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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해 Jul 06. 2022

[k의 기록] 9. 내가 그렸던 인간도감 (2)

A가 희한하게 생각이 나.


인간도감을 생각하며 아이들을 관찰하다보니 유독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화장실을 꼭 같이 가야만 내 편이 되는, 여자아이들 특유의 집단생존력이나 툭하면 뭔가를 부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남자아이들 특유의 거친 결이 아닌 어떤 담백함이 있었다.


그건 친구들의 실수에도 연연하지 않고 본인의 실패에도 괘념치 않아 하는 깔끔한 여유로움이었다. 그 질척이지 않는 태도가 캐릭터를 빛나게 했다.


똑같은 초딩인데 대체 이 차이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그 땐 알 수 없었다.


같은 반에 예쁘장하게 생긴 A라는 친구가 있었다. 아이돌처럼 마르고 땡그란 눈을 가졌던 A는 짧은 청쟈켓과 청지마를 즐겨 입었다. 여자애들은 예쁘게 생긴 그 아이와 어울려 다니고 싶어했다. A는 그 관심을 즐기며 '내가 저거 사줄까?'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하지만 사주기는 커녕 오히려 같이 먹은 떡볶이 값을 안 낼 때가 더러 있었다. 그렇게 계속 외모에 어울리는 도도한(?) 캐릭터를 유지했으면 차라리 좋았으련만 희한하게도 소심이처럼 친구들의 눈치는 또 엄청 살폈다. 친구들이 조금만 인상을 찌푸려도 안절부절 못하며 매달렸다.그러면서도 친구들의 관심을 계속 자기에게로 끌고 오려는 특유의 도도함도 끝내 버리지 못하는 두 얼굴의 지킬 앤 하이드였다. A의 예쁘장한 외모에 모여든 친구들은 점점 마음이 떠나갔다.


반면 평범하게 생겼지만 청결한 옷 매무새와 깨끗한 손톱, 그리고 깨끗한 신발을 신는 B가 있었는데 이 친구 주변에는 늘 친구들이 끊이지 않았다. 착하게 생긴 얼굴 때문에 처음엔 아이들이 만만하게 보았으나 시간이 흐르자 아이들은 B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건 그 아이가 친구가 한 작은 실수에도 무던히 넘어갈 때가 많았고 수다쟁이는 아니었지만 늘 미소를 띄우며 아이들의 말을 잘 경청했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에게는 '좋은 게 좋은거지',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하지 뭐.' 라는 마인드가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 때는 A와 B의 차이가 그저 성격차이이고 본인이 한 행동의 결과일 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살아가면서 수 많은 캐릭터들을 만나본 지금, 그 때 그 아이들을 상기하면 씁쓸해진다.


A에게는 없었고 B에게는 있었던 캐릭터의 특징은 외모나 옷차림 등의 외형이 아니었다.


차이는 자존감이었다.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이 B로 하여금 관계에 질척이지 않게 했고 물건에 집착하지 않게 했으며 오히려 베푸는데에 뒤끝이 없으니 담백한 태도를 유지했고 그 매력이 주변을 계속 끌어당겼던 것이다.


자존감이  채워져 있느냐 아니냐는 성인이 되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아무리 비싼 명품을 걸쳐도 묘하게 세련되지 않아 격조가 떨어지는 사람이 있고, 매일 똑같은 옷을 입어도 빛나는 사람이 있다. 그건  사람 자체가 명품인 것이다. 나아가 본인 스스로가 자신을 명품처럼 대할  안다는 것이다.


이렇게 캐릭터를 빛나게 하는 자존감 유무의 원천은 어디서 올까?


아다시피 1차적으로는 가정에서부터 형성이 된다. 어떤 환경에서 어떠한 존중을 받으며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가 그 사람의 성격과 가치관, 즉 자존감과 정체성을 만들고 그것이 쌓여 그 사람만의 캐릭터를 만든다.


어릴 때부터 자존감이 높았던 아이들을 돌이켜보면 대부분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유로운 환경에서 자랐다. (예외는 분명 있겠지만 여기에는 '대부분'이라는 부사를 씁쓸하지만 붙이겠다.)


나는 A의 집에도 B의 집에도 다 놀러가봤다.


당시 우리 사이에서는 돌아가면서 공평하게 자기 집에 초대하는 룰이 있었다. 그러면  초대 한 집의 엄마들이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간식을 준비해주었다. 그 상차림은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 자식 기 살려주고 싶다는 엄마의 마음이 그득 담겨 있었다.


그리고 A 차례가 다가왔다.


그런데 계속 이 친구가 자기 집에 중요한 손님이 와서 안된다, 오늘은 엄마가 심부름 시켜서 안된다며 각종 핑계를 대면서 자꾸만 미뤄댔다. 그러면서도 다른 친구네 집에 가서는 미주알 고주알 그 친구의 방, 옷, 장난감에 대해 이것 저것 지적질을 해대니, 이제 아이들이 대놓고 A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A는 눈치가 없는 건지, 뻔뻔한건지 부던히도 아이들에게 와서 말을 걸었다.


그녀의 둔감함에 감탄을 하던 차에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구나를 어느날 알게 되었다. A가 무어라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자 여느때처럼 아이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 받은 후 '화장실 가자.' 하면서 우루루 몰려나갔다. 나도 ‘에휴,’ 하고 속으로 한숨을 쉬며 나가려던 그 때 A가 내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너도 화장실 갈거야?”


A 입술과 광대 부근이 파르르 떨렸다. 그걸 보자 ‘,  아이가 무리하고 있었구나.’ 직감   있었다. 나는 조잘 조잘 수다떠는 타입이 아니어서 잠시 생각하느라 말없이 A 바라봤는데 A 동그란 눈을 이리 저리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그러면서도 손은  않았다. 나는 ‘안가.’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A 크게 안도하며 아까 했던 쓸데없는 소리를 이어서 내뱉었다.   누구가 자기를 좋아하는  같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귓등으로도  들으며 ‘얘도 징하다. 하긴 사람 쉽게  변한지.' 라고 생각 했던  같다.


어느 날, A가 오늘은 자기네 집에서 놀자고 했다. 아이들은 서로 바라보며 어쩔래? 하며 침묵의 눈짓을 주고 받았다. 나는 A의 떨리는 입술을 또 보고 싶지 않아서 '좋아. 가자.'며 분위기를 몰아갔다. 은근한 따돌림이 싫은 것도 있었고 A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것들도 있다고 여겼다. 우리는 다 같이 학교 끝나고 A네 놀러가기로 약속했다.


하교후, 도착한 A네 집은 아파트라 적혀 있었는데 그러기엔 애매한 낡은 빌라였다. 페인트칠이 여기저기 벗겨진 건물 안에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아이들은 헉헉 대며 계단을 올라 거의 꼭대기층에 자리한 A의 집에 도착했다.


A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엄마 아직 안나갔어?’ 라고 이야기했다. 현관에는 뒷굽이 삐죽 접힌 검은색의 단화가 한 켤레가 있었다.


그러자 한 아주머니가 부엌쪽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다가 몰려든 아이들을 보며 멈칫하더니 날 선 목소리로 물어봤다.


"뭐야?"


우리는 신발장에서 우물쭈물 거렸다. A는 현관문 옆에 있는 작은 방을 가리키며 우리에게 자기 방에 가 있으라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쭈뼛 건넨 우리는 A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았다. 얇은 벽 너머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엄마가 친구 데리고 오지 말랬지. 집도 좁아 터져 죽겠는데. 하여간 엄마 말은 죽어라 안 듣지, 너는."


"엄마, 집에 먹을 거 있어?”

 

"너 아주, 난장판 만들기만 해봐.”


우리는 방 안에서 아주머니께 인사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런 우리의 고민이 무색하게 아주머니가 쾅 하고 현관문을 세게 닫으며 나가셨다. 이윽고 A가 ‘나와도 돼.’ 하며 방문을 열었다. 초등생 대여섯명으로도 꽉 차는 거실에 구경할 건 없었다, 빼곡히 들어찬 살림살이 뿐이었다.


A가 자기 방에서 그동안 모은 종이 인형 옷 입히기와 반짝이는 스티커를 가져오며 아이들의 환심을 사려 했다. 하지만 이내 한 아이의 발언으로 A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배고픈데 먹을건 없어?”


A가 부엌 찬장을 뒤지자 나온건 라면 두 봉지였다. 굶주린 몇몇 영혼들의 불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들이 연달아 일어나자 A는 표정관리가 점점 어려워졌다. 예쁘장한 외모로 늘 아이들을 거만하게 바라보던 A의 캐릭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때, B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오늘은 우리 집 갈래? A네 아주머니도 우리가 갑작스레 와서 당황하셨던 것 같은데 다음에 다시 허락 받고 오자.”


아이들은 당장에 찬성했다. B네 집에는 놀 것도 많았고 무엇보다 언제가도 활짝 웃으며 반겨주시는 B네 아주머니는 음식솜씨도 아주 좋았다. 아이들이 '배고파!'를 외치며 빠르게 신발을 신고 A네 집을 나섰다. A가 뒤에서 들릴랑 말랑한 작은 소리로 이야기했다.


"나는 엄마가 곧 오신대서 다음에 갈게."


그래도 A가 아무렇지 않은척 하고 따라갈 줄 알았는데 아니여서 의외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입술이 또 떨리는 중인지 아닌지는 못 봤다.


앞장서서 아이들을 이끄는 B와 고개 숙인 A의 모습이 자꾸 겹쳐 보이자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그래서 '오늘 엄마가 빨리 오랬어.' 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와서 침대에 발라당 누워 곰곰히 생각해봤다. '내일 A는 어떤 얼굴로 학교에 올까? 아무 일도 없단 표정일까? 아니면 시무룩할까?’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린 내 머릿속에 캐릭터가 하루아침에 바뀐다는 게 잘 그려지지 않았다.


다음날, A는 외모를 꾸미느라 잘 끼지 않았던 두꺼운 안경을 끼고 학교에 왔다. 동그란 눈이 순식간에 작아졌고 살짝 부어 있었다. 그 날 이후, A의 말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아이들 무리에 껴서 말 없이 웃기만 했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예전처럼 말이 툭 하고 나갈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바로 말을 멈추고 멋쩍게 아이들의 눈치만 살폈다.


A의 캐릭터가 도도한 캐릭터에서 눈치보는 소심이로 확실히 자리 잡은 듯 했다. 아이들은 달라진 A의 모습에 낯설어하다가도 이내 적응하고는 A가 원래부터 소심한 캐릭터였던 것처럼 대했다.



 





A가 나를 불렀다. 물어볼게 있다고 했다.


"내 성격 좀 이상하지?"


나는 차마 아니라고는 말 못하고 '갑자기 왜?'라고 반문했다. A는 '그냥...' 이라고 말했다. 뭐라 말해야할지 몰라서 눈동자만 굴렸다. 본인도 알고 있으면서 나한테 굳이 묻는 거 아닌가 싶었다.


"네가 생각하기에 애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아?"

"음..."


계속되는 난감한 질문에 이걸 솔직히 말해야 하나 어째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A가 여지껏 보여준 적 없는 약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안경 너머 동그란 눈이 빨개졌다.


"내가 어떤 걸 고쳐야 할까?"


왠지 솔직하게 말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A가 상처받지 않을 만한 단어들을 최대한 골라 천천히 우회하며 말을 했다.


"고마워. 얘기해줘서."


내 예측은 또 빗나갔다. A의 옛날 캐릭터라면 '내가 언제 그랬어? 네 눈이 삔 거(이상한 거) 아니야?' 라고 할 줄 알았다.


A가 아주 복잡한 얼굴로 웃으며 본인의 가정사를 살짝 풀어놨다. 나는 '음음.' 하며 그냥 들어주었다.


그 뒤, A가 바뀌었다. 여전히 친구들의 눈치를 봤지만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아, 이 말은 저 친구를 불편하게 하나?'로 시점이 바뀌며 본인에 대해 다시금 배워가는 것 같았다. A는 단어 하나, 억양 하나 섬세하게 신경쓰기 시작했다.


A의 변화는 친구들의 마음을 조금씩 돌이키게 했는데 그래도 한 번 금이 간 관계였던지라 쉽게 회복되진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A는 자신보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C와 붙어다니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 둘을 보면서 친구들이 '쟤 C를 하녀 부리듯 하려고 데리고 다니는거 아니냐.'고 했지만 나는 A가 C에게 자신의 과자를 나눠주는 걸 본 적 있었기에 '아닐걸.'이라고 말하면서도 확신은 없었다.


그리고 곧 학년이 바뀌었는데 A와는 같은 반이 되지 않아 이후에 그녀가 어떤 캐릭터로 변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처음엔 복도를 오고가며 마주칠때마다 가벼운 인사정도는 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흘러서는 서로 못 본 척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종종 새로운 반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밝게 대화를 나누는 그녀를 보기는 했었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A는 어떤 캐릭터로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 궁금할 때가 있다. 계속해서 자신의 힘으로 자존감을 하나 둘 배워 나갔다면 예쁘장한 외모에 어울리는 빛나는 캐릭터로써 잘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어딘가 결핍되어 있는 캐릭터들을 사회에서 마주칠 때면 희한하게도 어린 시절의 A가 종종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어쩌면 가장 투명했을 시절에 만난 뚜렷한 캐릭터여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단지 사랑받고자 했던 어린아이의 욕구와 노력이 숭고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누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도 스스로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것. 그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페르소나를 만난다. 그리고 그 가면들이 온전한 자기 자신인 줄 착각에 빠져버릴 때가 종종 있다. 회사 이름이 적힌 반듯한 명함이 곧 나이고, 유행하는 옷을 입어야만 진짜 나인 것 같고, 특정 집단에 속해져 있을 때에 온전한 나인 것 같이 느껴지지만 언젠가는 그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이 온다. 직장은 언젠가 그만두게 되고, 유행은 곧 지날 것이고 아무리 친한 친구 혹은 가족일지라도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그 때 그 가면은 나의 일부였을 뿐 나의 전부는 아님을 알고 있아야 한다. 그래야만 A가 나에게 했던 질문인 '내가 뭘 고쳐야 할까?' 같은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나는 무엇을 원할까?' 하는 자아성찰이 생긴다. 자아성찰은 우리를 발전하게 하는 큰 원동력이다.


그런 자기 객관화가 있어야만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우리가 소개팅 자리에서 생면부지인 타인을 알아가기 위해 수많은 대화를 나눠보듯이 자기 자신과도 수많은 대화를 끊임없이 나눠봐야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자문자답을 통해 부족한 건 채우고 고쳐야 할 건 고치고 칭찬해줄 건 칭찬해주어야 한다. 정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르겠다면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참고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그렇게 자존감이 채워진 사람은 어떠한 캐릭터를 입든 빛이 난다.


사람들의 특징이 재밌어서 관찰하던 초등생이 어느새 훌쩍 커서 사람과 나를 다시 또 관찰해보고 있다. 그 때의 인간도감과 지금 인간도감이 바뀐 게 있다.


누구에게나 극강의 도도함이 있고, 소심함도 있으며 공주병, 왕자병도 있다. 즉 살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캐릭터의 모습이 우리 안에도 다 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할 것도 없이 나 자신을 바라보자.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남을 사랑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주변을 바라보니, 모든 사람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정말이지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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