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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Oct 24. 2021

집을 구독한다고?!

로컬단상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우리네 삶의 모습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세간에서는 뉴노멀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새로운 세상으로의 전이를 강조하기도 한다. 실제로 학교의 수업 풍경이나 직장 문화를 살펴보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걸 체감할 수 있다. 온라인 강의나 원격근무가 보편화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워라밸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부각되었다. 또한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온라인 쇼핑은 물론 배달 서비스와 넷플릭스 같은 구독경제 시장이 대약진했다. 그렇다 보니 주거 공간 확보 문제가 새삼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문제는 부동산 시장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집, 아파트 가격이 문제다. 저금리로 인해 시중에 화폐 유동성이 커지자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렸고, 지난 2년 사이 부동산은 거침없이 상승했다.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0억에 육박하고 무주택자 사이에서는 벼락거지란 웃지도 울지도 못할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부동산 가격을 강력하게 억제하고자 하는 정부도 수차례에 걸쳐 부동산 정책을 내놨지만 현재까지 커다란 변화는 없어 보인다. 따라서 실내 활동의 비중이 커진 ‘새로운 세상’에서 지금보다 넓고 편리한 공간 확보는 어지간한 자금력이 있지 않고서는 대부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ADDress가 시도하는 집 구독 서비스는 무언가 작은 힌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의 빈집 문제는 더욱 심각한 편이다. 빈집이 거의 천만호에 이르다보니 이제 빈집을 재활용하는 문제를 떠나 도시 하나, 마을 하나가 사라지는 현실에 다다르게 되었다. ADDress는 이와 같은 일본 전역에 산재한 빈집을 새롭게 단장해 누구나 월 4만 엔(40만 원) 정도만 내면 원하는 집을 골라 지낼 수 있도록 했다. 원하면 주소지 등록도 가능하다. 지금까지 빈집을 재생해서 공유 숙박이나 공유 오피스 또는 쉐어하우스로 사용하는 일은 많이 있었지만 ADDress처럼 아예 원하는 지역을 선택해서 어디든 지낼 수 있게 한 경우는 없었다.


ADDress는 2021년 6월 현재 기준으로 일본 전국 약 170 곳의 빈집을 개조해 ADDress 멤버쉽을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달 월세를 내면 이번 달은 홋카이도, 다음 달은 규슈 또 그 다음 달은 간사이 지역이나 이스미에서 살아볼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우리와 마찬가지로 리모트 워크가 늘어나자 좁은 집을 탈피해 ADDress의 로컬 네트워크를 이용해 보려는 사람이 늘어났다. 여기에 원래부터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해왔던 사람들과 은퇴 후 지방에 단독주택을 지으려했던 시니어 그룹까지 가세했다. 또한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막히자 지역살이로 로컬을 체험해보려는 사람까지 ADDress를 찾고 있다.


ADDress의 특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양한 이용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누구는 주말별장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하거나 액티비티 프로그램이나 지역 커뮤니티 교류 프로그램을 갖춰 가고 있으며 기업을 상대로 워케이션 스페이스로 B2B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아울러 집집마다 이용객들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우스매니저가 응대하도록 했다. ADDress의 활성화로 쇠락한 지역에 활기가 생기자 이와 관련하여 해당 마을은 지역 인구 소멸 문제와 더불어 지역 경제 문제까지 한방에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ADDress의 사베토 다카시 대표는 앞으로는 도시에서 살 것이냐 지방에서 살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에서든 지방에서든 어디에나 살 수 있는 선택의 문제라고 말한다. 일본처럼 부유한 나라에서 행복하지 못한 삶에서 한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기존 공유 숙박과 달리 ADDress의 집은 거쳐 가는 곳이 아니라 해당 지역에 소속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아울러 집은 더 이상 재테크나 평생 안고 가야할 짐이라는 상식을 벗어나게 해준다. 그야말로 사고의 전환으로 새로운 삶을 맞이할 수 있는 변곡점 서비스라 할 수 있다. 물론 ADDress의 서비스가 모든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책은 아니다. 더구나 평생을 떠돌아다닐 수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ADDress가 던지는 메시지에 주목할 필요는 있다.


최근 한국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이나 지역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로컬크리에이터의 활약상은 여러 차례 소개한 바가 있다. 그들이 펼치는 사업이나 도전하는 기획이 자생력을 갖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려면 그들이 만든 공간 또는 창출한 지역 커뮤니티 서비스를 누군가가 지속해서 이용해줘야 한다. 만약 전국 청년마을마다 ADDress처럼 빈집을 누군가 엮어 저렴하게 제공한다면 청년마을 커뮤니티는 물론 해당 지역은 더욱 활성화하지 않을까? 아니 마을 활성화를 떠나 우리네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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