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거기까지 내 이야기가 들리니?!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노트북을 하러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음료가 나올 때까지 매장을 둘러봤다. 크지 않은 매장 가운데에는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친구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귀엽고 잘생긴 친구들의 이야기를 딱히 듣고 싶진 않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 잘 들려서 나도 그 자리에 껴 있는 줄 알았다. 그들의 목소리는 너무 컸다. 남자 둘, 여자 둘의 이야기는 대충 이랬다. 뮤직 비디오를 찍을 때 누구를 쓸 것인가. 그 선배는 얼굴이 너무 웃겨! 뭐, 이런 이야기.
어차피 금방 나올 음료였으니 나는 그 소음을 잠시 견뎌내기로 결정하고 그들 옆 테이블에 앉았다. 픽업대 근처이기도 했다. 젊은이들은 자기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 인지했다. 이 공간에 자기들만 있는 것이 아니였구나 하는 사실 말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데시벨을 더 올렸다. 저기요, 내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지금 우리 엄청 멋있죠 하듯이.
뮤직비디오를 찍겠다는 그들은 이 촬영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장소 섭외가 중요한지, 또 어떤 이미지가 자기의 음악에 어울릴지 남자 둘, 여자 둘은 하하 호호 깔깔 껄껄 웃으며 의견들을 모았다.
저들은 분명 나를 의식하고 있구나를 확실히 파악한 건 남자 중 한 명이 이야기 중간중간 자꾸 내 쪽을 살폈다. 자기들 소리가 너무 커서 저 사람한테 실례가 되면 어떡하지 하는 식의 의식이 아니라 헤이, 나를 좀 봐, 나 멋있지, 좀 짱이지? 너는 이런 거 못하잖아 그치? 나만 할 수 있쒀. 하는 듯한 눈빛, 표정, 제스처, 그런 에너지였다.
오구오구 멋진 청년들, 뮤직비디오 잘 찍길 바라요. 참고로 난 안 봐요.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픽업대에서 내 아메리카노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음료를 들고 그들과는 조금 떨어진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어느 정도 뮤직비디오 팀의 소리가 차단되자 시원하고 떨떠름한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앵앵 대며 막혔던 귀가 뻥 뚫리는 듯했다. 숨이 트이는 만족감을 즐기다 이내 내가 해야 할 일에 몰두했다.
왁자지껄, 으하하하. 하는 소리에 핸드폰을 확인했다.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잔잔한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동영상 광고가 나왔나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핸드폰에는 숲 속에서 나비가 떠도는 잔잔한 음악이 계속 재생되고 있었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드니 내 근처 테이블에 있는 중년의 손님들이 웃고 떠들고 계셨다. 참 웃기게도 남자 둘, 여자 둘로 아까 청년들과 같은 성비였다. 순간적으로 그 젊은이들이 세월이 흘러, 뮤직비디오의 추억을 찾아 이쪽으로 찾아왔나 싶었다.
그래서! 영이야, 명이야!!? 하고 발끝에서부터 끌어올린 발성으로 중년 남성이 누군가의 이름을 되물었다. 영이라고, 영!!! 흉성에서 뒤통수를 거쳐 인중에서 나오는, 노래를 정말 잘할 것 같은 발성의 중년 여성이 답했다. 아! 그랬나?! 아니 오빠 왜 그래 깔깔깔깔! 이 우렁찬 대화를 나누는 중년 층의 커플은 좀 전에 젊은 층의 커플과는 조금 달랐다.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불구, 다른 이들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
나를 봐! 나를 봐봐! 하는 젊은 커플과는 달리 이들은 정말로 본인들의 대화에만 집중했다. 다만, 목소리가 뱃고동 소리처럼 크고 넓게 울려 퍼진다는 것뿐이었고 그 공간 안에는 똑같이 돈 내고 음료를 마시는 다른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두 번 연속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거친 소리를 마주하고 있노라니 예전에 일했던 매장이 떠올랐다. 한 손님이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와서 나에게 말했다.
"저 쪽 테이블이 너무 시끄러워서 도저히 있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든 해줘요 하는 그녀에게 나는 아... 네... 할 수밖에 없었다. 손님이 가리킨 테이블에는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있었다. 쉽지 않은 상대였다. 내 간절한 부탁이 그들에게 먹힐 확률은 10%... 아니 5%... 0.1%..?! 벌레를 잡아달라는 손닝에게 저도 벌레 무서워해요 하고 이야기했듯 이번에도 그러고 싶었다. (그 벌레는 결국 다른 손님이 잡아 주셨다.)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손님의 불쾌지수가 점점 머리 끝까지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이러다 초고주파끼리의 싸움으로 번질 기세였기에 나는 우선 손님의 감정을 최대한 공감해준 후 있는 머리 없는 머리를 쥐어 짜냈다. 손님이 이 정도까지 화났다는 건 이 어떤 방식으로든 시끄럽다는 걸 상대에게 표현했을 텐데 그걸 상대방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을 때이다. 이럴 땐 정공으로 가는 방법 밖엔 없다. 어떤 심리학에서 그랬던 것 같은데... 어려운 상대에게 부탁할 때는 무언가로 시선을 빼앗은 후 이야기해라.
나는 물 두 잔을 떠서 그 테이블로 향했다. 젠틀맨들은 내가 떠온 컵을 바라보며 뱃심에서 나오는 소리로 이건 뭐예요? 네가 시켰냐? 하셨다.
"물이에요~ 대화 나누시면서 혹시 목마르실까 봐 드립니다."
중요 포인트는 최대한 진심을 다해 웃어야 한다. 보통 어르신들은 미소에 약하시다. 다행히도 젠틀맨 중 한 분이 마침 목이 말랐는데 고맙다며 물을 벌컥벌컥 드셨다. 좋다, 이때를 놓치면 안 된다.
"그런데 대화하실 때는 소리 조금만 줄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른 손님들도 함께 쓰는 공간이라서 양해 부탁드립니다."
중요 포인트는 '조금만'이라 할 때 '쪼오~금만'이라고 해야 한다. 정말 아주 조금이니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어필하기 위함이다. 다행스럽게도 젠틀맨들은 물과 함께 껴넣은 내 부탁을 받아들이셨다. 도움을 요청한 손님과 나는 무언의 눈짓을 주고받으며 안도했다. 그 뒤 젠틀맨들은 가끔 본능적으로 나오는 뱃고동 발성 말고는 한층 부드러운 톤으로 대화를 주고받으셨다. 이 말인즉슨 젊은 층이든, 중년 층이든 조금만 신경 쓰면 소리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큰 소리에 트라우마가 있다. 아버지 영향이 크다. 한이 많으셨던 아버지는 늘 소리를 토해내셨다. 갈등이 생길 때는 그 소리가 더욱 커졌고 거칠었고 꽤 오래갔다. 그 소리를 계속 들으며 자라온 내 마음의 귀에는 이명이 생겨 버렸다. 일정 데시벨 이상의 소리가 박히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소리에 지지 않기 위해서 아무렇지 않은 척 부단히도 애를 써댔다.
카페에서 큰 소리로 대화를 하시는 분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 안쓰럽다.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본인이 본인을 소리 내어 주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을 살아온 것일까 싶다. 목소리가 크다고 해서 다 이기는 것이 아닌데 젊은이의 허세든, 어르신들의 억척스러움이든 그들의 큰 소리는 꽤 불편하고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덧붙이자면 손님들의 목소리가 커질 때 사실 제일 불편한 건, 진동벨을 쓰지 않는 매장의 알바생일거다.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수도 없이 외치지만 그들에게는 닿지 않는 소리 없는 외침. 몇 번을 반복해 부르다 보면 알바생을 보는 다른 손님들의 눈빛이 변한다. 시끄러워요.
와우, 그럴 땐 정말이지 망망대해에 둥둥 떠 있는 돛단배 같다. 내 앞에는 크루져 같은 거대한 배들이 가로막고 있고 난 이 배들의 눈빛을 뚫고 외딴섬에 계신 저분에게 음료를 전달해줘야 한다. 외딴섬에 계신 손님은 마치 원시인처럼 동료들과 함께 우가우가하며 서로 고함을 지르고 있다. 이런 분들은 10에 8은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본인들의 우가우가의 흐름이 끊기지 않게 계속 우가우가 할 뿐이다.
매장마다 운영 방식은 다르다. 음료를 테이블까지 가져다주는 매장이 있고 손님이 직접 가져가는 셀프서비스인 매장이 있고 별다방처럼 진동벨을 쓰지 않고 불러드리는 매장도 있다. 일단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자. 그리고 본인이 주문을 했다는 사실을 절대, 제발, 기필코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