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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난다 May 25. 2017

또 하나의 카페

커피, 이야기가 되다.

“비싼 케냐 커피가 있어서 시켜먹었는데 맛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며칠 전 허영만 작가의 커피 만화책을 손에 든 채 ‘게이샤 한 잔 주세요.’라며 들어왔던 손님의 표정이 어둡다. 


커피에 문외한인 손님. 

만화책에 소개된 ‘게이샤’라는 커피가 너무 먹고 싶었던 나머지 핸드드립 카페로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시킨 커피가 ‘게이샤’였다. 안타깝게도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 원두는 예약 주문으로만 판매하던 터라 내어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 로스팅을 하면 따로 연락을 하기로 했다. 그 날 이후 손님은 커피의 마력에 빠져 온 동네 카페 투어를 다니고 있나 보다.


“오렌지 맛도 나고, 망고 맛도 난다고 벽에 크게 붙여 놓았길래 마셨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7,000원이나 하던데.”


핸드드립은 아니었다는 손님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니 아마도 케냐 싱글 오리진 아메리카노를 마신 것 같았다. 케냐 원두를 에스프레소로 내린 후 거기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만든 아메리카노.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보다는 아무래도 농도가 연하다 보니 제대로 된 향미를 느끼기 힘들었을 것이다. 

원두 종류가 몇 가지나 있더라는 손님의 말을 듣고는 아마도 최근에 새로 생긴 카페인가 보다 생각했다. 근처에는 여러 종류의 싱글 오리진 아메리카노를 판매하는 카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카페를 시작할 때 주변에 다섯 개 정도의 카페가 있었는데 불과 몇 년 사이에 열 개 정도가 더 생겼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만 세 곳이다. 그리고 몇 달째 어마어마한 콘크리트 덩어리를 빚어가며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려는 듯 대단한 형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가 하나 더 영업을 시작할 것 같다.


작은 원두 판매점이라는 생각으로 부담 없이 시작한 일이라 그런지 주변에 카페들이 하나 둘 들어서도 전혀 긴장하거나 걱정해 본 적이 없다. 그들도 나처럼 각자의 색깔로 소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바로 옆에 자리 잡는다 해도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일하고,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다. 치즈 케이크도 없고, 메뉴라고는 핸드드립 커피 하나뿐이다. 게다가 아침 6시에 문을 열고, 저녁 6시면 빨리 문을 닫고 도망갈 준비를 한다. 그게 무슨 카페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카페를 한다. 

카페 창업 상담을 오는 사람들에게 나는 카페를 하려는 이유를 먼저 묻는다. 커피를 너무 좋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차라리 그 창업비용으로 평생 동안 멋진 카페를 찾아다니며 좋아하는 커피를 실컷 마시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차라리 선술집을 하라며 업종 변경을 권한다.


소규모의 카페들이 수없이 생기고 사라지는 동안 간판, 인테리어, 카페용품 업자 그리고 건물주들이 수혜를 입었다. 대형 프랜차이즈와 비슷한 컨셉과 메뉴로는 그 일을 오래 할 수가 없다. 거대 자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는 신화일 뿐 자신에게는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요즘은 어느 카페를 가든지 커피가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 생두를 선별하고, 생두의 특징에 맞게 로스팅을 하고, 추출을 하는 모든 과정이 공개되어 있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커피보다는 자신의 삶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시장에 진입해야 한다. 자신이 카페에서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인지, 손님이 없는 시간에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독서, 운동, 예술, 공예, 요리…….

뭐든 자신이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곳을 카페라고 부르면 어떨까? 커피는 그 일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자영업자로 살아가기 힘든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 이상적인 삶을 살 수도 있다. 소상공인의 신화는 그렇게 쓰는 것이라 생각한다. 



* 싱글 오리진(Single origin) 커피 : 한 가지 종류의 원두만으로 추출한 커피


* 블렌딩(Blending) 커피 : 두 가지 이상의 원두를 섞어서 추출한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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