오랜 시간을 묵혀 보통사람은 즐기기 힘든 홍어회와 같다. 에티오피와 예가체프, 인도네시아 만델링을 각각 추출하여 동시에 번갈아서 맛을 보면 이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려는 자세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다소 시골스럽고 거친 인도네시아 커피의 향미가 전통적인 모습 그대로 오래오래 보존되고 더 많은 소비자들이 찾게 되기를 바란다.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는 흐린 날의 오후.
강하게 볶은 만델링 커피 한잔이 주는 묵직하고 깊은 향기가 어울리는 시간이다.
[Roasting Point]
인도네시아 커피는 주로 2차 크랙의 초반까지 로스팅을 하는데 2차 크랙의 정점을 넘겨 넉넉하게 로스팅을 해도 쓰고 진한 초콜릿의 향미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