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가 되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커피체리(Coffee cherry)라고 부르는 열매의 씨앗이다. 이 초록색의 씨앗을 생두(Green Bean)라고 부르는데 생두를 가열하면 흑갈색의 원두(Roasted Bean)가 된다. 분쇄되지 않은 상태의 원두를 홀빈(Whole Bean)이라고 부르며, 모든 과정의 커피 알갱이를 통틀어 빈(Bean)이라고 부르면 적절할 것이다.
커피가 갈색이 아니라 원래 초록색의 생두라는 사실이 무척 신기했고, 그때의 호기심으로 커피가 일상이 된 삶을 살고 있다. 평소에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맛에 반했다기보다는 생두가 원두가 되는 과정, 즉 커피 로스팅에 큰 재미를 느꼈었던 것 같다.
프라이팬, 수망을 거쳐 초보 수준의 자작 로스터로 로스팅을 하면서 마치 세상에서 최고의 로스터가 된 듯 의기양양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인들에게 후한 인심으로 나눠준 그때의 커피가 과연 무슨 맛이 났을지 무척 궁금하다. 이제 어느 정도 평가를 해 볼 수 있을 만큼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다.
커피 로스팅이라는 말 대신에 ‘볶음’이라는 순우리말, ‘배전’이라는 일본말을 커피업계 종사자나 소비자들이 혼용하는데 어떤 용어든 커피 로스팅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 마음에 드는 말을 사용하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로스팅, 볶음, 볶음도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지만 일본말이라서 배전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그런 논리라면 일본에서 만들어진 핸드드립 기구를 쓸 때마다 가치관의 혼란에 빠져야 하기 때문이다.
빈(Bean)에 일정 시간 열을 가하면 화학적, 물리적 변화가 일어난다. 빈(Bean)의 색이 변하거나 커피라고 느끼는 맛이 생기는 것들이 화학적인 변화의 대표적인 예다. 로스팅 후에 빈(Bean)의 무게가 줄고, 부피가 커지는 것은 물리적인 변화인데 이 과정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이 1, 2차 크랙(Crack)이다.
커피 생두를 로스팅하는 과정에서 두 번의 소리가 나는데 우리는 그것을 크랙이라고 부른다. 초록색의 커피 생두는 10~13% 정도의 수분을 함유하고 있다. 생두를 가열하면 그 수분이 기화되어 생두 내부의 압력이 높아진다. 높은 압력을 견디지 못한 생두의 조직이 터지면서 소리가 나는 것이 바로 1차 크랙이다. 2차 크랙은 빈(Bean) 속에 가득 찬 탄산가스가 배출되고, 많은 열을 받은 커피 조직이 뒤틀리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커피의 크랙(Crack)은 딱딱한 옥수수 알갱이가 열을 받아 팝콘이 될 때와 같은 이치로 이해할 수 있다.
화력조절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지만 카페에서 사용하고 있는 로스팅 머신의 경우 1차 크랙은 9분대 192~196℃, 2차 크랙은 11분대 218~222℃ 정도에 일어난다. 크랙이 발생하는 온도의 범위가 넓은 것은 원산지별 생두의 밀도와 수분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예가체프는 1차 크랙이 끝나는 지점에, 케냐는 2차 크랙이 시작되기 직전, 인도네시아 만델링은 1차 크랙 초반에 배출을 하는데 손님의 요구나 생두의 특성에 따라 배출 온도가 바뀌기도 한다.
“강배전 커피는 없나요?”
로스팅의 정도에 대해 손님들이 질문을 해 올 때마다 명확하게 대답을 하기가 쉽지 않다. 손님이 말하는 강한 볶음의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커피 로스터들은 주로 일본이나 미국에서 유래된 8단계로 로스팅 과정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카페에서 원두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비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강, 중, 약 정도로 로스팅을 구분한다. 그런데 문제는 강, 중, 약 볶음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나는 2차 크랙의 정점까지 커피를 볶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2차 크랙의 정점까지 로스팅을 하면 강하게 볶았다는 게 나의 인식이다. 그런데 유명한 다크 로스팅 전문가에게서 로스팅을 배웠다는 어느 손님은 2차 크랙이 끝난 후에도 한참을 더 볶는다고 한다. 2차 크랙의 정점까지 로스팅을 한 것은 자신이 입장에서는 약한 로스팅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독자 여러분들도 이해할 것이다. 커피가 기호식품이듯 로스팅에 대한 견해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이는 커피에 대한 재미나는 이야기들이 많아지고, 언제부터인가 커피를 주제로 대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손님의 질문을 떠올려 보자.
“강배전 커피는 없나요?”
이때, 나는 손님과 나의 로스팅 기준을 따져보려는 생각을 멈추고 이렇게 대답한다.
“여기 커피 중에서 가장 많이 볶은 건 2차 크랙 초반까지 볶은 거예요.”
“어떤 거죠?”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바자와, 콜롬비아 나리뇨 수프리모인데 둘 다 223℃에 배출했습니다.”
손님은 충분히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1, 2차 크랙(Crack)은 모든 커피의 로스팅 과정에서 반드시 일어나는 물리적인 변화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핸드드립을 직접 하지 않더라도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핸드드립이나 로스팅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을 기회가 많다. 커피를 마시는 행위 그 자체로도 충분히 좋지만 커피 로스팅에 대해 귀를 기울여보면 커피와 함께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기다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