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고 딴소리
<스즈메의 문단속>은 잘 알려졌듯이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미 전작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에서도 재난을 주요한 사건으로 설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혜성 충돌이나 수해 같은 돌려 말하기식이 아닌 그야말로 동일본 대지진에 돌직구를 던진 것.
동일본 대지진은 그 자체로도 전대미문의 대비극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후 일관되게 유지해온 ‘평화와 번영’ 체제를 갈아엎을 만한 대사건이기도 하다. 물론 동일본 대지진 훨씬 이전에 시작한 버블붕괴로 (평화와 번영)을 ‘잃어버린 10년(나중에 20년이 되더니 지금은 30년이란 말이 나옴)’모드가 지속돼 왔지만 동일본 대지진처럼 일본 사회 시스템을 뒤흔들진 못했었다. 그러니까 동일본 대지진이 흔들어 깨운 건 일본인의 마음이다. 마치 태평양 해저 속의 고지라가 깨어난 것처럼.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자 일본 정부(심지어 당시 내각은 민주당)는 모든 언론을 통제하고 학계의 목소리마저 관리했다. 방사능 오염이라는 과학적 데이터 정보마저 괴담이라며 입을 막아버렸다. 이를 놓고 결국 시민사회가 일어났다. 2012년 도쿄 요요기 공원에서 열린 ‘사요나라 원전, 10만 집회’에서 오에 겐자부로 선생은 외쳤다. “우린 모욕 속에 살고 있다”고. 그렇다. 그것은 모욕이었다. 거짓 민주주의가 평화와 번영이라는 신화 속에 숨어있다가 민낯이 까발려진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반원전/탈핵 운동이 일본 사회에서 크게 벌어진 점을 들 수 있다. 원자폭탄으로 패망한 일본이 원자력발전으로 부흥했다는 역설이 있지만, 일본인에게 원자력 발전은 기술 일본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원자력에 대한 욕망은 <철완 아톰(우주소년 아톰)>에도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면서 전후 일본의 민낯이 드러나자 시민 사회가 반응한 것이다.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됐지만 오에 겐자부로와 사카모토 류이치는 탈원전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온 대표적 지성이었다. 일본 자민당 내 극우 세력의 폭주에 제동을 걸 일본의 어른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게 아쉬운 대목이다. 또 하나의 변화는 도쿄를 떠나는 청년이 늘어난 점이다. 원전이 폭발해 방사성 물질이 퍼지고 있는 데도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국가는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탈출(!)한 것이다.
한편, 수도권 인구 집중 심화와 인구 감소에 따른 소자화 및 고령화로 심각한 지방소멸 위기를 맞은 일본은 총무성 주도로 지방창생 사업을 펼쳐왔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민당 집권 연장을 위한 포퓰리즘성 정책이었고 그들의 진심은 한계취락 지역은 포기하고 중간 거점 소도시로 모으는 이른바 컴팩트시티 개발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도쿄를 탈출한 청년들이 포기하려고 했던 소멸 지역으로 속속히 모여들면서 지역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또 하나 놀라운 변화는 그동안 변변치 않은 실적으로 구색만 갖추고 있던 ‘고향납세’ 기부액이 갑자기 치솟은 점이다. 재난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과 지역을 응원하는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고향납세’ 제도를 활용한 것이다. 현재 일본 고향납세는 참여율 40%를 넘기며 순항 중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앞으로 일본 정부가 지역을 버리기가 쉽지 않을 듯싶다. 참고로 한국도 2023년 1월부터 일본의 고향납세와 비슷한 ‘고향사랑기부제’를 시행 중이다. 시작한 첫해라 아직 홍보가 부족한 면도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돌아가 보자. 이 영화를 보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지방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을 향한 애정과 희망을 느낄 수 있다. 극중 스즈메가 큐슈에서 센다이를 향해 가는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신카이 마코토가 강조하는 ‘무스비’ 즉 연결과 유대 그리고 환대의 가치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너의 이름은>과 <스즈메의 문단속>은 이어져 있고 같은 이야기를 하는 셈이다. 신카이 마코토는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동일본 대지진 참사에 대한 애도를 넘어 소멸의 해법은 연결에 대한 자각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야기가 길었다. 한국도 위기에 직면한 지방소멸 문제도 결국 도시와 지역, 지역과 지역,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연결로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고향사랑기부제도 바로 그러한 연결의 확산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