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표현법

님아, 그 입을 닫으시오. 열어야 할 때는 좀 여시오.

by 겨울해



3년 정도 근무했던 매장에서 일이다. 위치상 바쁜 매장이 아니었기에 혼자서 짧게 근무하고 빠지는 매장이었다.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이면서 단골손님들이 생겼는데 그중에서는 아침마다 따뜻한 라떼를 사 가시는 분이 계셨다. 이 분은 표현방식이 참 독특했는데 먼저 주문을 한 뒤, 꼭 카운터 앞에서 기웃기웃 거리며 음료 제조하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그 모습이 마치 야자 시간에 학생을 감시하는 학교 선생님 포스였다. 뭐 필요한 것 있으시냐 하고 여쭤보면 아니에요 하며 계속 만들라는 식으로 손짓하셨다.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특유의 미소와 함께.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누군가가 그렇게 감시하듯 쳐다보고 있으면 굉장히 부담스럽다. 그런데 은근히 그런 식으로 모든 제조 과정을 쳐다보시는 손님들이 꽤 많은 터라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겨 괜찮았다. 문제는 앞서 말한 이 분의 독특한 표현 방식이 꽤나 신경 쓰였다.


나는 말할게, 너는 그 자리에 있어.





이게 얼마인 거지?


초콜릿을 쳐다보는 그분에게 작은 초콜릿은 얼마예요 하고 대답을 해드리고 다시 스팀에 집중하는데 뭐라고 말을 하셔서 쳐다봤더니 뒤에 성분표를 읽고 계셨다.


이게 이렇다고? 칼로리가 어마어마하네.


그러니까 이 분은 저 말이 나에게 거는 말인지 아니면 그냥 혼잣말인지를 정~말 헷갈리게 했다. 즉, 대답을 하려고 뒤를 돌아보면 나를 안 보고 있고 대답을 안 하자니 혼잣말이 너무 커서 나한테도 들렸다. 더더군다나 대답을 안 하기도 애매한 말들, 예를 들어 '여기는 그 우유를 쓰나 보다.' '이 장식품 지난번엔 여기 있지 않았나?' 등의 말들이었다. 그래서 대답을 하려고 뒤를 돌면 다른 곳을 쳐다보고 계시고 내가 다시 음료를 만들고 있으면 말을 걸고 뒤를 돌면 핸드폰을 보고 계시기를 반복했다. 몇십 번이나 내 고개가 앞 뒤로 왔다 갔다 한 뒤로 결국 나는 이 분의 음료는 최대한 빠르게 만들어 제공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피곤해 보이시네요. 저도 많이 피곤해요


웬일로 그분이 방백( : 곁에 사람을 두고 홀로 하는 말) 대신에 직접 나에게 말을 거셨다. 나는 오랜만에 내가 여기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인지가 제대로 되었구나 싶은 생각에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하면서 웃으며 답변했다. 내 말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그분은 한참 대꾸를 안 하더니 또 다른 주제의 방백을 하셨다. 그 뒤로 며칠에 걸쳐 이루어진 그분의 방백과 독백 그리고 나와의 힘겨운 티키타카를 끌어모아 정리하자면 그분은 모닝커피도 마실 겸 또 잠에서 깰 겸 가벼운 대화가 필요하신 거라 하셨다. 대화라는 개념 자체가 나와는 다른 사람인가 싶다가도 그래, 이른 아침이기에 비몽사몽 한 상태라면 그럴 수 있지 하고 이해했다. 어쨌든 혼잣말이 아니라 나에게 말을 건넨 거라 하니 나는 앞으로 이 분의 아침 대화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날 이후 나도 그분의 우렁찬 방백에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게 되었고 그분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이 없을 때는 나도 선택적인 침묵을 택하며 내 경추의 움직임을 지킬 수 있었다.



방백은 영어로 aside이지만 모노로그 밖에 이미지가 없네. 뭐가 됐든 혼잣말.




그래도 사람인지라 일방적인 소통법에 기분이 유쾌하지만은 않던 어느 날 결국 일이 터졌다. 카운터 앞에서의 방백을 끝내신 그분은 라떼를 받아 들고 화장실을 다녀오시더니 잰걸음으로 가게를 나섰다. 설거지를 하고 있던 터라 나가는 뒷모습만 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카페를 찾아오신 다른 단골손님이 멋쩍게 웃으며 다가오셨다. 변기 막혔는데 한 번 확인해봐야겠어요~ 라면서.


설마 하면서 달려가 확인해보니 배신감에 헛웃음이 나왔다. 버젓이 휴지통이 있고 변기통에 휴지를 넣지 말아 달라 하는 빨간 글씨로 표시된 안내문구도 있음에도 불구 변기 안에는 엄청난 양의 휴지와 그분의 큰 흔적이 고스란히 있었다. 그래 아침이니까, 잠결이니까 실수할 수 있지. 그분은 아침에 화장실을 잘 이용 안 하셨었으니까 안내문구를 못 보셨을 수도 있지, 휴지통을 못 봤을 수도 있지 하고 백번 양보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를 허탈하게 한 건 바닥에 흥건히 쏟아진 따뜻한 라떼. 변기 물을 내리고 당황했을 그분이 컵을 발로 찼던 혹은 어쩌다 떨어뜨렸던 하여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많은 양의 우유 커피가 엎질러져 있었다. 심지어 종이컵도 넘어진 그 모양 그대로였다. 막힌 변기야 민망해서 그랬다 쳐도 음료는 이야기해줄 수 있지 않았나? 싶은 것이 나의 마지막 이해심이었다. 쓰잘데기 없는 방백은 그렇게 잘하면서 왜 이건 침묵을 지켰단 말인가. 원하시는 데로 아침잠이 싹 달아나셨을까?... 아아, 저 변기는 어찌한단 말인가.





그분의 소통에는 상대방은 없고 오직 본인만 있었구나를 절실히 깨달은 건 다음날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아침에 오신 그분은 여전히 따뜻한 라떼를 시켰고 여전히 방백을 이어갔다. 어제의 큰 흔적에 대한 말은 일절 없었다. 나는 그 손님에게는 더 이상 그 어떤 대꾸도 보여주지 않았다. 말한다고 통할 사람이 아니었다.


누구나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고 소통하는 언어도 다르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예의나 배려가 없다면 그건 방구석에서 홀로 외쳐야 할 혼잣말이라고 생각한다. 구태여 집 밖에까지 그 말들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나와 절절히 늘어뜨릴 필요는 없다. 정작 해야 할 때는 하지 않았던 그만의 방백은 참 치사하고 더러웠다. (이보다 더 알맞은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자꾸 그날의 화장실만 떠오른다. 그 뒤로 그분은 몇 번을 더 오더니 발길을 끊었다. 이유는 본인만이 알겠지.)



타인을 배려하는 대화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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