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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해 Jun 28. 2022

[k의 기록] 8. 내가 그렸던 인간도감 (1)

캐릭터 보존의 법칙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뭔가가 존재하는 것 같아. 반이 바뀌어도 똑같은 애가 있다니까? 그게 정말 신기해!"


세상에 떨어진 인간 사용 설명서라도 발견한 양,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의 나는 같은 방을 쓰는 오빠한테 조잘 조잘 떠들어댔다.


학년이 바뀌어도 비슷한 캐릭터들이 언제나 존재했다. '어떤 회사나 조직을 가든 또라이는 분명 존재한다.'는 어른들의 이치와 같은 맥락이었다.


이 세상의 흐름이 너무 신기해서 두 살 터울인 오빠에게 감탄을 늘어놓았다.


친구가 아닌 오빠에게 이야기 한 이유는 나보다 2년이나 더 살아봤기 때문이었다. 오빠는 늘 나와 싸울때면 '내가 너보다 먹은 밥만 따져도 몇 개인지 아냐. 그니까 까불지 마라.'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본인이 연장자임을 강조했기에 삶을 더 영위한 오빠를 무의식중에 경외할 수 밖에 없었다.


당연지사 내가 발견한 이 신비함에 대해 어떤 학문적 혹은 철학적인 소양을 같이 나눠줄거라 생각했는데 돌아온 반응은 '헛소리 그만하고 숙제 했냐.' 였다. 엄마, 아빠만큼이나 권력을 잡고 있던 오빠 말에 나는 금방 생기를 잃었다.    


'짜증나. 숙제 안 한 건 어떻게 알았대?' 하고 궁시렁 대며 책상에 앉아 공책을 뒤적거리는 척 했다. 그리곤 머릿 속 다른 세상에 있는 혼자만의 공간에 숨어 이때까지 발견한 캐릭터 보존 법칙에 대해 다시금 펼쳐보았다.


사회화가 덜 된 원숭이 마냥 날뛰는 초딩들의 성격적인 특징들과 패턴은 매우 단순했고 우리들은 거기에 곧잘 별명들을 붙이며 놀리곤 했다.


공주병, 소심이, 뻥쟁이, 쏘닉(작고 날쌘 친구들을 우리는 이렇게 불렀다), 미소천사 등등. 캐릭터들의 별명을 대략 간추리면 이런 패턴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별명이 그 해에 만난 특정 아이의 정체성인줄만 알았는데 학년이 바뀌며 새로운 교실, 새로운 친구들사이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얼굴만 바뀌었지, 캐릭터는 똑같다! 아니, 심지어 얼굴 생김새에 따른 분위기도 비슷해!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말을 그 때 알았으면 아마 썼을 것 같다.


작년에 만났던 공주병, 소심이, 뻥쟁이, 쏘닉, 미소천사 등등. 낯익은 캐릭터들이 그대로 또 있었다. 그리고 그 캐릭터들의 말투와 행동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얼마지나지 않아 나는 이 개성있는 캐릭터들의 평균을 낼 수 있었다. 누구를 만나든 캐릭터만 파악이 되면 '대체로...' '대다수...' 등의 부사를 붙여서 짐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즘으로 따지면 MBTI가 어떤 유형인지 물어보고  ‘아, 너는 이런 사람이겠네?’ 하고 파악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가령 옆머리를 손으로 배배 꼰다던가 앞머리를 하루 종일 매만진다던가 그도 아니면 남자아이들 앞에서만 뜬금없이 앞섬을 가리면서 여자아이들을 갑자기 하녀 취급을 하면 '대체로' 공주병이었다. '대다수' 그녀들의 필수템은 꼬리빗과 거울이었고 '보통은' 코맹맹이었다. 내가 만난 공주병 a도 공주병 b도 공주병 c 등등 '대부분'이 그런 패턴이었다.


지금이야 이 부사들이 누군가를 쉽게 단정짓는 아주 위험한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초딩이 뭘 알겠는가. 보여지고 느껴지는대로 판단할 뿐이었다.


나는 캐릭터들을 정리해서 비밀일기장에 적기로 했다. 파브르의 곤충도감을 인상깊게 봤던 나는 그 책을 모티브 삼아 일종의 인간도감을 만들기로 한 거였다. 초등학생의 발칙한 기획이었다.


반 친구들을 떠올리며 그 아이의 특징이 담긴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옆에는 작은 글씨로 그림에 대한 설명을 적어 내려갔다. 싫어하는 친구를 그려넣을 땐 '얘는 대체 왜 그럴까?'하며 이해가 가지 않는 듯이 고개를 젓기도 했다.  


[주황색을 좋아함. 젓가락질을 이렇게 함. 다리를 떪. 말이 굉장히 느림.] 이런 식의 굵직 굵직한 특징이었다.

끼가 넘치는 애들은 주황색을 좋아했고, 은근히 고집 있는 애들, 혹은 애정결핍인 애들은 젓가락질이 특이했다. 허세 있고 거짓말을 종종 하는 애들은 습관적으로 다리를 떨었고 눈치를 많이 보는 친구들은 말이 느리고 소리가 작았다.


반 아이들을 하나하나 그려나가고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왔다. 동그라미 얼굴, 직사각형 몸뚱아리, 삐뚤빼뚤 곡선으로 손가락까지 야무지게 그리고 나서 아무생각 없이 평소 내가 즐겨 입는 옷을 그려 넣었다.


자, 나는 어떤 캐릭터지?


반에서 불리우는 별명은 '엄마', 아니면 '두목' 또는 이름 한글자를 이용한 유치한 별명. 이름 별명, 이건 아무 의미도 없어서 됐고. 흠... 성격... 습관... 말투... 흠...


좀처럼 내 특징을 적어내려갈 수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막막했다. 여자친구들이 보는 나는 '엄마'였고 남자친구들이 보는 나는 '두목'이었다. 그런데 진짜 우리 엄마가 보는 나는 '애기'였고 오빠가 보는 나는 '말 안 듣는 하인'이었다. 아빠가 보는 나는 '공부는 오빠가 더 잘하지만 성공은 얘가 할' 자식이었다.  


모든 것에 의외로 동의할 수 없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애기이고 싶을 때도 있었고 나도 보호 받고 싶은 부하가 되고 싶을 때가 있었고 엄마 앞에서는 애기 취급 받는게 싫었고 오빠랑 아빠한테는 ... 넘어가자. 즉, 주변 사람들이 보는 내 모습은 알고보면 스스로는 꽤 무리하고 있던 부분들이 많았던 거다.


왜 그 동안은 이걸 몰랐지?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린 아이의 정체성은 외부 자극에 의해 결정이 되는 것이 많았으니까. 어떤 가정환경에서 또 어떤 친구들을 만나 어떤 말을 보고 듣고 배우며 자랐느냐가 나라는 사람을 만들고 정의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나'인가에 대한 의심을 한 번도 해본적이 없었다. 내가 그랬듯 그들도 보여지고 느껴지는 대로 나를 판단하고 있었을 테니까.


내 캐릭터를 그리려는 그 순간에야 인생 처음으로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했다. 나는 정말 그러한 애인가. 나는 정말 남들이 말하는 이런 특징을 가진 아이인가.


나는 급격하게 허무해졌다. 오빠말대로 대체 이게  헛짓거리인가 하는 자괴감에 휩쓸려 인간도감을 뜯어버렸다.  쓸데 없는 데에서 충동적이고 행동적이다. 아직도 아쉽다.  비밀 일기장을 고스란히 가진채 나의  의구심을 건강하게 발전시켰다면, 훌륭한 자기 성장의 발판이   있었을텐데 도움닫기를   있는 힘이 없었다.


타인을 판단하는 건 쉬웠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보기 어렵다라는 걸 깨달은 이후 캐릭터의 평균 내리기를 관뒀고 더 이상 생각하기를 멈췄다.


무엇보다 한 아이를 통해 사람에 대한 복잡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하나의 캐릭터로만 단정지을 수 없는 입체적인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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