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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Aug 29. 2017

뭐든지 보고,書

뭔 북소리_《82년생 김지영》

남성들이여 꼭 읽자두 번 읽자!

《82년생 김지영》

 조남주/민음사 


일본의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는 《영속패전론》(이숲, 2017년)에서 일본 극우 내셔널리스트들이 재일한국인을 향해 던지는 이른바 혐오발언 현상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 바 있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공공연하게 이뤄지던 조선인 차별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 후 ‘평화와 번영’ 시기를 거치면서 수면 아래로 숨었다가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의 과정과 아베 내각의 우경화 바람을 타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결과라고 말이다. 다시 말해 기존 기득권층의 사회적·경제적 붕괴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를 견지하고자 하는 제동 장치를 고장 냈고 곧바로 과거 차별의 대상이었던 재일 한국인에게 분풀이를 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혐오의 귀환은 비단 일본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근래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부 남성들의 여성 혐오는 앞서 언급한 일본 내셔널리스트들의 정신 구조와 거의 흡사하게 작동하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는 흐름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직장이나 직업을 잃거나 찾지 못하는 남성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여성들이 뺏어 갔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비난의 화살을 여성들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확실히 해놓을 점이 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 시기는 남성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산업화로 박차를 가하던 시기 생산직 여성 노동자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번영이 가능했을까? 제조업계 뿐만이 아니라 사무관리 분야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남성 직장인들의 입에는 ‘여직원’이라는 차별적인 말이 굳어져 있을 정도로 이들 여성 노동자들이 없었다면 어떠했을지를 상상해보라. 다시 말해 여성들의 사회 진출 확대가 남성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남성들이 독점했던 지위에 여성이 진출하고 있다는 게 남성들의 불만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평등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것도 아니지만)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한마디로 한국 사회에 던지는 페미니즘 소설이다. 소설 속 김지영 씨 또래의 여성들이 읽고서 공감하는 걸로 끝나서는 안 될 작품이란 얘기다. 82년생이면 삼십대 중반의 나이다. 대학 졸업 후 취업해서 일이 익숙해질 무렵 결혼과 육아로 경력 단절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지영’이란 이름은 82년도에 태어난 여자 아이 이름 중 가장 많은 이름이라고 한다. 제목에서부터 이 소설은 사회학입니다, 라고 선언하고 있다. 몇 가지 사회학 서적과 자료 등을 인용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 됐던 이른바 여혐 사건을 김지영의 서사로 응축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김지영이란 주인공을 내세우는 동시에 이 시대 한국 여성들의 수난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커다란 질문이기도 하다.


어떤 남성들은 강변한다. 난 마초도 아니고 여성을 배려하며 가정에서도 육아와 가사를 분담하고 있다고. 그래서 난 ‘그런 남자’들과는 다르고 그렇기에 남성을 적대시하고 혐오하는 급진적 페미니즘은 동조할 수 없다고 말이다. 또 이런 논리에 동감하는 여성들도 존재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남성들조차도 사실은 남성지배적 시각에 사로 잡혀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젠더 감수성이 왜 중요하냐면 가부장 질서 안에서의 결혼 제도가 어찌되든 이들은 지구에서 공존해야하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거나 우위에 서고자 가하는 행동은 모든 것이 폭력임을 알아야 한다. 심지어는 독단적 배려도 폭력일 수 있다. 특히 이 부분이 중요한데, 난 친절한 남자니까 여자들에게 잘 해줘야해, 라는 식의 태도는 어쩌면 가장 위험하고 아슬아슬하다. 양성 평등은 남성이 여성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견지해야할 태도인 것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시혜를 베푼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가부장 질서에서 기인했음을 자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사나 육아가 남성과 여성이 분담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여성을 돕는 행위가 돼버린다.


양성 평등을 외치면 꼭 이렇게 말하는 남성들이 있다. “그렇다면, 여자들도 군대에 가라.” 마르크스가 일찍이 얘기했지만 평등이랑 획일화가 아니다. 제각각 다른 인간들 저마다 지닌 고유성을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 평등이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는 여성 혐오의 씨앗이 뿌려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 얘기를 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페미니즘 논의를 할 때마다 뜬금없이 ‘군대’를 들고 나오는사람들이 있어 잠깐 언급했다. 《82년생 김지영》은 슬픈 (사회)공포물이다. 그리고 남성(또는 가부장제 질서에 투항한 여성)들에게 불편한 소설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얘기했듯이 소설은 독자와 사회를 교란시켜야 한다. 비정상적 사회일수록 더욱 교란해야 한다. 그래야 겨우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까 말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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