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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난다 Jun 03. 2017

로스팅 후 커피가 제일 맛있는 시점은?

커피, 이야기가 되다.

“며칠 째가 제일 맛있어요?”


로스팅을 한 지 얼마쯤 지나야 제일 맛있는지 원두 봉투 뒷면에 찍힌 로스팅 날짜를 살피며 물어 오는 손님들이 꽤 있다.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면 누구나 꼭 한 번은 갖게 되는 궁금증이다.

늘 그렇듯 나의 답은 뻔하다.


“글쎄요. 다들 입맛이 달라서.”


손님들이 보기에는 로스터리를 운영하는 주인이 뭐 저러냐며 의아해하겠지만 수많은 손님들을 접해 본 나로서는 그 이상 적절한 대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핸드드립을 오랜 시간 즐겨온 손님들은 대체로 로스팅 날짜에 관대하다. 그와 반대로 갓 입문한 손님들은 로스팅 날짜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대부분 로스팅 한 날짜가 오래되지 않은 원두를 원한다. 날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왕초보 홈바리스타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재미가 있다. 마치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을 장난스럽게 놀리는 어른이 된 심정이다.

카페에 들어온 그들은 원두 봉투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로스팅 한 날짜가 최대한 가까운 것을 고른 후 바 테이블에 앉는다. 운이 좋아 당일 볶은 커피를 발견하였을 때는 무슨 횡재나 한 것처럼 표정이 밝다.


“와, 역시! 사장님이 내려주는 커피가 제일 맛있어요.”


맛보기로 내려주는 커피를 한 잔 들이 킨 후 하는 말이다.


“뭐가 그래요. 커피가 다 똑같지.”


“안 그래요. 똑같은 커피인데 내가 집에서 내리면 절대로 이 맛이 안 난단 말이에요.”


핸드드립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이면 무수히 많이 나눴을 대화다. 나는 손님이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가 로스팅을 한 지 일주일이 지난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커피를 즐기는 시간이 조금 지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날짜에 극도로 민감한 시점에 굳이 그 사실을 알려서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제일 맛있는 빵은 어떤 빵일까? 덕후 수준의 빵 애호가들에게 물어보면 하나같이 갓 구운 빵이라고 말한다. 빵을 즐겨 먹는 편이 아니지만 나 또한 갓 구운 따뜻한 빵은 진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갓 구운 빵이 맛있는 이유는 아마도 밀가루가 갈변하며 생성된 고소한 향미가 생생하고 풍부하게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갓 볶도 커피도 빵처럼 신선하다. 게다가 추출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을 수밖에 없다. 로스팅을 한 원두의 조직을 확대해 보면 구멍이 숭숭 뚫린 다공질의 구조를 띠고 있다. 꿀이 가득 묻어 있는 벌집을 연상해 보면 이해가 쉬운데 다공질의 벽에 흡착되어 있는 커피 성분이 뜨거운 물에 녹아내려 한 잔의 커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커피의 다공질 속에는 로스팅 과정에서 생성된 이산화탄소가 가득 차 있는데 뜨거운 물을 주입하면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면서 커피 가루가 호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우리는 이것을 ‘커피빵’ 혹은 ‘머핀’이라고 부른다. 빵빵해진 커피 가루에 물을 주입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한 잔의 커피를 얻기 위한 일련의 과정들을 기꺼이 수용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로스팅을 한 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커피 가루가 부풀어 오르는 현상이 잦아드는데 이는 원두를 보관하는 과정에서 다공질 속의 이산화탄소가 점점 빠져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커피가 부풀어 오르는 정도를 보고 로스팅 한 날짜가 얼마나 되었는지 혹은 얼마나 신선한 커피 인지 가늠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사실만으로 맛을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커피는 마시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해석이 제각각이고 앞서 손님과의 대화에서 예를 든 것처럼 인간의 감각이라는 것이 선입견이나 편견에 사로잡혀 터무니없는 결론을 내리는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하는 유명 맛 칼럼니스트들을 떠올려 보라. 간이 심심해야 재료 본연의 맛이 느껴져서 좋다는 전문가도 있고, 오감을 자극하는 양념과 조미료에 찬사를 보내는 전문가도 있다. 그처럼 맛에는 정답이 없다.


커피에서 우리가 맛이라고 느끼는 것의 실체는 향기이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맛은 신맛, 단맛, 쓴맛, 짠맛, 감칠맛 다섯 가지밖에 없다.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는 1,000여 가지가 넘는 커피 성분의 실체는 대부분 향기인데 우리는 그것을 맛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코를 막고 양파를 먹으면서 사과가 아니냐고 말하는 실험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커피도 코를 막고 마셔보면 평소에 느끼던 맛이 아니다. 코에서 손을 떼고 공기를 흡입하는 순간 ‘이게 커피지!’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갓 볶은 커피보다는 일정 시간이 지난 후의 커피 향기가 훨씬 강하고 풍부하다. 로스팅을 한 지 1일째, 7일째 된 원두 봉투를 열어 비교해서 향을 맡아보면 분명히 차이가 난다. 장담하건대 어지간히 무감각한 사람들도 분명히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시간이 지날수록 향기 분자의 연결고리가 점점 약해지고 쉽게 깨지기 때문이다. 작게 나눠져 가벼워진 향기 분자들은 저마다 매력적인 향기가 되어 공기 중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데 우리는 이 과정을 숙성이라고도 부른다.

방금 로스팅을 끝낸 커피를 바로 추출해서 마셔보면 텁텁하거나 메탈릭(metallic)하다. 떫은 감을 먹었을 때처럼 혓바닥이 쉽게 마르고, 금속에 혓바닥을 댄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는 이유는 로스팅 과정에서 생긴 미세한 그을음, 연기와 같은 자극적인 향기, 그리고 다공질 속에 가득한 이산화탄소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핸드드립 커피를 오랫동안 마셔온 사람들은 로스팅을 한 후 일정한 시간이 지난 커피를 찾는데, 일반적으로 로스팅을 한 지 3일 이후부터 2주까지를 커피의 향과 맛이 제일 좋은 시기라고 평가한다.


방부제를 섞지 않은 빵은 며칠 지나지 않아 곰팡이가 핀다. 먹기 좋게 잘라놓은 사과와 배는 금방 색이 변한다. 하지만 커피는 200℃가 넘는 고온에서 로스팅을 하기 때문에 살균이 완벽하고 수분도 거의 없다. 또한 원두의 다공질 속에 꼭꼭 갇혀 있는 이산화탄소는 산소의 침투로 인한 산패(산화)를 지연시켜 준다.


커피를 로스팅 한 지 3, 4주 정도가 되면 본격적으로 산패가 진행되는데 커피 특유의 향미를 내는 성분이 변질되므로 원두는 최대한 공기를 차단해서 보관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기 중에 노출된 상태의 원두는 며칠만 지나도 향미가 약해지고 쩐내가 난다. 하지만 완전히 밀봉된 상태로 보관된 원두는 상당히 오랜 시간 좋은 향미를 유지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즐겨 마셨던 유명 프랜차이즈의 아메리카노 커피 중에는 로스팅을 한 지 몇 달이 지난 것도 많다는 것이다. 또한 대형 쇼핑몰의 원두 판매대를 살펴보면 유통기한이 1년인 것이 대다수다. 게다가 커피 좀 한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진문물을 배워오겠다며 찾아가는 일본 유명 커피회사의 아카데미 과정에서는 로스팅을 한 지 한 달이 훌쩍 지난 커피로 교육을 하기도 한다. 

나는 오래된 커피를 마셔서 배탈이 났다는 사람을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커피 서적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다. 우리가 너무 예민하게 커피를 즐기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돌이켜 볼 일이다.


‘로스팅을 한 지 얼마쯤 되어야 맛있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구입한 원두를 얼마나 잘 보관하는지에 달렸다'는 것으로 대신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맛이 있고 없고는 본인의 주관적인 영역이니 본인이 맛있게 느끼는 적절한 포인트를 찾아내면 되는 것이다. 



[올바른 원두 보관법]

1. 공기를 최대한 차단한다.

2. 낮은 온도와 습도에서 보관한다.

3. 빛을 차단한다.

4. 분쇄한 채로 보관하지 않는다.

5. 원두는 2~3주 이내에 소비할 만큼만 구입하고 장기보관을 위해 냉장, 냉동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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