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해 Mar 16. 2022

[k의 기록] 1. 무표정의 아이

잃어버린 감정 만날 준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러겠지만 나 역시 어디 한 군데가 고장이 나 있다. 나는 내가 고장이 나 있다는 사실을 좀 늦게 알았다. 그 고장은 나에게 조금 거슬리는 정도였지 내 인생의 주가 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의 고장이 서글픔을 줬던 일들을 꼽자면 이렇다.


20대 초반의 일이다. 갖고 싶었던 민트색 백팩을 벼르고 벼르다가 구매를 했다. 당시에 10만원이 훌쩍 넘는 값이어서 대학생인 내게는 꽤 큰 지출이었다. 그래도 계속 눈 앞을 아른거리는 백팩에 결국 큰 마음 먹고 질러버렸다. 택배가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어느날, 친한 지인들과 카페에 있다가 택배 도착 문자를 받았다. 카페에서 자취방까지 얼마 걸리지 않은 거리였기에 한달음에 달려가 가방을 맞이했다. 예상대로 색이 잘 빠진 민트색이어서 마음에 쏙 들었다. 나는 한 껏 신이나서 가방을 들고 다시 카페로 와서 지인들에게 자랑을 했다. 가방을 이리저리 메고 빙그르르 돌기도 하면서 들떠 있었는데 한 지인의 말이 훅 들어왔다.


"근데 너 지금 신난거야?"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고 했다. 워낙에 서스럼 없는 사이였기에 친근감의 시비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였다. 표정을 보니 정말로 궁금해서 던진 화두였다. 그의 눈에 나는 전혀 신나 보이지 않았고 그게 이질적이었나보다.


"하나도 안 신나 보이는데?"

"나 지금 엄청 신났는데?"

"그냥 평소랑 똑같은데?"

"피곤해서 그런가보지. 과제 때문에 밤샜잖아. 아, 괜히 시비 걸지 마라~"


나는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말이 길어졌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가방 다시 갖다놓고올게.' 하고 자취방으로 가는 길에 어린 시절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민트색 가방 처럼 민트색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 앞에서 사진 찍는 초등학생의 나.


다녔던 피아노 학원에서 발표회를 열었는데 스케일이 꽤 컸다. 넓은 공연장도 대관했고 피아노 연주회처럼  학생들이 입을 드레스도 준비해주었다. 피아노 자격증 시험을 (나는 5급을 땄던걸로 기억하는데 피아노 전공자인 친구한테 물어봤더니 생전 처음 듣는 자격증이라고는 한다.) 치룬 직후였기에 모두가 한층 더 들떠 있었다. 일종의 뒷풀이 겸 파티였다.


발표회 당일, 학원 측에서는 사진기사님까지 대동하여 곱게 화장을 한 학생들을 차례로 피아노 앞에서 독사진까지 찍게 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고 사진기사님은 내게 포즈를 요구했다.


"자, 우리 친구~ 웃어볼까요~?"


나는 열심히 웃었다. 정말 열심히 웃었다. 평소에 표정  풀고 다니라는 지적 많이 받았던 나였다. 듣기 싫은 그 말을 이번에는 듣지 않기 위해 웃는 연습을 했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입꼬리 근육광대쪽으로 찢어져라 겨서 근육의 위치를 익혔다.


"자자, 우리 친구는 왜 이렇게 뚱할까? 오늘 기분 안 좋은 일 있어요~?"


그러나 사진 기사님은 내 노력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옆에 서 있던 학원 선생님은 나 이외에도 많은 학생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진 기사님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오늘 저 친구가 조금 열이 났었는데 그래서 그런가보네. 아파서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아직도 기억나기로 나는 그날 오전부터 아팠다. 감기몸살인지 콧물과 열이 났다. 그래도 드레스를 입고 선생님이 립스틱을 칠해  때 즈음엔 열이 많이 렸었다. 생님도  이마에 손을 대어 보더니 많이 좋아져서 다행이다라고 했었다. 그제야 나는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에 잔뜩 부풀었다. 민트색 드레스도 마음에 들었고 촌스럽게 진한 화장도 마음에  들었다.


사진기사님과 선생님이 사진을 그만 찍자고 할까봐 초조해졌다. '선생님, 저 지금 열심히 웃고 있어요. 근데 왜 안 웃는 것 같이 보이는지 모르겠어요.' 라는 말이 목구녕을 맴돌았다. 입을 열면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꾹 참느라 표정은 점점 뚱해지고 입술 주변이 씰룩댔다.


"자, 그럼 마지막 한 컷만 찍고 다른 친구 올게요~"


사진 기사님이 나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물었다. 웃는거야. 웃어야 . 나는 어금니를  깨물며 머릿 속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끝내 눈은 화나있 입꼬리는 수평선을 유지한 어린아이의 모습이 액자에 렸다.


민트색 드레스를 입은 무표정의 어린이와 민트색 가방을 맨 무표정의 청년. 바로 나다. 나는 감정이 고장이 났는가보다.


생각해보면 그럴만하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존중받지 못했던  감정들은 오랜 기간  자리를 찾지 못해서 달아나 버렸다. 뒤늦게 붙잡은 감정은 죄다 메말라 형체를 알아볼  없었다.


기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슬플  언제까지 슬퍼해도 되는지, 이런 상황에 이런 감정이 드는게 맞는건지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었다. 그나마  고장을 무시할  있던 이유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에너지 덕분에 사람들과 어울리고 내 일을 해나가기에는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속은  텅텅 비어 있었고 끝도 없는 공허함에 빠져 종종 허우적댔다.


허무과 공허가 찾아올 때면 내가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심장 없는 고철로봇 같다고 생각했다. 살아는 있는데 살아있지 않은 그런 느낌. 심장이 허공에 떠 있는 그런 느낌? 아니면 가슴을 중심으로 몸이 찢어진 채 덜렁거리는그런 느낌? 어쨌든 고로봇처럼 지푸라기로라도 빈 곳을 채워볼까 싶었다.


내가 채울 수 있는 지푸라기, 그게 무엇이든지간에 일단 과하면 되었다. 쑤셔넣고 쑤셔넣다가 어, 더 이상 안되겠는데? 싶을 때쯤엔 저 만치 뒤쳐져있던 감정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극한 고통 너머에서 느낄 수 있다는 아드레날린처럼 나는 그렇게 스스로의 마음과 몸을 자학하며 일어설 힘을 찾았다.


가끔 호흡이 가빠지면서 명치 언저리가 강하게 조이고 검은 구덩이 속에 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무시했다. 에이, 감정 하나 제대로 소화못시킨다고  어떻게 되겠어? 내가 일상을 풀어나가는데 전혀 문제 었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보다 당당하게 살고 있는 편에 속했기에 내 고장은 나에게 별 문제가 아니었다.



집을  나와서  발자국정도 걸었을 때였다. 순간 '죽는다.' 생각에 강하게 휩싸였다. 누군가 나에게 기다란 총구를 숨어서 겨누고있었고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금방이라도 총을 발사할  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명치가 막혔고 목구멍이 조였으며  앞이 팽팽 돌았다. 식은땀에 등이 순식간에 젖었고  앞이 팽팽 돌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같았다. 미세하게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주차된  사이로 몸을 숨겼다.


지금은 죽고싶지 않다.

  

불안하고 두려움에 휩싸이면서 드는 생각은 저거였다. 지금은 아니야, 이렇게는 아닌  같아.


쓰러지듯 주저앉아 고개를 무릎에 파묻고 가슴을 움켜쥔채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다리 밑에 아스팔트가 단단하게 있다는  인지되면서 호흡이 돌아왔다. 나를 겨누고 있던 총구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것 같지만 내 심장을 노리는 시선은 없어졌다. 나는 한참을 차 뒷편에서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뒤로도 ' 지금 죽는구나.' 싶은 확고한 불안, 두려움, 무서움의 감각들이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불쑥 불쑥 찾아왔다. 나는 새로운 지푸라기를 잡은 듯 했다.  낯선 고통이 지나면  어떻게든 나아갈 힘을 만들어내리라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코로나가 터지고 사람들과 거리두기가 시작되었다. 마스크는 나의 속 마음을 더 삼키게 했고 내 표정을 더 없애 버렸다. 그간 제대로 분출되지 않았던 감정은 깊은 늪을 만들었고 나는 그 속으로 가라앉았다. 몇 달 뒤, 지인의 추천을 받아 심리상담을 신청했다. 


그래, 잃어버린 내 감정을 만나보자. 그리고 생생하게 살아가보자. 

뭐, 나는 행복하고 싶으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