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커피 꽃

커피, 이야기가 되다.

by 커피난다

3년 전 여름.

20cm도 안 되는 커피 묘목 두 개를 선물로 받았는데 한 그루는 가까이 사는 고모에게 드리고 하나는 카페에서 키웠다. 작년 여름에 꽃봉오리가 몇 개 나오길래 내심 기대를 했지만 그 상태로 1년을 보내고서야 꽃을 보여주려는 도도한 녀석.

7-1.jpg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카페에서 키운 커피나무는 키가 1m 정도까지 자랐는데 고모 집에 있는 것은 거의 그대로라는 것이다. 쌍둥이처럼 똑 같이 생긴 녀석들이 어찌 이리도 다르게 자랐는지 모르겠다. 고모는 평소 베란다에서 이런저런 화초를 잘 가꾸고 있지만 나는 식물을 화분에서 키우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화초에 대한 지식도, 관심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커피 꽃을 내가 먼저 보게 된 상황이 좀 의아하다.

7-2.jpg

내가 한 일이라고는 커피묘목을 받자마자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화분에 바로 옮겨 심은 것이 전부다. 젓가락처럼 가느다란 커피묘목을 엄청나게 큰 화분에 옮겨 심은 모습을 본 손님들은 카페 주인이 이 방면에는 정말 젬병이라 생각했는지 다들 한 마디씩 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무심코 벌인 일로 커피나무의 뿌리가 자유롭게 뻗어 나가 튼튼하게 자란 사실을 안 손님들은 이제 더 이상 입을 대지 않는다.

7-33.jpg

커피 꽃이 핀 다음날, 조용한 토요일 오후에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을 보고 나는 정말 놀랐다. 그 손님은 내게 커피 묘목을 선물해 주었던 후배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경기도 양평에서 은가비라는 로스터리를 운영하고 있는데 2년 만에 카페에 들른 날이 커피 꽃이 핀 다음 날이라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커피 꽃 향기가 작은 울림이 되어 은가비에게 전해졌나 보다.


은가비가 기르던 묘목은 안타깝게도 양평으로 옮긴 후에 모두 얼어 죽었다고 한다. 여기 있을 때는 잘 자랐는데 그곳의 겨울을 견디지 못했다고 했다. 은가비는 로스팅 머신을 디드릭(Diedrich) 12kg으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원두 납품 사업을 하고 있다. 가까이 있는 큰 업체들을 제치고 여의도의 유명 투자 회사에 스페셜티 커피를 납품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하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7-4.jpg

월요일 아침 일찍 카페 문을 열고 제일 먼저 커피 꽃을 찾았다. 녀석은 주말 사이 활짝 피어 있었고 다른 가지의 꽃봉오리들도 꽃을 피울 준비를 하는 듯 제법 부풀어 있었다.


로스팅을 끝내고 케이윌의 ‘꽃이 핀다’를 틀었다. 손톱만큼 작은 커피 꽃 한 송이가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며칠 만에 지고 없을 하얀 꽃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그립기도 하고, 살면서 무언가를 이루어보려는 우리들의 모습이 떠올라 애잔하기도 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로스팅 후 커피가 제일 맛있는 시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