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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Nov 02. 2021

'안동'은 변하지 않는다고?

로컬탐방

경북 안동은 보수 성향이 강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래도 유교 문화의 중심이고 변화보다 이어온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이 많아서 일게다.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안동시 캐치프레이즈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안동은 유교 전통을 지켜온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에 뛰어들거나 독립운동 자금을 수혈했던 위인들의 본고장이라는 자부심이 강하게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안동 사람이 변화를 무조건 거부해왔던 것은 아니다. 변화의 시기라는 판단이 선다면 신문물을 받아들여 탐구하고자 했다. 그래야 더욱 우리의 것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바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다. 하지만 어느덧 세월이 흘러 안동도 이제는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의 위기 앞에 서게 되었다. 실제로 안동시는 지난 10월 말 행안부가 지정한 지방소멸 위험이 높은 인구감소 지역에 포함됐다.


지방소멸 위기가 닥친 다른 지역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지역을 다시 활성화하기 위해 기업을 유치하거나 청년 이주 정착을 지원하려고 한다. 그동안 지역에서는 원도심 외곽에 아파트 단지를 분양해 마치 이곳이라면 서울처럼 살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부동산 개발 정책을 줄기차게 진행했다. 하지만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도시가 활력을 되찾는 건 아니다. 삶이 이루어지려면 일터가 있어야 한다. 젊은 세대는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그나마 북적이든 원도심도 주민이 외곽의 아파트로 빠져나가 공동화하면서 오히려 도시는 더욱 텅텅 비워졌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는 청년 이주 정책으로 전환하는 지역이 많아지고 있다. 타지 사람을 지역 커뮤니티에 받아들이지 않았던 분위기도 점차 바뀌고 있다. 그래야 지역도 살고 자신도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안동은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의 위기가 닥쳤음에도 상대적으로 타 지역에 비해 느긋한 모양새를 보여 온 지역이다. 인구는 줄어도 자연 환경과 풍부한 역사 유물이 곳곳에 보전되어 있어 방문객이 많은 데다 안동소주라는 지역 전통주도 고부가가치 상품의 반열에 올라 빈곤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안동은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이다. 전통적 부자들이 굳건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지역 활성화를 미룰 수는 없을 것이다. 고령화의 끝은 소멸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인구를 늘여야 한다. 하지만 온 나라의 인구가 줄고 있는데 안동만 다시 인구가 늘어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방법은 하나. 이주민을 들이는 것이다. 특히 청년의 유입이 늘어나야 하는데 청년이라고 아무 지역으로나 이주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가능하면 환대의 문화가 있는 곳을 선호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한 안동에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외부인이 활력의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안동 청년들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그 많은 정부의 청년 지역 사업 지원을 마다하고 스스로 지역을 바꿔나가고 있다. 자신의 고장을 자신의 손으로 지키겠다는 원대한 목표까지는 아니더라도 고향을 떠나지 않더라도 스스로 일궈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고 자신의 고향에서 자립을 이루어 나가는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안동시 옥동에 자리한 ‘396커피 컴퍼니’는 인스타 쫌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 방문지이다. 입구에 서면 간판부터 남다르다. 396커피 서대환 대표는 어머니가 해오셨던 옷수선집의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생각으로 396커피 심볼에 재봉틀을 그려놓은 것이다. 실제로 그곳에서 판매하는 커피와 빵은 재봉틀을 돌리듯이 한땀 한땀 손으로 직접 만든다. 실내에서도 직접 커피를 로스팅하고 빵을 만드는 장면을 볼 수 있도록 강화유리벽으로 구획해 놓았다. 안동시 길거리에 보이지 않았던 지역 젊은 세대가 이곳에 다 모여 있는 것처럼 매장이 북적인다.


“20여명의 직원은 모두 정직원입니다.” 코로나19로 매장을 운영하지 못해 심각한 상황을 직면했을 때도 서대환 대표는 단 한명의 감원 없이 모두 함께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396커피가 옥동길 안쪽에 자리하자 골목길이 변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396커피가 골목을 바꾸는 앵커스토어가 된 셈이다. 396커피는 또 안동 청년이 만든 수제맥주 브루어리 ‘안동맥주’와 콜라보로 커피 흑맥주를 내놓기도 했다. 안동에는 안동소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안동 문화광장길에 있는 ‘안동맥주 퍼블릭하우스’는 근대 한옥을 개조해 만들었다. 한옥에 일본건축과 서양건축을 담은 듯해 묘한 경외감이 들 정도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살린 공간은 지금 우리가 100년의 시공간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이러한 ‘396커피’와 ‘안동맥주’의 단골이자 이들 청년의 큰 형뻘인 인디밴드 ‘피터팬 컴플렉스’의 김인근 씨는 밴드 연습이나 공연이 없을 때는 고향 안동을 터전삼아 지역에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면서 지역 청년들과 교류하고 있다. 당연히 396커피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공연으로 얻은 수익을 다시 지역을 위해 기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안동 어른들이 보이는 고루한 태도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안동의 새로운 힘을 만들기 위해 이들은 수면에서 드러나지 않은 채 묵묵히 지역을 바꾸면서 지켜오고 있었던 것이다.


396커피의 서대환 대표의 꿈은 지역 청년들과 함께 커피와 맥주 그리고 문화를 엮어 F&B와 숙박 인프라를 구축해 안동 청년컬쳐 스트리트를 만드는 일이다. 삶에 지친 청년들이 안동에 내려와 맛있는 커피와 맥주를 즐기고 숙박을 하면서 안동살이를 체험하다보면 큰 위로와 힘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쯤 되면 마음이 안 동할 수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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