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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해 May 26. 2023

[k의 기록] 15. 나를 위한 애도

삼십대 어느 지점에서 드디어

한 평생 엄마가 피해자라고 생각해 왔다.

상담 선생님이 엄마를 욕할 때에도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화를 냈다. 그러고 싶지 않다고 엄마는 피해자라고. 하지만 상담선생님은 엄마가 나를 보호해주었어야 했다고 했다.


와닿지 않았다.


분명 엄마랑 둘이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때는 너무나 좋았다. 우리는 소녀처럼, 친구처럼 깔깔 거리며 구석 구석을 걸어다니며 여행하고 사진 찍고 수다를 떨었다.


그러나 집에 오면서 끝이 났다. 그 날, 아빠는 내가 보낸 카톡 두 개를 다 읽지 않았다. 어렴풋이 생각했다. 이번엔 대체 무엇에 혼자 골이 났을까.


그리고 아빠가 집에 왔다.


나를 반투명인간 취급하면서 엄마랑만 대화를 나누길래 나도 자식으로서 할 이야기와 적절한 애교 그 이상은 하지 않았다. 그의 심기에 뭐가 문제가 되었는지 구태여 수면 위로 드러내지 않고 넘어가길 바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괜한 불똥이 튀어서 피곤해지는 건 딱 질색이었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나를 살아있는 인간으로 바라봐준 아빠가 점점 장난스런 목소리에 진심을 섞기 시작했다. 뻔한 레파토리였다. 아닌척 하면서 자신의 한을 섞어 토해낼 저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애써 모르는 척 애교를 부렸다. 보아하니 오빠네 부부를 향한 서운함과 분노가 기저에 깔려있었다. 나는 발바닥 주물러줄테니 발 좀 달라했다. 아빠는 잠시 풀어지는 듯 하며 발을 나에게 건넸다. 나는 ‘발 닦았지요?’ 하고 장난을 쳤다.


그게 화근이었다.


'잘하는가 했더니 너는 꼭!!‘ 하고 이야기하는 아빠의 회색빛 눈동자가 순식간에 울그락 불그락 거렸다. 발을 닦았는지 묻는 나의 말이 그의 어떤 면을 건드린걸까? 아빠대접을 안해준다는 생각? 자기를 무시한다는 생각? 아무튼간에 너무 끔찍했다. 얇은 종이 한 장으로 오락가락하는 그의 기분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 싶으면서 마음이 차갑게 식어갔다.


내밀었던 발을 쏙 가져간 아빠는 속에 것을 기어코 허공에, 바닥에, 내 마음에 쏟아냈다.

듣기 싫다. 듣기 싫다. 정말이지 듣기 싫다. 티비에 눈을 고정하고 티비 소리에 집중했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감정이 없는 인형이 되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불합리한 이 상황에 휩쓸려가지 않은 채로 내 존재를 지켜 낼 수 있었다.


아빠는 이제 엄마 탓을 하기 시작했다. 애들 교육을 잘못 시켰다고. 그리고는 엄마의 잘못을 장황히 늘어놓았다. 이후에는 ‘물론 내가 잘못시킨 것도 있겠지.’ 하고 본인의 잘못을 덧붙였는데 그것에 대한 판결은 저 한 문장이 다였다. 그는 한평생 가족 구성원 전원을 그토록 심판하고 정죄해왔으면서 왜 끝내 스스로의 심판자마저 자처해버리는가? 당신의 심판자는 당신을 지켜봐온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당신은 그렇게 객관적인 사람인가? 그렇게 당신만 의인인가? 나는 당신이 나에게 엄마의 잘못과 오빠네 부부의 잘못, 그리고 나의 잘못을 늘어놓은 것보다 100배는 더 길게 당신의 잘못을 늘어놓을 자신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나는 내일이면 이 집을 떠날테지만 엄마는 남아있기 때문이다. 내 뒤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엄마가 계속해서 저 끔찍한 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내가 참지 못하고 아빠를 향해 소리를 바득 바득 질렀을 때, 엄마는 울면서 말했다.


'가서 잘못했다고 빌어. 엄마가 힘들어져.'


나는 한 평생 피해자로 살아온 엄마가 안쓰러웠다. 남겨질 엄마 생각을 못하고, 그 잠시 잠깐을 못 참고 1g의 정당한 분노를 쏟아낸 내가 굉장한 이기주의자 같이 느껴졌다.


이후로는 나는 본가에 올 때면 엄마를 위해서 아빠에게 애교를 부렸다. 엄마의 마음과 엄마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며칠만 견디면 된다고 스스로 되뇌었다. 저 끔찍한 남탓과 오락가락하는 기분 따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할 수 있는 한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


오늘도 아빠는 한 시간을 내리 혼자 말하며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끝날 기미가 보일 즈음에 눈치껏 방에 들어와 잠을 잤고 다음날, 아침밥을 먹고는 일찍 내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그 날 이후 엄마는 나에게 전화 한 통 없었고 나는 약 한 달간 최소한을 제외하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팔 다리가 쥐가 난 것처럼 계속 쑤셔댔고 무기력했으며 텅 빈 깡통마냥 덜그럭댔다.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습관적으로 입에다 뭐라도 쑤셔 넣으며 24시간 내내 핸드폰을 보다가 24시간 내내 잠에 들었다.


그러다 무거워진 머리를 감고 조금씩 산책을 시작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곤 결국 깨달아버렸고 그게 너무 아팠다.


피해자였던 엄마는 나에게 가해자였다. 엄마로써 해주어야 할 역할을 해주질 않았다. 중재도 보호도 없었고 내 편을 들어준 적도 없었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종종 엄마에게 이혼하라고 했었다. 이혼하고 제발 나랑 둘이 살자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는 안한다고 했다. 이 세상에 유일한 내 편이라고 믿었던 엄마였기에 그녀의 대답에 상처를 받았지만 안 받은 척 했다.


아빠는 이미 내가 초등학교 때 '너 이혼하면 누구 따라갈래?' 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는 걸 엄마는 알고있을까?


각성하듯 깨달아버린 이 마음을 엄마에게 말할 수 없을거라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 나까지 엄마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엄마는 혼자였다.


걸으며, 울으며 속으로 질문을 삼켰다. 엄마, 엄마는 왜 침묵해? 나도 엄마같은 인생을 살고 엄마같은 취급을 아빠한테 계속 받았으면 좋겠어? 그걸 나한테 물려주고 싶은거야?


차마 엄마 속을 후벼팔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슬펐고 더 아팠다. 엄마 속은 이미 새카맣다는 걸 알고 있었고 내 속도 이미 새카맸다. 힘겨운 삶을 견뎌낸 아빠 속도 물론 그럴 것이다.


주말이 지나고 엄마한테 전화가 왔고 나는 받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계속 울리는 통에 전화를 받았더니 엄마가 말했다.


'왜그래, 무슨 일있어?'


아빠가 내 마음과 몸에 보이지 않은 불을 붙였고 나는 그 불을 끄지도 못한 채 집을 나섰고 그 화재를 두 눈으로 목격했음에도 엄마는 도리어 나에게 묻는다. 왜, 무슨 일 있었어?


아무도 꺼주지 못할 이 불은 계속해서 나를 집어 삼킨다.


'난 이제 엄마아빠랑 거리를 둘거야.'


엄마는 그건 불효이자 자신에게 대못을 박는 짓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듣자 속은 뜨겁고 뒷골은 서늘했다.


마음도 몸도 잿더미였다. 하얀 잿더미가 된 내 앞에서 끝까지 한 사람은 분노하고 한 사람은 침묵할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혼자서 한참을 울었다.


내 스스로 나를 한 차례 더 이해해버린 것에 대한 선물이자 애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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