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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난다 Jun 05. 2017

커피 꽃

커피, 이야기가 되다.

3년 전 여름. 

20cm도 안 되는 커피 묘목 두 개를 선물로 받았는데 한 그루는 가까이 사는 고모에게 드리고 하나는 카페에서 키웠다. 작년 여름에 꽃봉오리가 몇 개 나오길래 내심 기대를 했지만 그 상태로 1년을 보내고서야 꽃을 보여주려는 도도한 녀석.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카페에서 키운 커피나무는 키가 1m 정도까지 자랐는데 고모 집에 있는 것은 거의 그대로라는 것이다. 쌍둥이처럼 똑 같이 생긴 녀석들이 어찌 이리도 다르게 자랐는지 모르겠다. 고모는 평소 베란다에서 이런저런 화초를 잘 가꾸고 있지만 나는 식물을 화분에서 키우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화초에 대한 지식도, 관심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커피 꽃을 내가 먼저 보게 된 상황이 좀 의아하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커피묘목을 받자마자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화분에 바로 옮겨 심은 것이 전부다. 젓가락처럼 가느다란 커피묘목을 엄청나게 큰 화분에 옮겨 심은 모습을 본 손님들은 카페 주인이 이 방면에는 정말 젬병이라 생각했는지 다들 한 마디씩 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무심코 벌인 일로 커피나무의 뿌리가 자유롭게 뻗어 나가 튼튼하게 자란 사실을 안 손님들은 이제 더 이상 입을 대지 않는다. 

커피 꽃이 핀 다음날, 조용한 토요일 오후에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을 보고 나는 정말 놀랐다. 그 손님은 내게 커피 묘목을 선물해 주었던 후배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경기도 양평에서 은가비라는 로스터리를 운영하고 있는데 2년 만에 카페에 들른 날이 커피 꽃이 핀 다음 날이라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커피 꽃 향기가 작은 울림이 되어 은가비에게 전해졌나 보다. 


은가비가 기르던 묘목은 안타깝게도 양평으로 옮긴 후에 모두 얼어 죽었다고 한다. 여기 있을 때는 잘 자랐는데 그곳의 겨울을 견디지 못했다고 했다. 은가비는 로스팅 머신을 디드릭(Diedrich) 12kg으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원두 납품 사업을 하고 있다. 가까이 있는 큰 업체들을 제치고 여의도의 유명 투자 회사에 스페셜티 커피를 납품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하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월요일 아침 일찍 카페 문을 열고 제일 먼저 커피 꽃을 찾았다. 녀석은 주말 사이 활짝 피어 있었고 다른 가지의 꽃봉오리들도 꽃을 피울 준비를 하는 듯 제법 부풀어 있었다. 


로스팅을 끝내고 케이윌의 ‘꽃이 핀다’를 틀었다. 손톱만큼 작은 커피 꽃 한 송이가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며칠 만에 지고 없을 하얀 꽃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그립기도 하고, 살면서 무언가를 이루어보려는 우리들의 모습이 떠올라 애잔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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