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맛, 따끔한 맛

by 겨울해

어딴 상가 지하에서 밥을 먹다가 볼일이 급해져 화장실로 향했다. 표지판을 찾아 코너를 돌고는 잠시 멈칫거렸다.


투박한 타일로 만들어진 저 멀리 입구에는 두 여인이 있었고 그 모습이 마치 하데스의 지하세계를 지키는 케르베로스 같았다.


기세 넘치는 그들은 딱 봐도 무서운 엄니들이었다. 마대자루를 들고 있는 미화 아주머니와 식당 사장님으로 보이는 앞치마 두른 여인은 눈을 부릅 뜨고 팔짱을 끼고 있었다.


잠시 다른 화장실을 찾을까 고민했지만 밀려오는 생리현상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복도에 울려퍼지는 발자국 소리에 그녀들이 훽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기다리던 사냥감이 아닌걸 확인한 엄니들은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왠지 모를 가슴을 쓸어내리며 앞만 보고 화장실을 향해 돌진하는데 엄니들의 사나운 목소리가 귓 속을 때렸다. 무서운 그녀들의 이야기는 이랬다.


화장실 옆,옆,옆,옆의 옆집 그러니까 음식점 사장님 대각선 맞은편 그 집에서 물걸레를 빨았는데 제대로 물기를 짜지 않아서 복도가 물바다가 되어버린 것! 지금 여기 건물 전체가 장사도 안돼 죽겠는데 음식점이 또 들어온 것부터가 마음에 안들었어.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이기적일까? 같이 죽자는 거야, 뭐야!


대충 이런 이야기.


"남한테 피해를 주면 안돼지. 얘기를 해야지, 이건"

"아주 따끔한 맛을 못 봐서 그래."

"그래! 한 번 보여줘야지."


미화아주머니의 성난 목소리에 식당 사장님은 팔짱을 낀 채로 한, 두 마디 거들고 있었다. 난 아무것도 몰라요, 선량한 시민이예요 하는 표정을 왠지 모르게 지으며 화장실로 겨우 입성한 나는 부풀어오른 방광을 부여잡고 후다닥 안쪽 칸으로 들어갔다. 문고리를 황급히 잠그자마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복도 끝에서부터 아련하게 울려 퍼졌다.


"어머, 안녕하세요요요~"


종종 거리며 다가오는 발소리에 맞춰 마대자루 소리가 화장실 바닥을 딱! 하고 두드렸다. 전투를 앞둔 전사의 검소리마냥 우렁찼다.


으악, 따끔한 맛이 시작되려나?


엉거주춤 바지만 내린 채로 침을 꼴딱 삼켰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의 본 싸움이 시작되는데 내 볼일 소리를 배경음으로 깔아도 되는 걸까? 시원하게 흘려 보내, 말아? 하며 나 역시 외로운 전투를 펼쳤다.


화장실에 모인 모두의 눈치싸움이 시작되었다. 과연 누가 먼저 달려들까?


"죄송해요요~ 복도 물청소 한 번 해야지 하고선 물 다 뿌려놨는데 전화가 왔지 뭐예요요~"


한층 가까워진 목소리가 해맑게 말했다. 목소리에 악의는 1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내 마음이 풀리는 목소리였다.


덩달아 전투력이 상실된 듯한 두 엄니들이 헛기침을 하며 말끝을 흐렸다.


"아이, 누가 미끄러지면 어쩌려고..."

"죄송해요~ 전화가 길어졌어요."

"아니, 갑자기 뭔 복도 청소를..."

"그냥 매장 청소 하는김에요~"


상황을 보아하니 내 방광이 제일 따끔한 맛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얼른 정신을 차리고 시원하게 해결해주었다.


화장실 칸 너머로 '내가 하는 일' '서로 돕고 살면 좋으니' '요즘 장사는 좀 어때요.' '걱정' ‘근데 여기다간 왜 차린거야’등의 말소리가 드문 드문 넘어왔다.


오래 참은 볼일을 말끔히 보고 나오니 아무도 없었다. 안도인지 아닌지 모를 한숨을 내쉬며 손을 씻었다.


엄니들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머물렀던 공기는 아직도 따끔했다. 치열한 삶의 터전에서 찔끔 맛본 따끔한 맛의 잔상이 한동안 마음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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