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이라는 대체 OS

로컬단상

by 소보로

로컬에 미래가 있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로컬에 답이 있다고도 한다. 정말 그럴까? 실제로 지역으로 향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 물론 그들 전부가 지역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해서 로컬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도시를 기반으로 어떻게든 성장사회를 이끌어 나가려는 정부와 기업의 선택은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점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는 부동산 가격이나 주식 및 가상화폐 투자 열풍은 어떻게 보면 성장의 한계를 돌파해보려는 역설적 방증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로컬의 발견은 출구를 잃어버린 세대의 몸부림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얼마 전 한국은 국제사회로부터 공식적으로 ‘선진국’으로 인정받았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을 선진국 카테고리로 분류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이른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지위로 승격한 초유의 일이라 국제사회에서도 화제가 됐었다. 과거 산업성장 시대부터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목표로 삼았던 선진국의 꿈을, 드디어 이룬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 현실에는 당장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는 미래를 더욱 불투명하고 암울하게 만든다. 하루하루를 스스로 벌어서 버텨야하는 이른바 자영업자나 프리랜서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혹자는 말한다. 신자유주의 세상이 도래했으니 당연한 거라고. 무한 경쟁 사회. 각자도생의 시대에서 당신들이 낙오한 것이라고. 과연 그럴까? 신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란 철저히 시장의 자유다. 바꿔 말해 자본의 자유다. 돈이 있으면 얼마든지 다른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 IMF 외환위기 전과 후의 한국사회는 성질이 전혀 다르다. 대개 87년 민주화운동을 한국사회의 분수령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크지만 실제로 우리 삶에 밀접하게 작동한 기재는 IMF 외환위기 후 신자유주의 체제이다. 말하자면 한국 사회의 OS가 바뀐 셈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모르는 건지 아니면 모른 척 하는 건지 OS문제는 유독 외면한다. 오늘날 벌어지는 격차사회 문제는 바로 이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OS에서 기인하는데 부팅을 하는 순간, 현재 나 자신이 비록 집도 없고 돈도 없지만 언제가 나도 열심히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착각 패치를 장착하게 된다.


지금 지역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려는 청년층은 바로 이러한 OS를 지우고 새로운 OS로 갈아탄 사람인 셈이다. 그것을 《오래된 미래》의 저자이자 로컬경제 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언어로 바꿔 쓰면 ‘지역화’이다. 폭주하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자그마한 균열을 만드는 일이 바로 로컬화다. 그러니까 지역을 선택한다는 건 지역에서 기존의 성장논리대로 새로운 경쟁을 벌이는 일이 아닌 것이다. 나와 내 주변 더 나아가 환경까지 살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삶의 태도에 가깝다.


그런데 지금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정부 지원 주도로 이루어지는 로컬혁신이나 로컬크리에이터 양성 혹은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진다. 물론 관련 사업 당사자들의 고충은 이해할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예산을 투입해 지역에 일자리를 확보하고 인구 유출을 막는 동시에 새로운 인구를 유입시켜 소멸위기의 지역을 되살리는 일이 급선무일 것이다. 그래서 빠른 성과를 요구한다. 그런데 이러한 로컬 활성화 사업은 그 성과를 산술적으로 치환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그런 사정을 모를 리는 없을 것인데 행정이나 정치적 관성을 과감히 깨고 이왕 청년을 지원하고, 지역을 살린다고 마음먹었다면 전향적 선택도 필요할 듯싶다. 단기간에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그러한 태세 전환이 훨씬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 그래야 로컬은 삶의 대안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도시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로컬은 상생의 OS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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