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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해 Oct 31. 2023

[k의 기록] 16. 사실 난 아직 무섭다

감정탐색

나는 큰 소리를 정말 싫어한다. 문이 쾅 닫히는 소리, 고함 소리, 책상을 세게 내리치는 소리 등등 큰 소리가 정말 싫다.


특히 예상치 못한 큰 소리에는 몸이 굳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심할 때는 머리가 웅웅거리고 귀에서 이명도 들리고 식은땀이 난다.


그러나 겉으로는 절대 티가 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호들갑 떨며 놀랄 정도의 큰 소리에도 오히려 무덤덤하게 반응하며 초연함을 잘 유지한다.



상담선생님은 아빠를 미워하라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아빠는 열심히 성당을 다니며 스스로의 주름을 펴고 있는데 구태여 내 증오의 한 방울을 튀기고 싶진 않았다.


"그럼 누가 제일 미워요?"


라고 묻는 상담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잠깐의 고민 끝에 얘기 했다.


"저요."


상담선생님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왜요?"


나는 어린시절부터 들어온 아빠의 전쟁같은 한탄소리를 한 때는 너무나 원망했고 모든 탓을 해댔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니 결과적으론 내 책임이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날 겁쟁이로 만든 것이다.


"지금의 제 인생은 저의 선택의 결과고 결국엔 이겨내지 못한거니까요."


상담선생님은 계속 이해가 안가는 눈치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나는 더 이상 주장하기를 포기하고 그녀가 무슨말을 할지를 기다렸다. 그녀와 나는 상담사와 내담자로써 잘 맞는 편이 아니었다.


"나같으면 아빠와 엄마 둘 다 미워했을 것 같아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나를 탐색했다.


나는 왜 내 탓을 할까?

왜 나는 나에게 엄격할까?

진작부터 알고 있던 건 완벽주의 성향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 왜 이러한 사람이 되었느냐,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원인을 찾고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엔 내 피의 뿌리가 나온다. 어쩌면 이제는 이 원인이 지겨운 것일 수도 있다.


행동부터 감정까지 재단하던 아빠. 원칙적이고 독재적인 외골수 아빠. 모든 말에 침묵과 한숨으로 일관해서 눈치보느라 사람 피 말리게 하던 아빠. 그러다 흉성에서부터 끌어올린 큰 소리를 간헐적으로 몇 시간이고 토해내던 아빠.


과거엔 이런 생각도 했다. 차라리 누가봐도 불쌍한 아이가 되게 해주지. 가정을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아빠라는 자리를 견뎌내서 왜 나에게 애매한 십자가를 지게 했을까. 그렇게 몸과 마음을 바친 아빠는, 당신이 중국으로 일하러 갔던 그 몇 달간이 내 학창시절 중 가장 평화로웠다는 사실을 과연 알기나 할까.


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듣고 그랬다.


아니, 대한민국에 가부장적이지 않은 아빠가 어디있어. 그 시절 아빠들은 원래 다 그렇지.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래서 어느샌가 말을 아꼈다.


세상엔 기구한 가정사가 넘쳐흘렀다. 그들은 누가봐도 헉 소리가 날만한 사연으로 아픔을 오롯이 느끼고 때론 단호한 방법으로 이겨내고 있었다. 내가 가진 핏줄의 역사는 그들 앞에서 발톱의 때보다도 못한 사연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남의 뼈 부러진 것 보다 내 새끼손가락 베인게 더 아픈 법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그럼 뭘하나. 나만의 아픔과 고통을 정당화시키는 방법을 몰라도 한참 몰랐다. 감정의 주인임을 포기하는게 익숙했고 겉으로는 웬만하면 요동하는 법이 없었다.


문득 문득 심장이 몸 안에서 가라앉는 기분이 들 때가 적신호였다. 쪼그라든 심장에 붙어버린 입은 메말라 버려서 안에서 웅웅대기만 했다. 급체한 것 마냥 침이 끈적거리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결국엔 성대가 안으로 말려들어가 숨이 깊게 안 쉬어지고 온 몸이 저리다가 식은땀이 났다.


두 달에 한 번정도 전화를 걸면 아빠는 기쁘게 받는다. 나는 그런 아빠를 보며 아무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는다. 본가에 내려가서는 늘 최선을 다한다. 자식으로써 해야 할 몫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어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괜찮아, 괜찮아.' 하고 자기 암시를 계속 걸어야 하는 걸 보면 역시 난 아직도 겁쟁이다.


그리고 여전히 내가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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