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보로 Nov 23. 2021

그리고, 살아간다

로컬단상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은 이른바 일본의 전후시대를 종식시킬 정도의 대재난이었다. 일본의 전후시대란 한마디로 ‘평화와 번영’을 기치로 내걸며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한 시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버블경제가 무너지면서 ‘평화와 번영’도 함께 마감했다. 그 후 흔히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을 지나 21세기가 도래했지만 여건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체제가 공고화하면서 일본이 자랑하던 종신고용 체제가 사라지고 계약직, 파견직 노동자가 늘어났다. 그러한 노동의 외주화(청년의 희생) 덕분에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럭저럭 일본은 경제대국의 위상을 유지할 순 있었다. 하지만 동일본대지진은 그러한 일본의 민낯을 완전히 드러나게 했다. 원전이 폭발했는데도 안전하다고만 말하는 정부와 그러한 정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학계와 언론의 추악한 모습은 일본의 전후시대가 마감했다는 방증이었다.


일본 드라마 <그리고, 살아간다>는 동일본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 자원봉사를 하러 갔던 일본의 청년을 그리고 있다. 일본 도호쿠 지방 모리오카에서 사는 주인공 이쿠타 도코(아리무라 카스미)는 어릴 적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큰아버지 밑에서 홀로 컸다. 배우가 꿈인 도코는 카페에서 알바를 하는 틈틈이 오디션에 응모하지만 매번 탈락의 고배를 마시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도쿄에서 열리는 오디션에 나가기 위해 도쿄로 향하는데 하필이면 그날이 바로 3월 11일. 도코는 오디션이 너무 긴장되어 지진이라도 나서 오디션이 연기됐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던 차였는데 정말로 대지진이 일어난다. 도코는 그 후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재난 지역 게센누마로 자원봉사를 나간다. 그곳에서 자원봉사팀을 이끌고 있는 대학생 시미즈 기요타카(사카구치 겐타로)를 만난다. 그 둘은 서로 어릴 때 부모를 잃었던 공통점을 알게 되어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그 후 기요타카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대기업에 입사를 하지만 출근 첫날 바로 사직을 한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대기업 사원이 아니라 NPO 활동가라고 자각을 했기 때문이다. 기요타카의 선택에 가족은 실망한다. 하지만 도코만은 기요타카의 선택을 응원해준다.


우치다 타치루는 도코와 기요타카처럼 동일본대지진 이후 로컬로 이주하는 청년을 보고 <로컬리즘 선언>에서 문명사적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그들을 “노동으로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고 또 노동의 과실을 빼앗아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면서 마침내 죽음으로 모는 ‘사악한 본성’을 발견한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전후) 시스템이 내뱉는 독기로부터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살아간다> 속 청년들이 자본주의의 사악한 본성을 발견했기 때문에 지역으로 갔다고까지 볼 순 없지만 그들이 기존 시스템에 순응했다면 절대로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로컬에서 청년하다>를 낸 조희정 선생은 책 속에서 한국의 청년이 로컬을 발견하게 된 계기는 2014년 세월호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고용 감소가 진행되면서 지역의 고용 불안이 가중화되었고 청년의 경제활동 역시 고용 불안 구조 속에서 표류하다 세월호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정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거다.


일본의 청년이나 한국의 청년이나 그들은 경제성장이라는 사회 프레임 속에서 경쟁으로 내몰린 채 학창 시절을 보낸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는 경쟁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도시라고 언제까지 지속가능할 수는 없다. 도시는 지방의 자원을 빨아들이며 지탱하고 있는데 인구가 줄고 지방이 소멸하면 도시도 언젠가는 소멸한다. 출산장려 정책을 펼치면 인구감소가 해결될까? ‘헬조선’에서 누가 아이를 낳고 싶어 할까? 더 이상 인구감소를 청년 탓으로 돌리지 말고 그들을 경쟁이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경쟁 구도에서 협동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로컬의 가치는 바로 경쟁 구도에서 협동 체제로의 전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로컬로 향하는 청년들은 누구보다 생존 직감이 뛰어난 친구들인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고향사랑기부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