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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해 Apr 02. 2022

[k의 기록] 2. 청개구리 잡고 닻 들어올리기

나를 담당하는 상담 선생님은 그렇게 경력이 많아 보이진 않았다. 그렇게 짐작했던 이유 중 하나는, 선생님의 질문의 의도가 읽혔기 때문인데 그 순간, 내 속에 살고 있는 청개구리 심보가 꿈틀거렸다. 잔뜩 부풀어 오른 개구리는 금방이라도 날뛸 태세였다.


"음... 맞아요.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황급히 선생님이 원하는 답을 내뱉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인자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어정쩡한 미소로 화답하며 상담을 시작하기 전, 스스로에게 내린 세 가지 규칙을 떠올렸다. 첫째, 제 삼자이자 전문가가 객관적으로 진단하는 내가 궁금하니 웬만해선 청개구리를 풀지 말자. 둘째, 그러기 위해 모든 걸 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A부터 Z까지.


살면서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서 '너는 네 얘기를 잘 안 하잖아.'라는 말을 들어왔다. 어찌나 많이 들었던지 가끔은 서운할 지경이었다. 아니, 그럼 그동안 내가 입 밖으로 꺼낸 내 생각, 내 감상들은 뭐, 옆집 개똥이가 했던 이야기였던가?


'본인 이야기에 있어서는 필요 이상으로 생각을 거치는 것 같아요.' 심리학을 공부한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어... 그래도 지금은 그동안에 비해서는 되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는데요...' 알게 모르게 쥐어짠 용기가 멋쩍게 사라졌다.


타인의 입으로 듣는 '나'에 대한 미세한 혼란스러움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별 신경 쓰지 않았을 것들이었다. 예를 들자면, '넌 네 이야기를 너무 안 해.'라는 말을 들으면 '너는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 라며 넘겨버렸을 테지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제대로 깨달은 이후부터는 조금씩 타인과 사회의 기준치를 수용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어느 선까지 용인해야 할지 가늠이 안 되는 거였다.  


그래서였을까, 타인에게 털어놓기 시작한 나의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내 약점으로 되돌아왔고 그에 따른 '너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타인의 판단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결국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신경 머리로 힌동안 나를 향한 말들에 날을 잔뜩 세운채 청개구리를 풀어놓았다.


누구를 탓하랴. 나도 참 융통성 없었던 것을. 돌이키건대 내 이야기를 '말'로 풀어내는 방식이 너무나 투박했다. 누군가에게 내 상황과 마음을 이야기한다는 건 마치 두꺼운 닻을 맨 손으로 옮기는 것 같은 느낌이었기에 옮기다 벅차면 중간에 포기해 버리곤 했다. 그렇게 문맥이 싹둑 잘린 내 말을 받아 든 이들에게는 그게 너무 가벼울 수밖에 없었다. 이해한다.   


나는 잠깐이라도 그 무거운 걸 들었다고 새벽마다 마음의 근육통에 끙끙 앓아대며 '와, 정말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는 감탄사만 연발했다.


더 이상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상담에 임하는 나만의 규칙을 세웠다. 세 번째, 마지막 규칙은, 상담 기간 내에 느껴지는 감정을 억누르지 말자 였다.


나는 선생님이 1을 물어보면 덥석 물고선 시키지도 않은 2에서 3까지 술술 대답했다. 내담자의 마음 깊숙이 묻어있던 것들을 조심스럽게 끄집어낼 양이었던 선생님은 당황한 듯 보였다. 어쩌면 그래서 몇몇의 유도질문을 더 적나라하게 들켰을지도 모른다.


상담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는 중간중간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시계를 확인하는 것까지도 들켰다. 배정받은 상담시간은 50분. 심리를 다루는 인류애적인 시간이지만 어쨌든 경제적 이해관계도 얽혀있다는 사실을 자본주의 시대에서 무시할 순 없었다. 그녀는 나에게 '천천히 이야기하세요.' 하며 따스하게 말한 뒤 종종 눈을 돌려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내 마음에 살고 있는 청개구리가 다시 한번 꽤액 거렸다. 그냥 선생님을 바꿔달라고 하든지 아니면 다른 센터로 가. 너 지금 자리도 꽤 거슬리고 있잖아.


상담실 책상은 뒷면이 막혀있는 유형이었는데 내담자의 의자가 그 앞에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다리를 책상에 쏙 넣지 못한 채 어정쩡한 거리에 앉아 다리를 살짝 비스듬히 둘 수밖에 없었다. 상담실은 생각보다 좁아서 내 의자 몇 센티 뒤로는 벽이었다.


'아냐, 남의 이야기 듣는 건 쉬운 일 아닌 거 알잖아. 그리고 등을 의자에 기대면 되지.'


개구리 뒷다리를 잡고 지금 상황을 빠르게 납득시켰다. 사실 선생님이 앞에서 피곤한 티를 내며 머리를 쓸어 넘기든, 시간을 대놓고 보든 내 무릎이 책상 뒷면에 부딪히든 거기에 계속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혼자 하고 있는 속 전쟁에 더 힘을 쏟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줄줄이 소시지처럼 지난 일들을 이야기한다는 건 꽤나 곤욕이었다. 안 하던 짓을 작정하고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몰려오는 엄청난 찝찝함에 혼미해져 가는 정신 때문에 연신 '여긴 어디고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더라?' 하면서 체크를 해야 했다. 아니지, 오히려 이성이 자꾸 끼어들어와서 문제였던 것도 같다. '이것까지 말해야 해? 그렇게까지 대단한 사건이야? 어디까지 말할 건데?' 하면서 머릿속에서는 자꾸 검열을 해댔다.


삐-


귀에서 들리는 익숙한 이명 소리와 함께 온갖 단어들이 두개골 안을 떠돌아다녔다. 내 입은 뻥긋 뻥긋 거리며 뭔가를 내뱉고 있었는데 정작 말의 주인인 내가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에 깊은 심해 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나는 주저앉지 않으려고 팔뚝을 연신 꼬집어대며 꿋꿋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주어 + 목적어 + 동사를 한 땀 한 땀 엮은 무거운 추를 고군분투하며 옮겨댔다.


A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D정도까지 갔을까? 그 언저리 즈음에서 느닷없이 눈물이 왈칵 터졌다.


"오잉?"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선생님은 무언가 성공한 눈빛을 하더니 울고 싶으면 울라고 했다. '아니요, 저는 울고 싶지 않고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싶은데요.'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목이 턱턱 막힌 채 입천장이 뜨겁게 울려댔고 성대 쪽에서 꺽꺽 대는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에엥?


선생님은 휴지를 건네며 그 일을 겪을 때 어떤 감정이 들었냐고 물었다. 나는 '글쎄요, 지난 일이라서.'라는 답을 막힌 콧소리로 토해냈다. 그녀는 '너무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하면서 내 감정을 재단해주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면 긍정적인 감정도 같이 억눌려요."


나는 이제 막 한글을 깨친 아이처럼 입을 헤- 하고 벌렸다. 희미했던 개념이 새롭게 접목되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트색 가방을 친한 지인들에게 자랑했을 때 왜 내가 신나 보이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깊은 마음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있다면 그 사람에게 지금의 힘듦을 부분적으로라도 이야기할 수 있어요? 구체적이 아니더라도요, 표현해보는 거예요. 우선 그걸 목표로 삼아 보고 다음 시간에 어땠는지 이야기 나눠봐요."


선생님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시간이 다 되었음을 대놓고 가리켰다. 나는 코를 팽 풀고서 숙제를 받아 상담실을 나왔다.


평일 늦은 오후였는데 거리에는 사람이 많았다. 몇 년 만에 흘린 눈물은 금세 말라서 오히려 건조했지만 콧물은 주륵 주륵 계속 나왔다. 닦기 귀찮아서 그대로 둔 채 집까지 걸어갔다. 걷다 보면 마르겠지 싶던 콧물은 마스크 때문에 환기가 되지 않아서인지 더욱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마음  닻을 들어 올리는 과정을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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