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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해 Jan 20. 2022

[k의 기록] 12. 벌레

우리는 벌레를 죽일 권한이 있는가.

어두움이 짙게 깔린 밤, 싱크대 찬장 위에서 나는 소리에 온 감각을 곤두세웠다. 바스락 바스락. 마치 두꺼운 비닐봉지가 부딪히는 것 같은 그 소리에 침을 꼴깍 삼켰다. 내 손에는 둘둘 말은 두꺼운 책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바스락 바스락.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신경이 곤두섰다. 벌써 한 달째, 나는 그것들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제대로 자는 날이 없던 내 눈에는 실핏줄이 터져 붉게 달아올랐다.


공포 영화의 서막은 불길한 징조로 시작한다. 주인공이 깨진 컵에 의해 피를 본다던가, 아니면 문이 끼익하고 절로 닫히고 이윽고 끄러운 전화벨이 울린다 다던가 말이다. 내 이야기의 서막은 화장실에서부터였다. 시간은 나의 20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은 꿀 같은 주말 맞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샤워를 하고 있었다. 당시 바쁜 일정들을 소화해내느라 [보증금 1000에 월세 35, 관리비 없음]을 지불하던 월세방에서는 잠만 자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이삿짐 제대로 풀지도 드시 시간이 나면, 가구를 사 들이고 이곳저곳을 잘 꾸미리라 다짐을 하던 차에 드디어 맞이하게 된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늦잠을 포기하고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떨었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보금자리를 꾸민다는 건 늘 설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화장실 창문에 검은 물체가 얼핏 스쳤다. 쎄한 느낌에 거품칠을 멈추고 설마 설마 하며 눈동자를 굴려 정체를 확인했다. 그리곤 이내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왜 진작에 안보였지 싶을 정도로 커다란 거미가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시골 전봇대 사이나 풀 사이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친구였다.... 맙소사... 이대로 못 본체 둘까...? 그러다가 방 안으로 들어오면!? 으악.


백 번을 고민한 끝에 그 녀석을 죽이기로 했다. 물로 대충 거품을 훔치고 옷을 주섬주섬 입고서, 고무장갑 위에 두루마리 휴지를 둘둘 말았다. 권투 선수의 글로브 장갑처럼 꽤 많은 양의 휴지로 중무장한 나는 심호흡을 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약 30분간의 치열한 혈투 끝에 - 사실 거미와의 결투가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었지만. 악. 악. 어떡해. 아냐, 할 수 있어. 해야 해. 악! 미치겠다! 너무 커! 를 천 번은 외친 것 같다. 어쨌든 무사히 커다란 거미를 휴지 속으로 고이 접어 보내버릴 수 있었다. 샤워가 무색하게도 땀범벅이 된 나는 안도의 한숨을 깊게 쉬었지만 그것은 비극의 시작일 뿐이었다...


독립하는 순간 유료 호흡이라 했던가. 번듯한 대학교를 나와 열심히 전공을 살려 일했지만 예술계통의 씁쓸한 특성을 이어받 나는, 본업으로는 돈을 거의 못 벌고 있었다. 그래서 월세와, 교통비, 핸드폰 비등 고정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뛰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건지 돈을 버니까 사는 건지 모른 채 현실에 치고 결국 돈과 사람 모두에게 질렸었다.


그러던 차에 내 마음을 더욱 울부짖게 하던 글귀를 만났다. 월세방으로 오가 길목에는 늘 리어카를 끌고 나와 약을 파는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리어카에 붙어있는 글귀였다.


[해충박멸. 약 한방에 거미, 바퀴, 개미 초죽음]


'니, 벌레가 왜 죽어야 하는데. 사람이라고 벌레를 죽일 권리가 있나? 사람이 뭔데!' 평소라면 넘겼을, 별거 아닌거에 격히 동해버린 픔과 분노를 속으로 애써 삼켰다.


돈 좀 있다고 해서 남을 벌레처럼 경멸하던 누군가의 표정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당한 일은 아니라 구체적으로 적기 어렵지만 벌레처럼 무시당하던 그의 마음이 곧 내 마음이었다. 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던 구질구질한 내 마음도, 돈 앞에서 타협해가는 내 꿈들지도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마치 박멸당해야 마땅한 벌레럼 짓눌리고 짓밟혔.


'...너도 벌레를 죽였잖아. 그래도 거미는 충일텐데... 내가 죽였던 거미야, 진짜 미안해.'

리어카의 빨간 글씨 위로 스로에 대한 냉소가 섞인 헛웃음을 토다. 고개를 숙인 채 터덜터덜, 개미굴 같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같은 일정이 반복되던 어느 날, 기절하듯 잠을 청했는데 눈이 번쩍 떠졌다. 육감의 동물임을 증명하듯 뒷골이 순간 싸했다.... 검은 에너지를 가진 무언가가 내 옆을 분명 기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벽뿐인 그곳에 과연 무엇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곁눈질로 그것의 정체를 확인한 나는 기겁을 하고 일어나 비명을 또 질러댔다.


휴지 휴지! 아니 아니, 두꺼운 책, 책! 하며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전공책을 찾아들었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벌레라면 기겁하며 싫어하는 나지만 그중 특히나 바퀴는 끔찍이도 싫어한다. 그 특유의 생존력과 번식력은 혀를 내두르지만 일단 무조건 징그럽고 게다가 빠르다. (이후부터는 바 선생이라 부르겠다. 풀네임 치기를 몸이 거부한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 크기였던 작은 바선생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유유자적 벽을 타고 산책을 즐기시다가 체리색 몰딩 그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날 이후, 신출귀몰하시는 바선생 덕분에 안 해본 게 없었다. 제일 먼저 찾아간 리어카 할아버지께 받은 빨간 글씨의 해충박멸 약, 약국에 가서 약사 선생님 붙들고 울며 불며 받은 약, 인터넷 검색을 해서 얻은 민간요법인 듯 과학적인 방법의 붕소와 은행잎과 치약 그리고 세스코 보다는 저렴한 벌레 전문 업체를 부르기까지. 나는 매일같이 미친 사람처럼 울웃으며 끊임없이 나오는 바선생의 시체를 치웠다. 깔끔하게 죽어 있으면 좋겠는데 그들은 참 질기고 질겼다. 끝까지 발버둥 치는 바선생을 보며 나는 소리를 질렀다.


"벌레 같은 새끼야. 진짜 뒤지고 싶냐! 내 집에서 왜 지랄이야. 꺼져!"


놀랍게도 바선생은 그 길로 당장 집을 떠나기는 개뿔... 대신에 체리색 몰딩에 몸을 숨기며 내 안구가 가진 색감 테스트를 친히 해주셨다. 벌레 전문 업체에서는 외부에서 들어온 놈들이라고 했고, 의심이 가는 곳은 옆집이었다. 음식물 쓰레기가 몇 번 복도에 내어져 있는 걸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직거래로 구한 방이었기에 먼저 전 세입자를 통해 확인한 결과 단 한 번도 이 놈들을 방 안에서 본 적이 없다고 하는 게 아닌가. 거짓말이라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돈 때문에 사람을 의심하는데 지쳤기 때문이었다. 사실이라고 적절하게 믿을 수 있던 이유는 그분은 8년이나 이곳에서 거주했었고 옆 집도 마찬가지라 했다. 집주인에게 연락하니, 집주인도 그런 적은 없었다며 난 모르쇠로 일관했다. 월세가 싼 이유가 이거였나? 그도 아니면 내가 원인인가?! 내가? 뭘 했다고? 내가 뭐 피리 부는 사나이야? 그것도 아니면 카프카의 변신인 거야? 사실 내가 벌레로 변하는 중이라 쟤들이 환영해주는 거야?


나는 거미를 죽인 탓이라 생각하며 이성을 되찾기로 했다. 거미와 바 선생은 천적인데 내가 유일한 천적을 죽인 셈이니까. 이것 봐. 거미는 이충 맞다니까. 이충을 넘어 덩치가 꽤 큰 그 거미는 이 집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었는데 내가 죽인 거다. 그럴싸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주자. 이렇게라도 원인을 찾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 같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사람은 무력했다. 어떤 방법을 써도 바 선생은 나타났다.


불을 끄면 벽을 타고 올라오는 그 선생들 덕분에 불은 절대 끌 수 없었고, 자는 게 자는 것 같지 않은 날들에  신경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어느 날, 드디어 내 방의 바 선생의 태초라 부를 수 있는 그 소리와 마주했다. 바스락 바스락... 두터운 날개끼리 부딪히는 그 소리. 크기를 짐작케 하는 위엄 있는 그 소리.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폭풍 검색을 거듭한 결과 나는 이 바 선생에 대해 조금은 해박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는데 날개 있는 암컷일 것이다라는 확신을 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정보는 구태여 이 글에다가 적진 않겠다. (내 손이 거부한다.)


이후의 일은 이렇다. 녀의 위엄을 도저히 혼자 감당할 수 없었던 나는 '내가 잡아 줄게!.' 하는 용감한 친구를 집에 초대했고, 그 용감한 친구의 말을 따라 불을 끄고 자다가 기어코 내 팔뚝까지  올라탄 선생 한 마리를 함께 목격했고, 용감한 친구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겉옷과 지갑을 챙겨 그 길로 집을 뛰쳐나와 새벽 3시 즈음에 길거리를 헤맸다. 여기까지가 내가 겪은 공포 영화의 서막이다.





새벽의 공기는 차갑고 어두웠다. 울컥 목이 메었다. 조그맣게 들리는 바스락 소리에도 경기를 일으키고, 검은색의 작은 얼룩에도 온몸이 갑게 굳고, 혹여라도 바선생의 시체를 밟진 않을까 까치발로 노심초사하며 살았던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집 잃은 자의 설움이 복받다. 레를 동정하던 나였는데 이젠 벌레를 경멸했다.


돈만 많았어봐! 이런 집에서 안 살았지!


우리는 먹한 마음을 달래다가 너무 추워 일단은 지하철 안으로 들어왔다. 막차는 진작에 끊겼고 택시 타고 너네 집까지 가면 얼마나 나올까 대화를 나누며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검은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집을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지하철 기둥과 벽 앞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어떤 분은 커다란 박스를 이어 붙여 가벽을 세웠지만 대부분이 신문지 외에 덮을 것이 없었다. 그조차 구하지 못한 분은 얇은 외투 하나에 몸을 자꾸 욱여넣느라 뒤처거렸다. 


적나라하게 펼쳐진 이 풍경에 마음이 복잡했다. 두리번거리던 나와 눈이 마주친 어떤 분의 표정 역시 복잡해 보였다. 초췌하지만(자다 나와 헝클어진 머리에 근 한 달 넘게 바선생에게 시달린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젊어 보이는 애들이 왜 이 새벽에 여기 있니? 하고 묻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금세 시선을 거두고 지친 몸을 뉘었다.

 

저분들에겐 죽여도 죽여도 나오는 벌레 같은 것들은 뭐였을까. 진절머리 나는 레에게 삼켜지기 전에 혹은 짓밟히기 전에 내 발로 뛰쳐나온 지금은 벌레를 잡았까. 검은 외투를 입은 채 웅크린 그들은 내가 죽인 커다란 거미 같았다.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맞이한 그날의 밤은 꽤 쌀쌀했다. 백했던 새벽의 공기 거미줄같이 엉켜있던 그날의 풍경은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이후 나는 끝내 본가로 잠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벌레 굴을 떠나 더 좋은 집을 마련할 여윳돈이 없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고대하던 이삿날, 나는 탈출하기 위해 짐을 쌌다. 짐을 다 풀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라 정리는 금방 끝났다. 이곳에 들어온 이후 한 번도 건드리지 못했던 바퀴 달린 트렁크를 치우자 그 밑에서 무언가 나왔다. 날개 달린 암컷의 알 껍데기였고 안은 텅 빈 채로 있었다. 대체 이게 왜 여기 있는지 파고들수록 문제의 원인은 더 미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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