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사랑, 벚꽃 말고

카페에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있어요.

by 겨울해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중년 여성. 잇따라 들어오는 중년 남성. 남성은 자리에 앉아 신문을 보고 여성은 남성의 카드를 받아 주문을 하러 온다. 경쾌한 또각또각 소리와 함께 그녀는 빠른 어투로 주문을 한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 이랑 베이글에 크림치즈요."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엣지있게 꽂힌 카드를 내미는 그녀의 손톱은 항상 예쁘게 다듬어져 있다.


주문한 음료와 빵이 나오면 그녀는 쟁반을 받아 자리로 또각또각 돌아간다. 그리고 남성에게 "오빠~ 맛있겠지."하고 애교를 부린다. 남성은 빵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많이 먹어라고 쿨하게 답하며 신문을 정독한다.


이들은 오전 10시면 들어와 점심시간 즈음에 나가는 단골손님이자 불륜 커플이다. 부부라기엔 뭔가 묘한 이질감이 들었던 이들이 불륜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 건 한 알바생의 목격담 때문이었다. 핫 아메리카노 손님에게 말을 걸었던 그 알바생이었다.

퇴근 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하던 그는 카페 근처에 주차된 승용차 앞에 서 있는 중년의 남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다행히(?) 중년의 남성은 핸드폰을 보고 있었고 근무 외 만난 손님에게 인사를 하기도 또 안 하기도 뭐한 그런 뻘쭘한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돌아가고 있었단다. 그런데 보조석에서 처음 보는 다른 여성이 문을 벌컥 열고 나와서 남성을 여보! 하고 불렀고 남성은 어 알았어하며 핸드폰을 끄고 운전석에 올라타더니 어디론가 갔다고 한다.


백 퍼센트 저 둘은 불륜인 거야. 하고 그는 탐정이라도 된 마냥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네가 뭔 상관이야 하고 그에게 타박을 주긴 했지만 내 시선은 그들을 향해 있었다. 그는 내 시선을 따라가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본처랑은 썩 사이가 좋아 보이진 않더라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여보! 하는데 아주 카랑카랑하게 소리 지르시더라.

그럼 그때 남자분은 핸드폰으로 저 여성분이랑 연락을 하고 있었던 건가?

그렇겠지 그렇겠지!

혹시 본처도 눈치채고 있는 거 아니야?


우리 둘은 어머어머 하며 서로를 때렸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막장 드라마가 흔하지 않아서 불륜이라는 소재 자체가 굉장히 스펙타클했다. 아침 드라마 보듯 그들을 관찰하며 시작된 대체 어디서 만났을까, 여자도 남편이 있는 것일까 등등의 열띤 오지랖은 다른 손님의 저기요! 하는 소리와 함께 끝이 났다.



면하트, 결하트, 3단 결하트 등 사랑의 이름은 참 다양하다.




"오빠~"


185cm는 훌쩍 넘는 듯한 장신의 중년 남성과 높은 하이힐을 신고도 남성의 어깨에 닿을랑 말랑하는 작은 그녀를 고목나무와 매미 커플이라고 우리는 불렀다. 키 차이뿐만 아니라 진짜로 그는 나무같이 과묵했고 그녀는 매미처럼 시끄럽고 애교도 많았다. 성격적으로나 외모적으로 잘 어울리긴 했지만 그들은 불륜이었고 용납받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래도 어쩌랴. 카페 NPC인 아르바이트생이 남의 인생에 참견할 순 없는 법.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주문하러 온 그녀의 엣지있는 손동작과 그 사이에 꽂혀있는 카드 그리고 화려한 손톱을... 어? 네일아트 바꾸셨네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한 마디였다.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 작은 그녀가 잠시 멈칫하더니 손을 살며시 치우며 말했다.


"너무 수수하죠?"


늦봄이 지나가던 그 계절에 무척 잘 어울리는 옅은 핑크색의 손톱이었다. 손가락을 구부려 감추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아뇨. 훨씬 잘 어울리시는데요? 이 색이 잘 받으시네요.

진심이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녀는 높은 하이힐에 쫙 붙는 원피스 같은 화려한 스타일보다는 조금 더 톤 다운된 차분한 스타일이 어울리는 이미지였다. 내 말을 들은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녀가 입을 가리고 부끄러운 듯이 웃자 벚꽃이 내려앉은 듯한 손톱들이 살랑거리며 예쁘게 빛났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넨 그녀는 삐딱하게 서 있던 자세를 고치고 두 손으로 공손히 카드를 건넸다. 음료를 받아간 뒤에도 연신 카운터 쪽을 흘깃거렸다.


그 뒤로 그녀는 나를 보면 눈인사를 건넸다. 언제는 그녀가 나를 가리키며 남자에게 뭐라고 속삭이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후로 남자도 나와 눈이 마주칠 때면 옅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뭐랄까... 굉장히 묘한 감정을 느끼며 평소대로 그들을 대하려고 노력했다. 며칠 뒤, 그녀는 투명한 매니큐어에 반짝이는 큐빅 몇 개만 올린 두 손으로 공손히 카드를 건네며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내가 일했던 카페는 꽤 넓고 아늑한 편이어서 아지트로 삼는 이들이 많았다.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대화 내용은 들리지 않아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여자는 연신 머리를 넘기며 화났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고 남자는 핸드폰을 계속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한숨을 거칠게 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화장실로 갔다. 홀로 남은 남자는 피곤한 듯 푹신한 의자 뒤로 몸을 기댔다. 요 며칠 새 카페에 찾아온 둘 사이에서 대화가 사라진 지 오래였고 나갈 때도 시간 텀을 두고 카페를 나가곤 했다.


한참을 지나 화장실에서 여자가 나왔다. 남자가 핸드폰에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여자에게 눈짓을 하고는 먼저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다가 이내 핸드백에서 빨간 립스틱을 꺼내 덧 바른 뒤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카페를 나갔다. 핸드백을 든 그녀의 손톱이 다시 화려하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그들이 나간 테이블을 닦으며 알바생이 봤다던 남성의 부인을 상상해 보았다. 여보! 하고 카랑 카랑하게 부르는 목소리. 빨간 립스틱의 그녀가 오빠 하며 간드러지게 부르는 목소리. 희한하게도 귀에서 두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카페에 봄이 지나고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름은 고목나무에 매달린 매미가 우는 계절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소개팅과 와인. 그리고 세바스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