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은 해법이 아닌 방향

로컬단상

by 소보로

오늘날 도시는 무엇일까. 도시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정의를 내리든 가장 중요한 바탕은 ‘삶의 터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삶의 터전으로서 도시가 위협받고 있다. 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주거 불안정, 저성장 구조가 가져온 고용 불안,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쌓이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도시가 자본주의 플랫폼이 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경제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달려온 결과다. 물론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가혹한 시장 경제 구조에서 도시의 풍요를 만끽하고 살아가는 계층도 있다. 부유층의 커뮤니티는 도시에서 더욱 공고화한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된 시장 경제에서 돈을 가진 사람은 더욱 안락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벌어진 격차이다. 경쟁에서 탈락했으니 격차나 차별화는 당연하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돈다.


한편 도시 집중화와 인구감소로 지방은 쇠퇴 일로에 있다. 도시의 번영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흔히 도시에 일자리가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지방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순서가 틀렸다. 지방의 재화를 도시가 흡수하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오늘날 행정적으로 지방자치제가 자리 잡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지방은 도시의 식민지나 다름없다. 다시 말해 도시가 지방의 자원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에 지방에 일자리가 없는 것이다.


도시가 지방의 자원을 흡수하면 지방도 쇠퇴하지만 그렇다고 도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만큼의 다른 문제가 반드시 발생한다. 단적인 예가 바로 주택 문제이고 교육 문제이다. 이미 지방의 대학들은 일찍부터 소멸 위기를 겪어 왔고 이윽고 올해에는 지방 국립대조차 정원미달 사태가 일어났다. 국가 차원에서 보자면 결과적으로 도시는 지방의 문제를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된다. 즉 지방 소멸은 도시에도 타격이란 이야기이다.


일본의 철학자 우치다 타츠루는 <로컬리즘 선언>이란 책에서 현재 일본의 청년들이 탈도시를 선언하고 지역을 새로운 거점으로 확보하는 현상을 ‘엑소더스’에 비유한다. 생존을 위해 도시로부터 탈출(이주가 아니라)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성장 위주의 자본주의 정책은 이미 한계에 봉착했음에도 여전히 성장이란 가치를 내세우는데 결과적으로 도시 하층민 즉 가장 밑바닥의 청년층을 착취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치다는 지역공동체에 주목한다. 자본주의 시대 이전부터 수백 년을 이어왔던, 돈이 오가지 않더라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이 여전히 지역에서는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그 배경으로 지역의 풍부한 ‘자원’을 꼽는다. 그것이 삼림자원이든 환경자원이든 전통의 가치를 이어가는 문화적 자원이든 뭐든지 그것을 지키는 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청년들은 지역의 유휴공간을 재생하여 정주할 수 있는 환경을 확보하고 지역 자원을 발굴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한 일이 바로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올해의 키워드는 ‘로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지역에서 새로운 삶의 대안을 모색하는 청년들이 증가했다. 지역혁신가, 로컬크리에이터, 로컬벤처 등 부르는 말은 다르지만 이들은 도시를 떠나 로컬을 재구성하고 있다. 그간 외부인의 유입을 반기지 않았던 지방 커뮤니티도 변화가 일어났다. 자신들의 고장이 소멸할 수 있다는 위기를 실감한 것이다. 이주 청년들을 적극 환대하고 그들과 함께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지자체도 적극 나서고 있고 중앙정부도 그들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성공(?) 사례가 나오자 이른바 가치 투자(임팩트 투자) 기관까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쯤에서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기존의 성장 위주 경제 시스템의 한계를 느끼고 지역에서 대안적 삶을 모색한 결과가 다시 자본주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투자’를 받아 기업 상장을 향해 발돋움 하는 것이라면 뭔가 이상하지 않나? 심지어는 매출액 1조를 목표로 하는 로컬 유니콘이란 말도 나오고 있다. 로컬을 선택해 탈도시를 한다는 건 시장주의 시스템에서 벗어나려는 것이었는데 다시 시스템 속으로 편입한다고?

물론 로컬의 삶이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인간미를 잃고 폭주하는 자본주의 기차에서 내려 자신만의 인생 속도를 찾아가는 여정이 로컬 이주의 시작점이었는데 최근에 벌어지는 로컬 사업은 그야말로 또 다른 ‘아이템 찾기’의 일환이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다양한 가치관이나 개성을 존중하기 위해 대안적으로 발굴한 로컬의 삶이 다시 자본 증식을 향해 달려가는 삶이라면 본말이 전도된 게 아닐까 싶다.


우치다 타치루가 제안한 대안은 로컬의 교육공동체 구축이다. 교육공동체라고 해서 뭔가 공부만 하는 곳은 아니다. 독서모임이든 소규모 강좌이든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으로 삼을 만한 장소를 확보하면 반드시 돈을 쓰지 않더라도 함께 나누고 살 수 있는 터전이 생기며 이를 토대로 지역 자원을 개발하고 지킬 수 있는 공동의 일을 모색하다보면 활로가 생긴다는 것이다. 즉 로컬에다 빵집이나 카페 또는 힙한 음식점을 차리는 일도 좋지만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커뮤니티 조성이란 이야기다. 그리고 난 후 해당 지역의 자원을 활용한 콘텐츠를 개발해 사람을 끌어들이다 보면 자연적으로 빵집이나 카페가 들어서 지역 안에서 경제 순환이 가능해진다. 로컬 지향은 새로운 아이템 발굴이 아니라 삶의 태도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로컬은 유행으로 그치거나 로컬마저 자본의 놀이터로 변질될 수 있다. 자본 논리는 간단하다. 수익이 없으면 언제든 후퇴한다. 로컬은 최후의 방어선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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