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지금은 서비스 점검 시간입니다.

by 겨울해



"따뜻한 아메리카노 주시고, 휘핑 추가해주시고요. 이 빵은 언제 나온 거예요? 직접 굽는 거예요? 유통기한이 언제까지인가요? 아메리카노는 아이스에 더블샷으로 주시고 휘핑은 따로 담아주세요. "


떴다, 앨리스. 우리는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명찰을 차고 있지 않은 알바생에게 급하게 엉덩이 밑으로 손짓을 했다. 들어가서 스탭실에서 아무 명찰이나 차고와. 간 김에 손톱도 잘라. 오 마이 갓, 머리끈 어디 있냐고? 넌 그냥 거기서 나오지 마. 재고 찾는 척이라도 해!


직원이 주문에 집중을 하고 있는지 없는지, 매장 내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교묘하게 주문을 하는 앨리스가 카드를 건네며 스윽 카운터 안쪽을 살폈다. 쌓여있는 설거지 감은 없는지, 매장은 청결하게 관리가 되어 있는지, 물건들은 정리가 잘 되어있는지 매의 눈으로 둘러본 앨리스는 진동벨을 받은 후 카운터 근처 테이블에 앉아서 알바생을 한 명 한 명 관찰하기 시작했다.


복장 불량인 알바생한테 스탭실에 계속 있으라고 눈짓 발짓을 줬다. 윗 단추 하나 더 잠가! 개중에서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내가 앨리스의 시선을 가리기 위하여 포스기 앞에서 얼쩡 거렸다. 평소 답지 않게 생글생글 웃으며 내가 일하는 이 가게가 사랑스러워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이 곳 저곳을 바라보며 친절함을 어필했다. 앨리스의 서비스 점검 항목에 미소는 필수일 테니까.



오늘도 참 사랑스럽구나 나의 근무처, 나의 카페야.





앨리스는 본사에서 파견 나오는 CS 담당 직원이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손님인 척 들어와 말도 안 되는 까다로운 질문을 통해 (즉, 진상 손님을 연기하며) 직원의 서비스 태도를 채점하고 매장을 점검했다. 만약 한 매장에서 서비스 점수의 기준점을 계속 넘기지 못한다면 본사에서 경고문을 보내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지침은 내가 근무한 매장뿐 아니라 몇몇 대형 프랜차이즈점에서 일시적으로 유행하듯 이루어졌었다. (지금은 앨리스 같은 마피아 제도는 없는 걸로 안다.)


사실 앨리스가 정확한 이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한 알바생이 처음 등장한 색다른 진상 손님한테 감명을 받고 표정을 전혀 숨기지 못했는데 며칠 후, 기준점을 못 넘긴 매장 평가서가 날아왔다. 충격에 빠진 우리에게 한 알바생이 점장님이 본사에서 이런 공문이 내려왔고 그 사람은 앨리스라고 하던데?라고 말했고 그때부터 우리는 그 마피아를 앨리스라고 불렀다. 평가서에는 여러 점검 사항에 대한 마이너스 플러스 점수 체크와 당시 응대했던 직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만약 직원에게 명찰이 없었다면 몇 시에 근무한 안경 쓴 직원이라던지 하는 특징이 세세히 적혀 있어 근무자가 누구인지 알게끔 되어 있는 아주 촘촘한 데스노트였다.


혹시, 저 사람 앨리스 아니야? 우리는 손님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낯선 얼굴이 방문할 때마다 반사적으로 명찰과 복장을 체크했다. 대체 누가 이상한 나라에서 넘어온 앨리스란 말인가. 이 잔혹 동화 앨리스로 긴장의 날들이 연속되던 어느 날, 한 알바생이 열변을 토했다.


아니 어떤 사람이 엄청 친절하게 웃으며 주문하는 거야. 그래서 오랜만에 기분 좋게 음료를 만들고 있었지. 근데 갑자기 그분이 다시 와서 이 매장은 하루에 화장실 청소는 몇 번이나 하세요? 하고 싸늘하게 묻는 거야. 내가 왜 그러지 하고 화장실 가보니까 누가 휴지를 바닥에다 마구잡이로 버리고 갔어. 악, 내가 그런 것도 아닌데 그 사람 앨리스면 어떡하냐... 보통 손님이 그런 식으로 물어보진 않잖아... 아니, 잠깐만, 혹시 자기가 일부러 휴지 버리고서 내 반응 체크하려고 한 거 아니야?!


더 이상 손님들을 믿을 수 없게 된 알바생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주문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운 나쁘게 포스기 앞에 서게 될 때면 두 손을 가슴에 모으며 주문을 기다리는 척 명찰을 스리슬쩍 가렸다. 당연지사 알바생들의 사기는 점점 떨어져 갔다. 매장 안에 손님이 있으면 한숨부터 나왔다.




우리 지점 평가서는 또 한 번 날아왔고 점장님은 결국 알바생들을 모았다. 우리는 괜스레 죄인이 된 기분으로 쭈뼛쭈뼛 모였다. 드디어 점장님이 입을 열었다. '이 종이 상관하지 말고 그냥 평소대로 해.'

점장님은 볼일 있어서 먼저 간다며 쿨하게 나가셨다. 이 엄청난 쿨내를 보여주신 점장님은 카페 운영에는 큰 뜻이 없다던 나의 첫 점장님이었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는 알바생들의 인권(?)과 점장님의 품위(?)를 지켜내기 위해서 비겁하게 숨어 있는 앨리스를 어떻게 색출할 것인가에 대해 마음 모아 논의했다.


그들은 눈빛이 달라. 왜냐면 목적 자체가 다르거든.

맞아. 진짜 진상은 자기가 진상인 걸 몰라. 숨 쉬듯 자연스럽게 진상짓을 하는 반면, 앨리스는 '지금부터! 이 자리에서! 내가 진상 짓이라는 걸 시작하겠겠다!' 하며 결의에 찬 눈빛이야. 그리고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려고 계속 늘어지지.

(휴지를 흔들며) 웃는 사람도 조심해야 돼. 뒤통수 맞는다.

앨리스들은 메뉴판을 2초 이상 절대로 보지 않아. 당연해. 무슨 메뉴가 있는지 훤히 알고 있으니까.

또 그들의 시선은 가슴팍에 있는 명찰과 헤어스타일. 그리고 손톱으로 향하지.

... 근데 넌 제발 손톱 좀 깎아라. 진짜 징하다, 너도!


길고 뾰족한 자신의 손톱을 새침하게 바라보는 알바생 한 명의 복장은 여전히 불량이었다. 명찰도 없고 단추도 있는 힘껏 풀어제낀 그를 보며 우리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앨리스라는 제도가 왜 들어왔는지 알 것도 같고 복잡한 심경이었다.


어쨌든 앨리스를 색출한다 해도 딱히 이렇다 할 묘책은 없었으므로 우리는 차선책으로 그 날 컨디션이 제일 좋은 알바생이 포스기를 담당하는 걸로 회의를 마쳤다. 그나마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앨리스의 까칠한 공격에도 말문이 막히지 않은 채 미소를 띤 서비스 정신을 지켜낼 수 있을 테니까.



"손님께서 주문하신 커피님이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앨리스와의 전쟁은 빨리 끝났다. 우리의 쿨한 점장님이 매니저 언니를 뽑았고 카페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로 결심한 때였다. 본사 직원이 매장을 방문했고 점장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어떠셨냐고 묻는 직원의 질문에 점장님은 매장 평가서를 꺼냈다. 나는 얼음을 푸는 척하며 카운터 근처 테이블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을 흘끗 흘끗 훔쳐봤다.


"대체 이걸 하는 목적이 뭡니까?"


웃음기 없는 점장님의 목소리에 직원이 낮은 소리로 뭐라 뭐라 이야기했고 점장님은 '우리 직원들이, 대체, 상식적으로' 하면서 응수했다. 본사 직원은 근처에 있는 나를 인식하더니 점장님을 데리고 테라스로 나갔고 그 뒤로 약 한 시간 정도 그들은 등장하지 않았다. 간간히 점장님의 큰 소리가 들렸다.


참 신기한 점장님이었다. 업무처리능력도 있고 직원을 위할 줄도 알고 소리를 낼 땐 내실 줄도 알았지만 카페 운영에는 별 뜻이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점장님은 카페에 관심이 없어서 무책임 해라고 말했지만 나는 카페 아르바이트 10+n년차 중에 이 점장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같이 일한 시간은 가장 짧지만 가장 군더더기가 없는 윗사람이었다.




손님을 가장한 앨리스는 사라졌다. 대신 정체를 숨기지 않는 본사 직원이 간간히 와서 자신의 업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매장 청결도와 직원의 상태를 대놓고 확인했고 평가하기 애매한 부분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이야기했다. 또 매장을 운영하는 데에 있어 어려움은 없는지 등을 물어봤다. 새로 오신 점장님은 본사가 굉장히 젠틀하다면서 좋아하셨다. 그는 나에게 커피 한 잔만 뽑아주세요 하고 부탁한 후 본사 직원을 매장 한쪽 테이블로 모셨다. 나는 샷을 뽑으며 맞아요, 뭐가 됐든 한 지점장의 의견을 수렴한 본사의 태도는 젠틀합니다 하고 속으로 맞장구쳤다. (물론 앨리스 운영을 없앤 데는 다른 연유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앨리스는 참 씁쓸한 방침이었다. 한 때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돈 적이 있다. 왕의 오만방자한 태도와 어처구니없는 부당한 지시에도 노동자들은 웃으며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자본주의 시대에 왕의 노여움이라도 샀다가는 굶어 죽기 십상이었다. 손님 유지를 위해 기업들은 근로자들에게 어마어마한 서비스 정신을 요구했고 교육했다. 2013년에는 한 백화점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데 그 원인을 조사하던 중, 같은 백화점 직원이 손님을 가장한 '미스터리 쇼퍼'로 인해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았다고 인터뷰 한 적 있다. 미스터리 쇼퍼에 의해 기준치보다 낮은 서비스 점수를 받으면 특별교육을 받았고 심하면 해고를 당했다. 한 직원은 30분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원숭이처럼 인사를 하는 벌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은 희미해졌지만 여전히 진상 손님은 존재한다. 자본주의 시대도 여전히 건재하다. 그렇다면 기업과 근로자, 그리고 소비자는 어떻게 서로 상생해 나갈 수 있을까? 어느 한쪽도 뺄 수 없는 꼭 필요한 삼각관계이다. 그것을 인정하며 서로를 존중할 때에 진정한 서비스 정신이 발휘되지 않을까?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서비스 정신은 숨기려야 숨겨지지 않는다. 억압하고 억압받는 곳에 진정한 마음이란 있을 수 없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따뜻하고 친절한 세상이 되기를 바라본다.


(*참고로 미스터리 쇼퍼가 사회에 건강하게 작용하는 부분도 있다. 암행어사처럼 불법업체나 위생점검 등을 단속할 때에 활용이 되기도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의 서비스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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