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기록]18.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기에.

나의 계절

by 겨울해

카페를 양도받겠다 하는 양수자가 나타났다. 매물을 올린지 한 달 반정도 지났을 때였다. 참 웃기게도 '아, 이대로 카페를 계속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갈대 같은 내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게로 찾아온 양수자는 단번에 권리금의 일부를 넣어주었다.


통장에 들어온 숫자를 확인한 이후부터는 '아, 이대로 카페를 계속 해도 괜찮을 것 같던' 내 마음을 정리 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지금 내 카페의 상황은 영혼을 갈아넣은 결과, 매출이 어느정도 안정기로 접어 들게 되었고 좋지 않은 이 상권 속에서도 신규 손님의 유입도 꾸준히 들어왔으며, 배달앱 평점은 계속적으로 5점이었다. 그리고 초창기에 체력을 너무나 갉아먹던 베이킹 역시 요령이 생겨서 오바 조금 보태서 이제는 눈감고도 뚝딱이었다. 무엇보다 찾아주시는 단골 손님들과의 유대관계도 잘 형성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그 무섭다던 '정'이 들었다.


아... 그냥 내가 할까.


다시 곰곰히 생각했다. 왜 내가 이 때에 가게를 넘겨야겠다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겼는지에 대해서.






먼저는 나라는 사람의 성향이 컸다. 활동적인 에너지가 많은 편인데 매일 이 좁은 공간에 갇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 가장, 많이 힘들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가면 오후 16시까지도 소화가 안될 정도로 운동량이 없었다. 위가 약한 탓도 있겠지만 커피를 뽑고 디저트를 만들며 움직인 걸음수는 고작 바 안을 몇 십번 왔다갔다 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래서 퇴근 후 집까지 걸어가는 등 따로 활동량을 채워주었지만 하루의 절반을 좁은 공간에서 보낸다는 건 마치 진열장의 인형이 되어 옴싹달싹 못하는 듯한 기분에 좀이 쑤시다 못해 아팠다. 흔히들 말하는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통유리로 된 동물원 같기도 하고.


게다가 완벽주의 기질도 어느정도 있는 나는 내 승(?)에 찰 때까지 재료비 생각도 안하고 몇 번이고 또 반복하니 몸도 마음도 괴로웠다.


적당히 하자고 생각해도 스스로에게 감탄이 터져 나오지 않으면 다시 버리고 새로 만들었다. 나중엔 이게 손님을 위해선가 아니면 내 성격을 못 이겨서인가 헷갈릴 정도였다.


냉정하게 말해 장사는 자기 만족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닌데도 나는 세상을 배경으로 어린아이처럼 뛰어놀고 싶어했다. 하지만 뒷처리를 해줄 친절한 어른은 없는게 세상이었가.


이런 내 성향을 잘 알기에 숨 쉴 구멍을 뚫어주기 위한 노력도 계속 해왔다. 일주일에 하루 있는 휴무 때는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다녀와서 꽉 차 있는 머리를 비워주기도 했고 매장 내에서는 작은 이벤트를 종종 열어 신메뉴에 대한 손님들의 피드백도 적극적으로 받으며 보완점을 메꾸어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확실하게 낼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앞으로도 카페에 내 시간과 건강을 다 쏟아부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이 간혹 찾아왔다. 진정 나의 업으로 삼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즐거움을 찾으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느라 애를 썼다.


하지만 때때로 '아니야, 너 지금 즐거워, 즐거워야만 해.' 하면서 애써 외면하며 발버둥 치는 것이 느껴질 때면 속에서 쓴 물이 올라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마음 이면에는 스스로 선택해서 시작한 길이기 때문에 후회하면 안된다는 어떤 책임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즐겁지 않아서 그만 둔다.'는 결론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무슨 일이든 슬럼프는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언젠가는 흥미가 떨어지고 무기력해질 때가 온다는 걸 알기에 섣부른 오류를 범하고 싶지는 않았다.


진득허니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퇴근 후, 산책을 하면서 생각의 뿌리를 따라가봤다. 그러는 동안에도 인수 날짜는 구체적으로 정해졌고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아직 실감이 나진 않았지만 언제나 시간은 나보다 빨랐다.


산책을 하다보니 가을이 왔다는 게 새삼 느껴졌다. 뜨거웠던 여름이 무색하게도 쌀쌀해져 버린 밤공기 속에서 들이 마실 숨을 천천히 고르며 짙어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동그란 달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보이지 않던 별 하나가 옆에서 반짝 거렸다.


아... 맞네.


지금 가게를 넘겨야겠다 결단을 내린 이유는 이거 였구나.



어느 날, 카페를 시작하며 쓰기 시작한 브런치 글을 쭈욱 다시 읽어 보았었다. 생각보다도 가족에 대한 글이 많아 부끄럽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고 시작한 카페 창업. 3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나에겐 부모님께 보여줘야 할 어떤 결과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한 것도 없잖아 있었음을 드디어 스스로에게 고백했다.


내 삶의 주인으로써 선택한 길이었는데 30대 중반이라는 사회적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부모님이 친구들에게 '우리 딸 카페 사장이야.'라고 말하면서 은근히 어깨가 높아진다는 것을 알아버린 탓인지 알게모르게 외부의 눈치를 많이 보고 있었다. 나를 위해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잘 보이기 위해, 주변 시선에 맞추기 위해 달리다 보니 근본적인 연료가 떨어졌음을 무의식 중에는 느끼고 있었다.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것 뿐.


깨달은 시점에서 이제 방법은 두 가지였다.


카페를 더 키울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그만둘 것인가.


최대한 냉정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어렵고 힘들겠지만 카페를 더 키워보는 것은 분명히 인생의 큰 도전이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지금보다 더 잘 돼서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무엇보다 부모님이 좋아하실거고 당당한 딸이 될 수 있겠지.


그리고 그 시점부터는 카페를 하는 목적에 '돈'이 더욱 크게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본주의 시대에 더 큰 돈을 좇을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아니었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자문 자답을 하고 난 뒤 결단을 내렸다.


내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카페를 그만둬야겠다. 그래, 이 정도면 되었다고 나에게 속삭였다.


카페를 한지 아직 1년이 안된 시기였다. 누군가는 조금만 더 하면 1년인데 그 기간이라도 채우지 철없이 너무 빨리 그만두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한 편으로는 동의한다. 세월의 힘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켜켜히 쌓인 그 시간들은 나에게 뭐라도 가져다 줄 것이다.


허나 나는 앞으로 쌓일 시간보다는 그간 쌓아온 시간을 믿어보기로 했다. 최선을 다했고 후회없는 시간을 보냈기에 얻을 것은 충분히 얻었다고 느껴졌다.


한 계절이 가면 다른 계절이 온다. 그리고 새로운 계절을 위해 변화를 준비해야한다. 나는 지금이 내 삶에서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해야 할 계절임을 직감했다.


뜨겁고 치열했던 여름 끝에 내린 낙엽을 밟았더니 파스스인지 바스락인지 하는 소리가 단번에 가을로 데려다 주었다.


이른 가을 길을 천천히 걸어가며 산책을 마무리했다.



생각이 정리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다고 바뀐 건 없었다. 여름이 끝난다고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다만, 이어서 가을이 오는 것 뿐이다. 이를 증명하듯 당장 나는 단체로 들어온 디저트 반죽을 내일도 해야 했다.


인수가 완료되기 전까지 주어진 기간 동안에는 더욱 찬란하고 열정적인 시간들을 보내보자고 다짐했다. 후회 없이, 미련 없이 다가올 가을에게 당당할 수 있도록, 카페에서 보낸 지나간 여름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그래서 나의 계절을 언제든 또 다시 맞이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