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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해 Jan 27. 2022

봉지가 쏘아 올린 작은 총


내가 거주하는 곳 뒤에는 시장이 있어서 생필품을 구매하기에 무척 용이하다. 특정 상가에서는 굉장히 저렴하게 과일과 야채를 살 수 있어서 종종 득템을 하러 들린다. 그리고 그날은 유난히도 저렴한 가격에 나온 각종 재료들 덕분인지 손님들 (대개가 아주머니들)이 꽤나 몰렸다.


나는 정신없는 틈 바구니 속에서 세 개 천 원하는 콜라비 6개와 다섯 개에 천 원 하는 오이 10개를 바구니에 담 계산대로 향했다. 이미 줄이 꽤 길 늘어서 있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무거운 바구니를 하나, 두 개씩 들고 있었다.


약 5분 넘게 기다린 끝에 드디어 내 앞에 계신 아주머니가 계산대에 도착했다. 무거운 콜라비와 오이의 무게 때문에 얼른 정당한 값을 치르고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런데 집에 가고 싶었던 사람은 나뿐이 아니라  젊은 계산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계산을 해주는 이는 젊은 남성이었다. 진즉에 지쳐 보이는 그의 말투가 투수가 툭 툭 던지는 야구공같이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웠다.


"봉 필요해요?"


하얀 무선 이어폰을 끼고 허공을 바라보던 아주머니는 네? 하며 반문했다. 뭔가를 열심히 듣고 계신 모양이었다.


"봉요."


아주머니는 괜찮다는 양 손사래를 쳤다. 그리곤 젊은 계산원의 '얼마' 하는 말에 두꺼운 핸드폰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건넸다. 젊은 계산원이 카드를 긁으며 다음 차례인 내 물건을 스캔했다. 결제가 끝난 드를 받아 든 아주머니는 습관처럼 말했다. 본인 가방을 보며 말한걸 보아 아마 혼잣말이었던 것 같다.


"담을 데가 있나."


젊은 계산원의 인상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단어 그대로. 그의 눈쌀과 미간, 콧잔등이 와구구하며 구겨져버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주머니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느라 처참히 구겨진 그 표정을 보지 못했다.


",  필요없다매, 줘요?"


계산원이 툭 하고 쏘아붙였지만 아주머니에겐 타격이 전혀 없었다. 아마도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리들이 결계를 쳐준 모양이다.


아주머니는 젊은 계산원 말에 아무 대꾸 없이 혼잣말로 '이게 왜 안 들어가'를 중얼거리며 구매한 것들을 자기 가방에 담았다. 뒤이어 나는 아주머니가 이어폰을 끼고 계시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계산원갑자기 뒷걸음질 치며 큰 숨을 들이쉬더니 욕을 내뱉었 때문이다.


"아니, 씨발. 말귀를 귓등으로도 안 듣나."


그는 구겨진 표정으로 아주머니를 노려봤지만 아주머니는 가방보다 큰 야채들을 담느라 눈치채지 못했다. 젊은 계산원은 거칠게 분을 이기지 못하며 거칠게 모자를 벗으며 말을 이었다.


"그니까 나를 여기 두지 말라니까. 아, 착하게 살라 했더니 씨발 도와주질 않네. 씨발, 진짜."


부탁인지 협박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소리를 하며 울먹거리는 그를 두고 아주머니는 떠났다. 그가 어떤 감정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음 손님이었던 나는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내 귀에도 이어폰이 꽂아져 있었지만 아무것도 듣고 있지 않았고 난데없이 쏟아진 욕을 얻어먹은 듯 불쾌감과 당혹감이 앞섰다. 


윽고 젊은 계산원이 크게 숨을 두어 번 들이쉬고 내뱉으며 모자를 고쳐 썼다. 그리곤 내가 구매할 것들을 포스기에 찍기 시작했다.


"사천 원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아직도 떨렸는데 그게 분노라기보다는 아주머니에게 자기의 말이 무시당했다는 슬픔과 억울함이 더 커 보였다. 순간 그가 참 애잔했다. 비록 서툴지만 자신의 감정을 숨 몇 번으로 수습하고 일을 하려는 그의 모습이 어떻게든 세상에 섞여 들어가겠다는 것 같았다.


마트를 빠져나와 집을 향해 걷는데 그가 봉에 담아준 야채들은 꽤 묵직했고 덩달아 내 마음도 무거웠다. '가게가 바빠서 힘들어서 그랬겠지.' 하고 넘어가기에 젊은 계산원의 감정은 과했다. 비닐봉지가 쏘아 올린 작은 총은 0.1초 만에 그의 안에 있던 무언가의 방아쇠를 당겼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 속에 화가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어 억울함과 피해의식이 섞인 괴롭고 외로운 화였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일상 안에서 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서로의 이야기를 듣지 않다. 그러다 보니 해가 가득한 세상 살아간다. 이해가 결여된 상황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결국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총을 겨누고 만다.


존중과 배려가 가득한 세상이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런 일상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우리가 계산할 때는 계산원의 말에, 대화할 때는 상대방 말에 집중하는 게 당연하다. 이어폰을 낀 아주머니와 젊은 계산원에게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했다. 둘 다 겹쳐지지 않은 딱딱한 원이었다.


마음의 공간을 조금은 비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다. 를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은 필요하다.


20대 초, 중반으로 보이던 젊은 계산원이 앞으로는 그 작은 불씨에 집어삼켜지지 않길 진심으로 바랐다. 감정을 다스리느라 들이마시던 그 숨들이 그에게 필요한 바람이 되어주길.


그 뒤로 나는 그 마트에 더 이상 가지 않았는데 몇 달 뒤 그 가게 문을 닫은 걸 발견했다. 현수막 같은 것도 없었고 폐점 이유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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