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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해 Apr 09. 2022

[k의 기록] 3. 애매한 인간

시리즈 1

"우리 애는 잘해. 노력을 안해서 그렇지."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한 번씩은 꺼내봤을 말이다. 우리 엄마는 내가 어릴 적 이 말을 꽤 진지하게 여러번 내뱉었다. 이 말이 썩 틀리진 않았다. 난 뭐든 못하는 편이 아니었다. 꽤 높은 아이큐에 잔머리도 있었고 공부도 어느정도 했으며, 운동, 미술, 성격 심지어 키까지 있는 편이라 어디서 주눅들지는 않는 쪽이었다.


근데 그게 다였다. 그냥 저냥 못하지는 않는 애매한 아이.


그럼 어떤 분야든 진득하니 노력 하면 금방 두각을 낼 수 있을텐데 왜 안 그랬어? 나는 지나온 날들에게 이렇게 자문했다. 글쎄, 6살인가 7살 때부터 하고 싶던 것들을 펼쳐놨는데 어린애가 듣기엔 너무나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어서 좌절되는 경험을 반복하다 보니 그랬나?


어릴 적 내 꿈은 연기자, 애니메이션 작가, 운동선수, 소설가였다. 반짝 반짝 빛나던 꿈의 조각들을 소중하게 꺼내놓자, 연기자는 딴따라여서 안되고 애니메이션 작가는 돈도 안되는데 고생하는 직업군이라 안되고 운동은 여자애라 안된다는 소리가 고작 6살인가 7살짜리한테 돌아왔다. 짜증을 넘어선 혐오어린 눈빛에 용기를 잃어 소설가는 얘기조차 꺼내지 못했지만 나는 늘 독후감상을 받아왔다.


돌이키건데 제일 아쉬운 건 운동이다. 태권도, 검도, 특공무술 같은 분야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 언저리도 못갔다. 그나마 태권도는 오빠 따라 몇 번 청강을 하곤 했었다.


그래도 초등 고학년 때는 단거리 육상선수로 발탁되었다. 또래 애들에 비해 단거리 기록이 꽤 좋은 아이들을 스카웃 했는데 그 중 한 명이었다. 육상부라 하나 교육청의 시범 운영 중에 하나여서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외부 코치도 부르면서 꽤 본격적인 활동을 진행했고 아침 6시 30분 운동장 훈련이 매주 있었다.


나는 달리기를 좋아했다. 계주는 빼놓지 않고 나갔고 내 차례 때는 역전승도 몇 번 했다. 달릴 때 옆에서 응원해주는 친구들의 시선과 외침들도 좋았고 바람에 의해 귀가 멍멍해지면서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날아 가는 그 짜릿함도 좋았다. 앞만 보면서 '허벅지를 가슴 쪽으로, 더 높이 치켜 들어!' 라고 뇌에서 명령하면 몸이 수행해주는 그 기분도 좋았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그 찰나의 시간들이 좋았다.


그런 내가 육상부에 들어갔으니 찰떡 아닌가? 좋아하는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의 완벽한 궁합 아닌가?


하지만 나는 누가 시켜서 마지못해 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무언가를 잘한다고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졌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건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었다. 어쨌든 그것을 티내지 않으려고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떠밀리듯 하는 것.


이미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확신을 잃어봤기 때문에 기대했다가 또 실망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고 싶다고 다시 욕심을 내어볼 용기도 마음의 힘도 부족했다.


하지만 육상부는 내가 하겠다고 먼저 나선 게 아니라 환경이 그렇게 조성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하는것 이라는 이유를 갖다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적당한 핑계거리였다. 


'그래, 어쩔 수 없이 하는거야.' 라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속으로 즐겼다.


내가 아침 훈련을 끝내고 땀을 흘리며 교실에 들어오면 아이들이 '우와, 멋있다.' 하면서 몰려들었고 그럴때면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졌다. '오늘 훈련이 조금 힘들었네. 나 세수 좀 하고 올게.' 하면서 뭐 있는 척 화장실 가는 내 모습도 좋았다.


하지만 표면적인 가면, '하기 싫지만 재능이 있고 어른들이 원하니 해주는거야.'는 겉치레를 쓴채 표현하지 않는 초등생의 속내를 누가 알랴.


육상 담당 코치님은 '너네 하기 싫은 거면 억지로 하지 말라.' 며 훈시했다. 나랑 같이 발탁된 같은 반 친구는 코치님의 말을 듣고 '그냥 때려칠까? 아침훈련 너무 힘들어.' 라며 내게 속삭였다. 나는 그 친구보다 더 인상을 쓰면서 '그러니까 차라리 아침 말고 방과 후에 훈련을 시키던가.' 고 말했다. 속으론 오늘은 운동장을 몇 바퀴 더 뛰어야 하더라 계산하면서 페이스 조절을 가늠해봤다.


그 날도 비슷했다. 친구들은 하기 싫어했고 나는 하고 싶어했지만 겉으로는 그들과 동화되어 있었다. 코치님은 오늘은 그동안 했던 훈련의 기록이나 한 번 재보자며 운동장 대각선에 선을 그었고 평상시처럼 달려보라고 했다.


"너 최선을 다해서 뛸거야?"


나와 기록이 비슷해 짝이 된 같은 반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어... 글쎄, 너는?' 나는 몸을 풀면서 되물었다.


"그냥 나랑 설렁 설렁 뛰자. 어차피 내일도 훈련이잖아."


나는 친구와의 의리(?)를 저버릴 순 없었다. 여기서 내가 이 친구를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리면 왠지 배신자가 되는 것 같았다.


'오늘 기록재기도 평소 훈련의 연장선인건가? 코치님도 특별한 말 없었으니까.'


나는 운동장의 분위기를 한 번 읽어본 뒤, '그럴까?' 하며 평소처럼 친구에게 미소를 건넸다.

 

삐익-


코치님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나와 내 친구는 땅을 박차며 달려나갔다. 보는 눈이 있었기에 설렁설렁 뛰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게 적당히 달렸다. 젖먹던 힘까지 최선을 다해 달리지는 않은, 그런 딱, 애매한 달리기.


그 애매함 때문에 생겨난 미적지근한 바람이 꽉 묶은 내 머리를 헝크러트렸다. 그저 그런 기분을 느끼며 오늘은 학교 앞 문구점에서 떡볶이나 먹을까 생각했다.  


통과선을 동시에 밟은 내 친구와 나는 그 날 같은 초수를 기록했다.


며칠 뒤, 우리는 육상부에서 탈락 되었다. 육상부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커트라인까지 딱 0.1초 모자랐다. 친구는 아쉽지만 그래도 재밌는 경험이었다며 웃었고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당장 코치님께 달려가 다시 기록을 재달라고, 내 가능성은 이게 끝이 아니라고, 나는 이게 마지막 달리기인지 몰랐다고 매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건 환경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했던 거였고, 이제는 그 환경이 사라진 것 뿐이었으니까. 재능이 있어도 기회가 왔을 때 잡지 못하면 끝이라는 세상의 이치를 이때 뼈 아프게 겪었다. 뭐, 기회야 다시 충분히 만들수도 있는 거였지만 그걸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종종 아침마다 운동장에서 훈련하는 다른 친구들을 볼 때면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왔다. 그게 어떤 감정이었는지 충분히 느끼고 누군가에게 이를 공유 했어야 했는데 나조차 내 마음을 무시했다.


'커서 넌 뭐하고 싶냐.'고 묻는 부모님께 '분필 소리가 듣기 좋아서 선생님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부모님은 무척 좋아했다. 


내가 6살때인가, 7살때 한껏 부풀어오른 내 꿈들을 이야기했을 때 누군가가 말을 끊지 않고 잠시잠깐이라도 들어주었다면 어땠을까. 충분히 발효된 마음으로 욕구가 명확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후로도 계속 정의 내려지지 않은 마음들은 늘 애매해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 애매함이 나를 주저하게 했고 미적지근하게 했으며, 그런 인간이 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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