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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해 Jan 15. 2022

[k의 기록] 11. 지옥 버스

아프면 손해야.


몇 년 전, 인천에서 금호로 왔다 갔다 하는 일이 있었다. 꽤 먼 길이었기에 매일 아침마다 광역 버스에 몸을 실었는데 출근길 버스는 늘 사람이 많았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인원이 차면 광역버스에 사람을 안 태우는 것 같은데 그때는 태웠다.) 미어터지는 인파에 지옥철, 지옥 버스라고들 하지 않는가. 거기에 사람들의 표정이 더해지니 더욱 지옥을 연상케 했다. 지긋지긋한 하루가 또 시작되어버린 초첨 없는 눈빛, 숨만 간신히 쉬고 있는 듯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이 바퀴 달린 네모난 박스에서 이리저리 다 같이 흔들는 그 모양새가 꼭 지옥을 향해 달려가는 유령 버스 같기도 했다. 그나마 앉아 가는 사람에겐 조금 덜한 지옥 버스겠지만 지옥은 지옥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 출근길 버스는 정말 지옥 버스구나를 체감한 일이 있었다.




그날은 긴긴 추석의 연휴 다음 날이어서 그런지, 평소보다도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자리에 앉은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세상 모든 중력을 껴안은 피곤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고 쌍쌍바 아이스크림처럼 다리를 붙인 채 서서 다닥다닥 선 사람들은 손잡이에 고개를 반쯤 기대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더부룩한 속을 달래며 서 있었다.


추석 내내, 지구가 망하기 전 맞이한 최후의 만찬 같이 끊임없이 먹어댄 나는 버스에 타자마자 살짝의 오한을 느꼈다. 단순히 에어컨 때문이겠거니 했는데 왠 걸 식은땀이 이마와 목 뒤에서부터 나기 시작하더니 위장이 점점 부풀어 올라 벨트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손과 발은 급속도로 차가워졌고 목 구녕에서는 끈적한 침이 느껴졌다. 급체였다. 황급히 손가락으로 엄지와 중지 사이의 혈 자리를 눌러댔지만 울렁거림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안쓰럽게도 손가락엔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도ㅑ겠다. 내리쟈ㅏ.


속으로 다급하게 웅얼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데 눈도 못 뜬 좀비들처럼 사람들이 우어어어 하며 자꾸 밀려 들어왔다. 마지막 정류장, 여길 끝으로 버스는 곧장 고속도로행이다.


쟘시만ㅇ… 헬(Hell)... 프미....


속을 부여잡으며 외쳤지만 0.1dB 이상의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아니, 낼 수 없었다, 성대가 아닌 식도를 거쳐 다른 게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인간게 꼭 필요한 멋진 통로가 목 구녕 안쪽에서 같은 공간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원망스러웠다. 나는 물 먹은 종이 인형처럼 미적대다가 버스 뒷 쪽으로 (말 그대로) 쳐 넣어졌고 버스 문은 삐그럭-쿵 하며 닫혔다.


견디자. 의지의 한국인, 넌 할 수 있다.


하등 위로도 안 되는 뻘소리였지만 속으로 되뇌이며 체기에 집중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다행인지(?) 원래부터 위가 안 좋아 체했기에 상황 자체가 낯설진 않았다. 그러나... 방구석 침대에서 체하는 것과 달리는 버스 위에서 체한다는 것은 천지차라는 걸 깨닫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느껴지는 어지러움과 울렁거림 때문에 지구는 역시 자전하고 있구나 하며 헛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시속 평균 80-100km의 속도를 추가되니 머리와 속을 팽팽 돌며 미쳐버릴 것 같았다,  다리는 후들거렸고 금방이라도 무언가가 올라올 것 같았다.


결국 버스에서 토하는 것보다야 잠시 잠깐 면목 없는 게 낫겠다고 판단을 내렸다. 내 앞좌석에 앉아 핸드폰 게임을 하는, 정수리만 보이는 남성분에게 부탁을 하기로 했다. 0.1dB의 소리 따위 들릴 리가 만무했기에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겨우 쳤다.


[정말...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속이 안 좋아서 그런데... 잠깐만 앉을 수 있을까요...? 부탁합니다.....]


과연, 지옥 버스 안에서의 아침 출근길 앞으로 1시간은 더 달려가야 하는데 어떤 낯선 이가 아프다면서 자리를 양보해달라 했을 때 당신의 선택은?!


나였다라면 양보했을까? 확신은 없다. 그만큼 출근길 광역 버스의 자리는 타인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이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나는 0.1g 정도 남은 이성 회로를 마구 굴러가며 메시지를 건넬까 말까 고민했다.


아냐! 정신 차려, 그래도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지하철 씬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만큼 더 큰 민폐는 없다.


나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남성분에게 핸드폰을 슬며시 건넸다. 이제 손 끝은 새하얗다 못해 저려오기 시작했다.


남성분은 자신의 게임을 가로막는 투박한 핸드폰에 잠시 당황하더니 뭐라 뭐라 적혀 있는 메시지를 읽기 시작했다. 몇 초 후, 어떤 상황인지 인지가 된 그분은 나를 쳐다보셨다. 내 안색을 확인한 그는 표정을 찡그리더니 마치 잡상인 내쫓듯 허공에 손을 몇 번 휘젓고 다시 게임에 집중하셨다.


그의 휘젓는 손이 칼이라도 된 듯 동아줄이 끊어져버린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다행스럽게도 터져 나올뻔한 대참사를 목 구녕 언저리에서 가까스로 막아냈다. 서러움인지 메쓰 거움인지 모를 뜨거움이 목구멍에서부터 나를 덮쳤다. 서 있던 몇몇 분들이 흘끗 흘끗 쳐다보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아니, 지만 힘든가, 좁아 죽겠는데 왜 저래 하는 듯 쭈그린 내 눈앞에 신발들이 툭 밀고 들어왔다. 그 불편한 공기를 뚫고 이번엔 누군가의 무릎이 내 눈앞에 어른거렸다. 자리 양보를 부탁드렸던 그 남성 분이었다. 그는 진정으로 내가 쇼를 한다 생각했는지, 아니면 자기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 거라는 암묵적인 신호인지 다리를 내 쪽으로 벌리고는 달달달 떨기 시작했다. 시선은 계속 핸드폰 게임에 고정한 채였다. 나는 정말로 지옥에 갇혀 고문을 받는 기분이 들어 참담했다. 버스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공기가 유황 지옥불 같았다. 설상가상 어떻게 아셨는지 버스 기사님이 큰 소리로 '공공장소이니 바닥에 앉지 마세요!'라고 외치셨다. 정말 끔찍했다. 나는 나를 변호할 수 없었고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옥같이 길었던 고속도로가 끝나자마자 허리가 굽은 할머니처럼 90도로 몸을 접은 채 버스에서 내려 0.00001g의 이성을 붙들며 화장실로 겨우 겨우 기어갔다. 버스 앞에서 모든 걸 게워내어 저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나락으로 가는 것만큼은 막아내고 싶었다.


변기통과 한참을 씨름 한 뒤, 내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몸에서는 소름이 계속 돋았다. 내가 토해낸 건, 음식 찌꺼기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서러움과 속상함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아픈 게 죄지. 내가 미련하게 꾸역꾸역 먹은 게 부정할 수 없는 원 죄다. 다시는 집 밖에서 체하지 않으리라. 특히 출근길 지옥 버스 위에서.


버스에 탄 모든 이의 물리적 거리는 가족이나 친구 그 누구보다도 가까웠는데 마음의 거리는 저 지구 밖 보이지도 않는 어떤 행성과의 거리만큼이나 멀었다. 내 고통을 알아주고 나눠 줄 이가 단 한 사람도 없던 곳. 그게 바로 지옥이구나 싶었다. 그게 육체의 고통이든 마음의 고통이든 말이다.  

(근데 난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 핸드폰 메시지를 받으신 분은 내 안색이 어땠길래 그렇게 파리 쫓듯 냉정하게 거절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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