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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우유 Aug 29. 2024

영화 <액트 오브 킬링>

대학살 주범의 헛구역질이 의미하는 것



 다큐멘터리 영화는 극영화보다 상대적으로 사실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에도 감독의 의도에 따른 편집이 들어가 있기에, 이 자체로 사실이라고 말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다. 게다가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은 1965년 공산당 학살의 주범 안와르 콩고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역사적인 대학살을 다뤘기에, 더더욱 관람하는 데 있어 조심스러웠다. 자칫 편향된 관점으로 사건을 조망한 것을 사실로 여기게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하는 지점은 살인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안와르 콩고의 모습이다. 감독은 그의 업적을 영화로 제작해 주는 척하면서, 그의 참담했던 학살 행위를 조명한다. 이 과정에서 학살 당시 자신이 행한 고문을 재현하고, 고문받는 연기를 하는 과정에서 안와르는 심적으로 변화를 겪는다. 완전히 이해한다고 볼 수 없지만,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위치에 잠시나마 서 보면서 잠깐의 반성(그렇다고 하기엔 그의 잘못이 너무 크지만)을 한다. 


우측 인물이 안와르 콩고. 본인의 전기 영화에 자신이 직접 출연한다.




안와르의 과거와 현재 – 살인과 추앙

 안와르가 자신의 영화를 제작하는 이유는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함이다.  안와르와 같이 살인을 저지른 동료 아디는 안와르가 차마 뱉지 못하는 말을 대신하는 역할을 한다. 본인이 공산당과 관련이 있어, 안와르가 처형했다면 그를 미워했을 것이며 자신의 인생은 붕괴 됐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안와르와 자신이 아닌 '정부가 과거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함'을 언급한다. 자신들의 살인 행위를 인정하는 동시에 그 원인을 정부(외부)로 돌린 것이다. 이 사고는 영화 내내, 심지어 결말까지 변함없다. 


 중반부에 등장하는 선거 집회. 신념을 갖고 참여하는 사람은 없고 오로지 보수를 받고 참여하는 사람만 있다. 선거 유세를 다니면서도 선물을 요구하는 시민들. 이것이 진정 과거와 무엇이 다르다는 것일까. 과거에도 그랬듯, 지금도 사람들은 사고 없이 특정 요구와 보수에 의해 일의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않고 일을 저지른다. 이는 안와르의 살인 행위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학살 당시를 재연하며 웃고 있는 안와르 콩고.


 안와르는 본인 입으로 천명 가까이 되는 민간인들을 살인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이다. 이는 본인의 내레이션 혹은 같이 학살을 도왔던 지인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화면 속 그의 모습은 백발에 이조차 성하지 않은 허약한 노인이다. 


안와르의 미래 – 외면 

 안와르가 항상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 것은 그에게서 나는 피 비린내를 지우기 위함일 것이다. 안와르의 미래는 그의 고문 도구와 같다. 그가 저질렀던 잘못은 그의 목을 두르고 당겨지며 안와르의 숨을 끊게 될 것이다. 안와르 같은 사람은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와르 같은 사람들이 수백 명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액트 오브 킬링>을 보고, 안와르의 범죄에 초점을 두고 잘못을 논하는 것은 이 영화의 의도와 어긋나는 것이다. 감독이 비난하는 것은, 또 다른 안와르 그리고 안와르와 다를 바 없는 방관자들이다. 


 그렇게 울먹이며 자신의 죄를 물은 안와르는 2019년 사망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영화의 마지막 결말이자 자신의 소망으로 그린, 희생자가 자신의 죄를 용서하고 훈장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의 죄는 끊임없이 비난받고 각인될 것이다. 마치 1965년 공산당이 받은 대우처럼 말이다. 


 영화 내에서는 안와르의 이중적인 내면이 부분적으로 삽입되어 있다. 그는 살인 행위를 복기하며 그 잔혹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내 정부 탓으로 돌린다. 손주의 입을 빌려 무서워서 때렸다며 자신이 하지 못한 사과를 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는 자신의 죄를 직시하지 못한다. 또한 자신의 썩은 이를 뽑으려는 안와르의 모습이 자주 삽입되는데, 그의 과거는 썩은 치아처럼 계속 신경 쓰이고 제거하고 싶은 것일 뿐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과거 사람들을 죽인 현장에서 헛구역질을 하고 있는 안와르 콩고의 모습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살인을 업적으로 남기기 위한 영화 제작기를 찍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학살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모습을 담으면서 진정 그들의 살인이 무엇을 위해 행해졌으며,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는지 보여주고 있다. 학살 이후에도 사람들은 권력에 따라 움직이고 사고하며, 자신이 죄를 지었는지조차 판단하지 못하는 무지함을 보인다. 그러나 <액트 오브 킬링>이 안와르의 진정한 뉘우침을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학살의 주범을 카메라 앞에 던져 두고 스스로 잘못을 깨우치는 자리를 만들어 줬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그 당시에 묵인되었던 그들의 잘못을 더 많은 사람(관객)들에게 재인식/처단시켜 주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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