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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해 Dec 15. 2023

왜 안돼? 수영(2)

초급반

나는 저혈압이다. 심할 때는 혈압이 최저40 최고60이 나와서 헌혈 하러 갔다가 못한 적도 더러 있다. 저혈압이라는 의미는 아침형 인간이 절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내가 새벽 6시 수영반을 신청한 것은 사실 큰 결심이다.


게다가 오늘은 첫 날이라 회원권 발급을 위해 좀 더 일찍 가야했다. 적어도 5시에는 기상해야 했다.


다니게 된 수영장은 거리가 애매했다. 차를 끌고 가면 7분인데 걸어가면 1시간, 버스를 타면 15분 정도 소요되는 곳이었다. 자차가 없는 나는 새벽마다 차를 빌려서 다닐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매번 그럴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버스를 이용하자 마음 먹었다.


그래서 눈 뜬 시간은 새벽 5:5분. 습관적으로 더 자야해라는 생각이 뇌를 지배했지만 이대로 주저 앉는다면 진정한 루저다 소리치며 일어났다.


화장실에서 눈곱만 떼고 양치를 하며 잠시 멍을 때렸다. 아, 그러고보니 어제 짐을 미리 준비 안했네.


새로 주문한 수영복 택을 집을 나서기 전에서야 뜯어내고 샴푸랑 기초화장품을 주섬 주섬 집어넣고 모자를 눌러쓴 채로 집 밖을 나왔다.


머릿속에는 그저 '아, 내가 수영 가는 날이군.' 하는 생각뿐이었다.


확실히 나이가 들수록 새로 시작할 때의 설렘과 기대는 줄어들긴 하는 것 같다. 예전 같았으면 벅찬 마음, 힘찬 발걸음으로 새로운 도전에 탑승했을 테지만 지금은 도 닦은 도인마냥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일뿐이요 하며 구름위를 유유히 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이 잔잔함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 잔잔함은 곧바로 깨졌다. 금방 올 것 같던 버스가 15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전광판에는 몇 정거장 전으로 뜨는데 말이지.


아, 이러다 늦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안와?!


결과적으론 안 늦었고 나는 만족하며 다시 평온한 도인이 되었다.


음, 좋아. 이 시간대의 버스를 타면 딱 알맞게 도착하는 군.


회원권 발급은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상담사분이 일찍 오겨야 할 거라고 겁을 줘서 꽤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범죄자 같이 나온 흑백 사진이 박힌 회원권을 받은 뒤 락커키 번호를 부여받았다.


탈의실에 들어오니 따뜻한 보일러 냄새, 묵은 물 냄새, 중독적인 락스 냄새, 온갖 화장품 냄새가 뒤섞인 향이 날 반겼다. 오랜만에 맡는 향이 정겨워 킁킁 거리다 사물함을 찾아갔다.


탈의를 하면서도 사람이 은근히 있다고 느꼈는데 샤워실에 들어가니 더 많았다. 대부분이 어머니, 할머니 뻘이었다. 간신히 한 자리 꿰어차고 샤워를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들 머리까지 감는 것 아닌가. 아, 이게 수영장의 매너구나 싶어 따라 머리를 감으며 따뜻한 물로 아직 잠들어 있는 몸을 지져주고 있었다.


그런데 몇 분이 지나도 아무도 수영장으로 가지를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후딱 샤워를 끝내고 수영장으로 들어갔더니 이미 준비운동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 아마 내 수강 시간이 첫 타임이 아니었나보다. 나와 샤워를 즐긴 그들은 이미 수영을 끝낸 뒤였다.


수영장 안에도 예상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있기에 새삼 놀랬다. 꼭두새벽부터 운동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싶어 조금의 자극을 받기도 했다.


준비운동을 끝마친 후 호루라기를 불던 강사님이 박수를 치며 사라졌다. 그러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각자의 레일로 들어갔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지? 두리번 거리며 레일 앞에 적힌 초급, 중급, 상급 등등의 안내를 살피며 초급이라 적혀 있는 레일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처음 오셨어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강사님이 초면인 나에게 물으며 출석부를 살폈다. 당연히 내 이름은 없었다. 내가 들어간 레일은 상급반이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창피 당할뻔한 나는 상급반 강사님이 알려준대로 맨 끝쪽 레일에 위치한 초급반 레일로 다시 걸어갔다.


초급반도 두 레일을 사용했는데 역시 수강생은 많았고 성비는 반반에 연령대는 다양해 보였다. 초급반 강사님한테 이름을 말하고 다같이 레일을 한 바퀴 걸었다.


오, 이제 시작이군.  


수영장 물 속에 들어가 걷기 시작하자 이제야 잠에서 완전히 깨는 느낌이었다. 어쩌다 보니 두 번째 순서로 레일을 걷고 있었는데 첫 타자인 아저씨는 익숙한듯 저만치 앞서 걸어갔다. 아저씨를 따라가려 할수록 장난꾸러기 물의 요정들이 나를 못 걷게 가로막는 느낌이었다. 물이 간지럽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하고 무겁기도 했다.


갓 걸음을 배운 아가처럼 아장 아장 걸으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자 강사님이 키판을 나눠주었다.


"음파부터 할게요."


뭔데, 어떻게 하는건데? 하고 생각하는 순간 내 앞에 아저씨가 출발했다. 나는 뒷 사람한테 말했다.


"제가 처음이라 먼저 출발하실래요?"


그렇게 밀려 밀려 맨 뒤에서 세번째 순서가 된 채로 출발했다.


강사님의 여타 다른 설명이 없었기에 그냥 저렇게 하라는 소리군 하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따라했다. 키판을 잡고 앞으로 가다가 고개를 들고 호흡을 하는 거였다. 유튜브에서 찾아본 호흡법을 떠올리며 물 속에서는 코로 숨을 내뱉고 올라 올 때 입으로 숨을 쉬었다.


"이제 키판 잡고 자유형할게요."


돌아온 우리에게 강사님은 자유형을 시켰다. 사람들을 보니 자유형을 하며 호흡까지 하고 있었다. 수강 신청을 하려고 했을때 상담사분이 왜 그렇게 겁을 줬는지 알 것 같았다. 수영을 전혀 모르고 못하는 사람이라면 멘붕이 왔을 것 같다. 나는 자유형 호흡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왜 안되겠어.


어깨 너머로 주워들은 정보를 떠올렸다. 수영에서 가장 중요한 건 힘빼기. 그러니까 잘하려고 하다가 괜한 힘 들어가지 말고 그냥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마음 먹으며 출발했다. 처음 치곤 그럭저럭 잘했는데? 싶을 즈음,


"키판 빼고 자유형하며 호흡 할게요."


엥...?

벌써요?


생명의 동앗줄이 사라진 나는 당황했다. 키판을 이렇게 빨리 뺄 줄은 몰랐다. 머리를 긁적이며 깨달음을 상기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데 나는 왜 안되겠어?

당연 할 수 있지.


내 차례가 되자 도인처럼 잔잔해진 마음으로 호기롭게 출발했다. 벽을 발로 밀면서까지 말이다.


왼팔을 먼저 휘두르고 (이 표현이 맞지 않을까?) 오른쪽 팔을 휘두를 때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숨을 들이켰다. 생존 본능으로 왼 손에 누르는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탱해줄 키판은 없었다.


힘빼.


그래도 한 줌의 산소가 목구녕 안으로 들어오는게 느껴지니 (물도 같이 들어오는 게 느껴지고) 생각보다 할 만 했다. 다시 물 속에 얼굴을 넣고 코로 방울 방울 공기 방울을 뱉으며 왼팔을 휘두르고 다시 오른팔을 휘두를 때 고개를 돌렸다. 세상 모든 공기여, 나에게 오라! 하는 식으로 비장하게 숨을 한움큼씩 들이마셨다.


난생 처음 해본 자유형 영법을 어찌 저찌 해내며 나아간다는 것에 만족하며 끝까지 갔다. 밖에서 보면 또 모르겠다. 왠 여인네가 허우적 거리며 붕어처럼 입술을 뻐끔거리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별 다른 설명 없이 모든 프로세스를 끝내고 나자 강사님이 세세하게 알려주시기 시작했다. 짧게 보여주시는 시범에도 수영 잘한다는 게 느껴졌다.


이후에는 계속 키판 없이 자유형을 했다. 갈 때는 이건가? 하며 감이 잡힐듯 말듯 하다가 돌아오는 길에서는 조금 허둥댔다. 숨이 차자 집중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50분의 시간이 쏜살같이 지났다.


마무리 인사를 하고 물 밖을 나오는 순간 모든 중력이 나에게 온 것 마냥 몸이 무거웠다. 그래도 기분만큼은 깃털처럼 가볍고 또 가벼웠다. 역시 적당한 운동은 생기를 돌게 하는구나.


또 단순히 그것때문만은 아니리라. 몸사리고 있던 것들의 한계를 깨부수고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 수영을 시작한 계기였고 이제 막 첫 발을 뗀 것이다. 좋다, 좋아.


무엇이 되었든 도전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일단 진행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왜 안돼요?

사실 안될 건 딱히 없습니다.

해도 됩니다.


나도 했으니 하실 수 있다고 응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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