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보고,書
이경란 작가의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은 재건축으로 철거를 앞둔 어느 강남의 오래된 아파트에 세 명의 청년이 함께 살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직 후 실업급여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구직 활동을 하는(다시 말해 백수) 민용과 공시족 연후 그리고 등록금 마련을 위해 휴학 후 편의점과 당구장 알바를 하는 저커가 우연한 기회에 곧 철거될 오로라 아파트에 세를 얻는다. 월세를 분담하기 위해서다. 아마도 철거 후 재건축으로 강남의 프리미엄 브랜드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게 될 오로라 아파트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낙후한 모습이다. 하지만 아무리 철거 직전의 오래된 아파트라 할지라도 아파트는 아파트다. 그것도 강남.
이런 오로라 아파트에는 오로라 상회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 역시도 재건축 후 사라질 장소이다. 오로라 상회의 주인은 장사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저 매일 의식처럼 치르는 동네 술친구 이안과 맥주를 마시기 위해 가게를 유지하고 있는 쪽에 가깝다. 이안은 오로라 상회에서 우연히 만난 민용의 사정을 듣고 민용의 오로라 아파트 하우스 메이트에 합류한다. 서로 다른 사람이 한집에서 살면서 좌충우돌하지만 저마다 갖고 있는 삶의 무게 또한 월세처럼 분담하게 된다.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바로 이 지점이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이 말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유사 가족.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청년 10명 중 4명은 주거 빈곤 상태라고 한다. 주거 빈곤이란 주택법 상 최저 주거 기준에 미달하는 가구, 지하나 옥상에 사는 가구, 비닐하우스나 고시원 등 주택 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를 말한다. 영화 <기생충>으로 반지하 주거의 삶이 어떠한지가 전 세계에 알려진 바 있다. 건축법상 지하층은 용적률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건물주는 지하층에 창문을 내어 ‘반지하’란 이름으로 임대를 준다. 다시 말해 반지하는 건물주에게는 보너스 임대 면적이지만 입주자에겐 여간 불편한 공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선택하는 이유는 임대료가 싼 데 있다. 옥탑층도 마찬가지이다. 취사시설을 갖추지 못하는 고시원를 비롯한 이른바 다중주택은 말할 것도 없다.
어렵게 아파트를 구했다고 사정이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다. 물론 주거 환경 측면에서는 개선이 되겠지만 이제부터는 대출과 이자 부담으로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된다. 대출도 없고 온전하게 집을 소유한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노력만으로 특히 청년 세대가 그런 경지(?)에 오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거 문제를 기존 주거 문화 틀에서 벗어나 새롭게 접근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터무늬 있는 집’은 시민출자로 청년들에게 안정된 주택을 공급해 청년의 경제적 자립을 돕고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만들게끔 하는 대안 주거이다. 혼자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주거 환경을 연대와 상상으로 함께 해결해나가고 있다. 또한 ‘로컬스티치’나 ‘맹그로브’ 같은 코리빙 커뮤니티 하우스의 약진도 눈에 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함께’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느슨한’ 연대로 이루어진 주거 커뮤니티가 대세로 떠오르기란 한국 같은 아파트 건설 공화국에서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항상 주류는 변방의 변화로 균열이 일어나긴 마련이다.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에서 결국 오로라 아파트는 철거를 맞고 이곳에서 최후까지 살던 네 명의 무리는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들의 삶이 결코 나아지거나 희망적이라고 단언할 수 없지만 최소한 그들은 오로라 아파트를 쉐어하면서 한걸음 ‘어른’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서로의 성장을 봐주는 존재 그것이 바로 가족이 아닐까 싶다. 전국 어딘가에 있을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이여 우리에겐 고양이가 있다. 건투를 빈다! (갑자기? 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 소설을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