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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Nov 18. 2021

고향사랑기부제

로컬의언어

지방소멸과 인구감소 위기에 몰린 지자체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법안 하나가 통과됐다. 지난 9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른바 ‘고향사랑기부제(고향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가 바로 그것이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주민이 자신의 주소지 이외의 자치단체(반드시 출신지나 고향이 아니어도 상관없다)에 기부하면 해당 자치단체는 세액공제 혜택과 지역특산품 등을 답례품으로 제공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로써 지자체는 지방재정 확충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며 답례품 구성으로 지역특산품의 새로운 시장과 판로가 창출되어 지역경제 또한 활성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2023년 1월부터 시행된다.


이 법안은 2008 일본의 ‘고향납세제’ 시행 후 한국에서도 논의가 시작되어 지난 18대 국회에서 ‘고향세’로 처음 발의되었지만 통과하질 못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가 시작되고 대통령 국정과제로서 2017년 다시 20대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그렇지만 그때 역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었다. 그런데 21대 국회가 들어선 후 한병도(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발의되면서 재논의가 이루어졌고 드디어 통과한 것이다. 그만큼 지자체가 직면한 지방소멸과 인구감소의 위기위식을 정치권이 공감했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도 지난 10월 전국 ‘인구감소지역’ 89곳을 지정·고시하면서 인구감소로 소멸 위험이 높아진 지역을 지원할 법적 근거를 마련한 바 있다.


행안부 자료에 의하면 일본의 경우 2008년 ‘고향납세제’ 시행 후 13년 만인 지난 2020년 납부액이 6,724.9억 엔(한화 약 7조1486억 원)으로 82배 증가해 열악한 지방재정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이 처음부터 고향납세가 활발했던 것은 아니다. 2011년 3·11 동일본대지진이란 대규모 재난이 발생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응원의 손길이 이어지면서 ‘고향납세’가 폭증한 것이다. 또한 2014년 일본열도를 충격에 빠뜨린 일본창생회의의 이른바 ‘마스다 보고서’가 지역창생의 절박함을 알림으로써 고향납세의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다.

물론, 일본처럼 자연재해가 없다고 ‘고향사랑기부제’가 활성화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재난이 없어도 현재와 같은 지방소멸과 인구감소 추세라면 충분히 긴급한 상황이긴 하다. 다만, 일본과 한국은 결정적 차이가 있다. 첫째는 일본의 ‘고향납세’는 말 그대로 세금이다. 자신의 거주지에 낼 주민세를 지역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민은 세액공제는 물론 지역으로부터 답례품까지 받게 되니 안 하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본인은 고향납세의 일상화를 이뤘다. 이에 반해 한국의 ‘고향사랑기부제’는 세금이 아니라 기부금이다. 물론 기부금도 법률에 따라 세액공제를 받지만 그렇다고 현주거지에 주민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다. 다시 말해 ‘납세’와 ‘기부’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또 하나 차이는 ‘관계인구’ 문화이다. 관계인구란 쉽게 말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아니지만 자주 방문하거나 그 지역의 생산물을 구매함으로써 해당 지역의 경제자립에 일조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된 인구를 말한다. 출생률이 오르지 않더라도, 이주민이 증가하지 않더라도 소멸지역이 지탱해 나갈 수 있는 역할을 해 인구증가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인구에 대한 필요성을 마스다 보고서 이후 더욱 절감하고 있어 ‘고향납세’ 제도가 급속히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고향납세’는 그동안 많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답례품 시장이 커지자 지자체 간 경쟁이 심화해 지역특산물과 상관없는 가전제품까지 답례품 시장이 등장하는 과열현상까지 일어났었다. 그렇다 보니 일본 답례품 시장에 라쿠텐을 비롯해 아마존재팬 같은 회사까지 뛰어든 상태이다. 이러한 일본의 사례를 국내에서 실행할 때 반면교사로 삼아 법안의 원래 취지를 벗어나지 않도록 운용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납세가 아닌 기부금 형식이라 무엇보다 투명하게 기부금 사용 내역을 공개하고 답례품 선정에도 공정 시비가 일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행안부를 비롯해 중기부, 국토부에 이르기까지 지역재생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역소멸 지역을 중심으로 한 행안부 ‘청년마을만들기’ 사업이나 중기부의 로컬크리에이터 양성 사업 등이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몇 년 사이 지역을 새로운 대안으로 삼는 청년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원격근무 문화가 확산하고 최근 도시의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도시를 벗어나 자신만의 속도에 맞는 지역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청년은 현재 지역의 모습을 바꿔가고 있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지만 조금씩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특히 ‘고향사랑기부제’가 정착하는데 청년의 역할이 분명 있을 것이다.


도시에 산다고 지역소멸과 상관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지역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고향사랑기부’를 하면 해당 지역은 고마움의 표시로 당신에게 그 지역의 쌀과 신선한 제철 음식을 보내줄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지역과의 ‘관계’ 형성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시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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