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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해 Aug 15. 2021

기적의 백조 오리 -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시골의 풍경은 참 아름답다. 황금빛 밀밭, 초록빛 귀리, 평화로운 너른 들판과 살짝 우거진 숲, 그리고 황새가 유유자적 날아다니는 깊은 호수. 여름 시골의 야외 풍경은 한층 더 생명력이 강하다. 이곳에 살고 있는 동물 식구들은 이 시골 풍경을 자랑스러워했다. 특히나 오리 떼들은 거들먹거릴 정도였는데 그 이유는,


“이 황금빛 알이 우리 오리 떼에서 나온 백조의 알입니다.”


오리들이 하나같이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하는 백조의 알은 높은 돌탑 위에 있었다. 그건 알이라기보단 반원구의 커다랗게 깨진 조각이었는데 그마저도 아슬아슬하게 이어 붙인 모양새가 서툴렀다. 그래도 금이 간 주변을 황금빛 밀로 잘 감싸서 그런지 보기에는 꽤 그럴싸해서 따사로운 햇살이 비출 때면 커다란 금 덩어리처럼 번쩍번쩍 빛이 났다.


모두가 미운 오리인 줄 알았던 그 아이가 사실은 그토록 우아한 백조였다니! 정체성을 찾은 백조는 떠나고 없었지만 오리들 곁에 텅 빈 백조의 알은 남았다. 그들은 이 알을, 정확히는 알의 조각이지만, 어쨌든 '기적의 알'이라 불렀다. 그들에게는 백조와 오리가 아예 다른 종이라는 사실 따위는 상관없어 보였다. 그저, 오리들 사이에서 백조라는 놀라운 기적이 탄생했기에 백조는 곧 오리였고 오리는 곧 백조가 될 수 있다고 자부했다.


백조를 꿈꾸는 오리들의 고개는 날이 갈수록 빳빳해졌고 뒤뚱거리는 엉덩이를 하늘 높이 쳐올리며 걷느라고 고꾸라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래도 오리들은 ‘백조를 만들어 낸 기적의 오리’라는 기준을 앞세웠다. 어른 오리들은 아기 오리들이 실수를 할 때면 ‘백조처럼 못하니.’ 라며 잔소리를 해댔고 젊은 오리들 사이에서는 백조처럼 꾸미는 게 유행이었다. 어린 백조처럼 회색 털을 심거나, 부리에 검은 줄을 염색하기도 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백조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며 토론을 하기도 했다. ‘사실 나도 백조가 아닐까?’ 하며 출생의 비밀을 꿈꾸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오리 중에 그 누구도 오리로써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오리들은 또 다른 백조의 탄생을 위해 매일같이 돌탑 위를 향해 기도를 드렸다. 백조의 알을 향한 숭배의 몸짓은 이랬다. 푸드덕푸드덕 날갯짓을 두 번, 엉덩이를 씰룩, 큰 소리로 "꽤애애액-!" 다시 한번 더. 푸드덕푸드덕 날갯짓을 두 번, 엉덩이를 씰룩, 큰 소리로 "꽤애애액-!"









"알이 깨졌어!"


그러던 어느 날, 백조의 알을 뽀득뽀득 닦기 위해 마른 나뭇잎을 가지고 돌탑 위로 올라간 오리가 놀라 꽥- 소리쳤다. 당황한 오리들이 황급히 알을 향해 날갯짓을 했다. 알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누구야! 누가 이런 거야?"

"요즘 기러기들이 이 쪽으로 많이 날아오는 걸 내가 봤어요!"

"강 건너 고양이 짓 아니에요?!"


오리들은 흥분해서 날뛰었다. 한쪽에서는 처참히 부서진 백조의 알을 황금빛 밀로 엮어 보려 애를 써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작은 조각들이 후두둑 후두둑 땅으로 떨어졌다.


“백조의 알은 우리 오리들의 영혼이자 미래였어.”


연로한 오리가 비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떤 오리는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주저앉아 훌쩍거렸다. 어떤 오리는 두 눈을 감싼 채 길 잃은 강아지처럼 제자리를 맴돌았다.

그때, 처음 이 사태를 발견했던 젊은 오리가 좋은 생각이 난 듯 무릎을 탁 쳤다.  


"우리의 깃털을 뽑아서 알에 붙입시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깃털을 이어 붙여서 백조 모양을 만드는 거예요. 그러면 알은 백조로 부화한 거나 다름없고 여전히 우리는 '백조를 만들어 낸 기적의 오리들'이 되는 겁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모인 오리들은 자신의 털 중에 가장 예쁘고, 탐스러운 깃털 하나를 골라냈다. 깃털을 억지로 뽑아내느라 여기저기 꽥꽥하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벌개진 살을 비빌 틈도 없이 오리들은 일을 시작했다. 먼저 황금빛 밀을 둥지처럼 엮어서 그 안에 깨진 알 조각들을 조심스레 담고 다시 밀로 감쌌다. 그리고 젖은 흙을 발라가며 자신들의 멋진 깃털을 하나하나 이어 붙이기 시작했다. 모든 오리가 힘을 합쳐 작업을 하자 어느새 늘씬한 백조의 몸통이 완성이 되었다.


"더 크게 만드는 게 어때요?"


몇몇 오리들이 만족스럽지 못한 듯 꽥꽥거렸는데, 다수가 동의했다. 하지만 모아뒀던 깃털이 바닥이 났기에 할 수 없이 오리들은 꽥꽥 거리며 깃털을 다시 뽑았다. 개중에 아픔을 잘 참는 오리들은 깃털 몇 개를 더 제공하며 이윽고 커다랗고 늘씬한 백조의 몸통이 완성이 되었다. 이제 기다란 목과 큰 날개를 만들 차례인데... 아뿔싸! 깃털이 금세 동이 났다. 오리들은 크고 멋진 백조가 완성될 때까지 반복해서 자신의 몸에 박힌 깃털을 뽑고 뽑아냈다. 우아한 백조의 모습이 탄생될수록 오리들은 민둥산이 되어갔다. 멀리서 보면 이게 오리인지 벌거벗은 원숭이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손재주 좋은 오리 한 마리가 황금빛 밀로 엮은 빛나는 백조의 부리를 만들어서 오자 연로한 오리가 나뭇가지에 진흙을 묻혀서 검은 줄을 그려 넣었다. 젊은 오리들이 합을 맞추며 푹신한 깃털로 만들어진 얼굴에 가짜 부리를 끙차 집어넣었다. 아침부터 시작한 작업이 어스름한 저녁께가 되어서야 드디어 끝이 났다. 완성된 백조는 무척이나 컸으며, 우아했고 또 아름다웠다. 오리들은 탄성을 질렀다.

      

"어쩜 이리 멋있을까!"

"앞으로의 우리 모습이야!"

“새로운 기적의 백조 오리야!”

"백조 오리!"

    

벌거벗은 오리들은 백조 오리 앞에 서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푸드덕푸드덕 날갯짓을 두 번, 엉덩이를 씰룩, 큰 소리로 "꽤애애액-!" 다시 한번 더. 푸드덕푸드덕 날갯짓을 두 번, 엉덩이를 씰룩, 큰 소리로 "꽤애애...." 그런데 그때- 휙!!

황금빛 들판을 가르는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들리더니 커다란 무언가가 오리 떼 앞에 나타났다.


맙소사! 강 건너 덩치 큰 심술쟁이 고양이였다. 이 고양이는 종종 나무를 타고 강을 건너와 헤엄치고 있는 오리 떼들을 괴롭히곤 했다. 하필, 지금 나타나다니! 이런 불행이 어디 있을까. 두려움에 몸을 떠는 오리들을 보며 심술쟁이 고양이는 입맛을 다셨다. 고양이는 깃털 한 오라기 없이 반들반들한 오리들을 보며 이게 웬 떡이야라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 게다가 마침 그의 저녁 식사 시간이기도 했다! 발톱을 날카롭게 세운 고양이가 잽싸게 오리들 가운데로 달려들었다.

    

“꽥-!”

     

오리들은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하며 흩어졌다. 몇몇 오리들은 날기 위해서 푸드덕거렸지만 깃털이 없는 날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넘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고양이는 킬킬대며 오리들의 엉덩이를 할퀴었다. 오리들은 꽁무니를 붙잡으며 황금빛 밀 속으로 허둥지둥 몸을 숨겼다.

 






"냐옹~?"


커다란 백조 오리를 발견한 고양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처음엔 하얀 달빛에 반사된 작은 나무겠거니 했는데 자세히 보니 어떤 새의 모습이었다. 깃털과 부리, 날개는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심술쟁이 고양이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백조 오리를 요리조리 살펴보다가 이내 동그란 앞발로 백조 오리의 정수리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퐁- 하는 가벼운 소리가 나더니 깃털로 이루어진 백조 오리의 머리통이 힘없이 아스라 졌다. 사방에 오리 깃털이 날아다녔다. 고양이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더니 곧 새로 발견한 장난감을 향해 사정없이 주먹을 날려댔다. 엄청난 양의 오리 깃털들이 산산이 흩어져 허공에 흩날렸다. 크고 아름다웠던 한 마리의 백조 오리 여러마리의 작은 백조가 되어 하늘을 훨훨 날아다녔다. 오리 중에 그 누구도 멀어져가는 자기 자신을 붙들지 못했다.


휘-익

저녁식사를 위해 자신을 부르는 농장 주인의 휘파람 소리가 들리자 고양이의 귀가 쫑긋거렸다. 그는 아쉽다는 듯 앞 발을 혀로 핥아대다가 다시 휘파람 소리가 메아리치자 훽 하고 왔던 길로 사라졌다.

 

어느새 황금빛 밀밭에는 어두움이 완전히 깃들었다.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와 밀 밭에 숨은 오리들을 살펴보았다. 윤기 흐르는 깃털이 없으니 강을 건널 수도 날 수도 없게 된 오리들은, 흩어져 있는 깃털을 주울 생각도 백조의 알을 찾을 생각도 않은 채 벌거벗은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밀 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갔다. 오리들의 연갈색의 맨살이 황금빛 밀과 어우러져, 밀이 오리였고 오리가 밀이 되었다. 남겨진 그곳에는 기적도, 백조 오리도 없었고 그저 오리들의 껍데기만 버려져 있었다.


그 뒤 한동안 아름다운 시골 어디에서도 오리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깊은 밤 내내 깨어있는 부엉이의 말에 의하면 오리들은 깃털이 다시 자라 적어도 오리다운 모양이 갖춰질 때까지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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