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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해 Jun 14. 2023

감정적 식사에 대한 애도

맛있는 것들은 죄가 없는데.

재작년에 1년 동안 꾸준히 헬스를 한 결과 소위 말하는 미용몸무게에 도달했다. 어떤 옷을 입든 태가 났고 사진을 막 찍어도 굴욕샷이 적었다.


가장 좋았던 점은 그렇게 아프던 허리가 안 아팠던 것이다. 죽어있던 엉덩이 근육과 코어 근육이 살아나면서 척추 신경이 더 이상 눌리지 않았나 보다. 30대에게 운동이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무엇보다 생존을 위한 것임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내 몸을 아주 오랜만에 만나서 다독여 주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용케도 견뎠구나.‘ 토닥 토닥 달래주다가, ‘그러니까 이거 10kg는 추가로 더 견딜 수 있지?’ 하면서 근육을 찢다보면 또 그만의 희열이 있었다.


다음날 찾아오는 근육통을 ’으악학학‘ 하면서 즐길 수 있을 때 즈음에는 마음 또한 많이 성장해 있었다. 도저히 안될 것 같은 한계에 부딪혔을 때 ‘하나만 더!’ 하고 도전 할 수 있는 마음가짐, 고통을 견뎌내는 인내심, 몰랐던 자극점을 찾아 탐구하는 즐거움 등이 날이 갈수록 몸과 마음을 윤택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카페 운영을 시작했다.


1인 운영자가 되어 영혼이 갈려나가자 근 1년 정도 운동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육체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1년은 무슨... 고작 두 달 반도 못 가서 모든 근육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거울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쓰나미처럼 출렁거리는 살들이 지난 시간 흘린 땀들을 단숨에 집어 삼켰다. 맙소사. 견고하게 쌓아올린 벽돌집인 줄 알았는데 파도 한 번에 무너질 모래성이었다니.


허나 누굴 탓하랴. 밀려오는 고독감을 해결하기 위해 밤마다 와인, 위스키, 맥주까지 들이붓고는 잠도 제대로 못 잤으니 스스로 할 말이 어딨는가. 붓기는 지방이 되었고 쳐진 영혼과 육체를 들어올릴 근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카페 운영이 큰 경험과 자산이 되었으므로 나타난 모든 결과에 후회와 자책은 없었다. 늘어난 뱃살과 덜렁이는 팔뚝살, 들러 붙는 안쪽 허벅지를 꼬집으며 ‘또 다른 영광의 흔적들이야.’ 하며 위안을 날렸다.


어쩌면 타고난 근수저였기에 다시 운동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어느 한 켠에 있었을지도.


그리고 카페를 정리한지 반년이 더 넘은 지금,


“ 과자 세 봉지

콜라비 두 개

양배추 반 통

베이글 네 개

생라면 한 봉지

두부 한 모 “


최근 야식으로 먹은 음식들이다. 빵,과자 뿐 아니라 야채, 과일,구황작물 등의 건강식도 좋아하기에 남들이보기에 의아스러운 야식 구성일 때가 많았다.


“ 박스 과자 한 박스와 봉지과자 하나

거대한 마늘빵 다섯 조각

버섯 넣은 매운탕

생라면 한 봉지

냉동 블루베리 국그릇으로 두 번 “


이 메뉴들은 최근 새벽에 깨서 먹은 것들이다. 약 한 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먹다가 포만감이 어느정도 오르자 졸린 눈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누워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가장 근래, 저녁 식사로 집에 있는 재료 없는 재료를 탈탈 털어 또 다시 입 안 가득히 씹고 있다가 문득 이질감이 들어 저작운동을 멈췄다.


분명 좋아하는 음식들을 먹고 있는데 아무 맛이 나질 않네.


전 세계 산해진미가 앞에 있어도 똑같을 것 같았다. 이유는 나의 식사가 ’욱여넣는다.’ ‘씹어버린다’ ‘삼킨다.’등의 문장으로만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리라.


‘맛있다.’ ‘황홀하다’ ‘만족스럽다’ 등의 충분히 누려야 하는 감각들은 모조리 빠져 있었다. 깨닫고 나자 늘어뜨려진 폭식 잔해들이 텅 빈 눈동자

속으로 그제야 들어왔다.





재작년 운동을 시작하기 전 익숙한 모습이었다.


힘든 일이 연이어 있었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단순한 쾌락으로 먹고 또 먹었다. 그러다 지금처럼 먹는다는 사실 자체가 - 욱여넣고 씹고 삼키고 또 욱여넣고 씹고 삼키는 행위 그 자체가 너무나 지루하고 지긋하고 고루해졌다. 문득 영혼을 토해내고 싶다는 기분에 휩싸였고 곧이어 스스로가 짐승 같게 느껴졌다.


그래서 운동을 했다. 당장의 내 마음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으니 몸부터 챙겨보자 싶었다. 타고난 근력도 있으면서 제대로 가꾸지 못해서 죽어있는 내 몸에게, 소화 능력도 약한 주제에 자꾸만 쑤셔넣어서 괴롭게 하는 내 위장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하자.


그 날로 근처 피티샵을 끊었다. 인바디를 측정해준 트레이너 쌤은 내 몸을 보고 조금만 관리하면 진짜 예쁜 모양이 잡힐 몸이라며 탐냈다.   


하지만 사람이 하루 아침에 변하지는 않는 법.


운동을 하면서도 의무적으로 씹는 식습관은 바꾸지 않았기에 처음 몇 달 간은 아주 건강한 근육돼지의 모습이었다. 빵이랑 과자만 줄이면 훨씬 빠르게 결과가 날 거라고 트레이너 쌤이 말했지만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이어트 목적이 아니라 그저 나를 향한 일말의 속죄로 시작한 운동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꾸준히 운동을 한 지 반개월이 넘자 쳐진 엉덩이도 조금씩 뽈록 올라오고 무게 올리는 재미도 생겼다.


자연스레 음식에 대한 충동성이 점점 조절되었다. 배가 꼬르륵 거리는 신호를 즐겼고 그렇게 몸이 비워졌고 오히려 마음은 채워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나는 온통 쳐진 근육으로 다시 남겨졌다.






‘너는 미식가야.’


어느날 누군가 나에게 그랬다.


내가?

타인에게 종종 듣게 되는 이 단어가 굉장히 의아했다. 미식가라 함은 음식을 한 입 맛 본 뒤, 천천히 음미하며 재료 하나 하나의 조합을 들여다보고 그 풍성한 미적 감각에 감탄을 내뱉는 그런 사람아닌가? 그러다 입에 안 맞는 음식은 콧잔등을 살짝 찡그리며 손수건으로 입꼬리를 스윽 닦아내는 그런 음식에 대한 줏대와 예의 정성이 있는 사람.


반면 나는 방 구석에서 아무 생각 없이 영혼의 빈 공간을 음식이란 물질들로 채워넣는 우악스러운 인간이었다. 음미는 커녕 턱의 움직임을 멈추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끊임 없이 우걱 댈 때마다 맛을 잃고 있으니 미식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밖에서는 얌전히 먹느라 체면 차 그래보였을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그 이유만이 아니라 했다.


음식을 대하는 자세가 신중하고 진지하며 맛평가를 잘하기 때문이라 했다.


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여러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듣고 있자니 그간 나에게 아무 의미 없이 씹혀버렸던 수 많은 음식들에게 너무나 미안해졌다. 태어난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공허함의 재료가 되어 버린 음식들이 마치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먹힌 음식은 영혼을 채워주긴 커녕 지방세포로 변질 되어 몸 구석 구석만 늘어나게 했다. 그리고 끝내는 거울 앞에 선 나에게 미움까지 받아 버리고야 마니 얼마나 서글플까.


맛있는 것들은 죄가 없는데.





그 때처럼 하루 두 시간 헬스장에 갈 마음도 여유도 없었기에 이번엔 기록을 해보기로 했다.


수많은 장미 중 이름을 명명하는 순간 너는 나의 특별한 장미가 되는 거라는 어린왕자의 말을 떠올리며 기록을 통해서 지금 나에게 다가오는 것들에게 이름을 부여 해주기로 했다.




미식가 : “좋은”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



그동안 해왔던 감정적 식사를 하루 아침에 버리지는 못할거다. 태어난지 30년하고도 중반이 다되어가지만 아직도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나의 잔존들은 분명 나의 미식을 방해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미식가로써 천천히 바라보고, 분석하고, 음미한 뒤 안아주련다.


그리고 이제는 좋은 곳으로 데려가 좋은 대접을 해주고 싶다. 제대로 된 위로와 애도를 건네고 살아갈 인내와 용기를 조화롭게 채워주고 싶다.


내 인생을 맛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뿐이기에 느끼는 감정과 생각 그리고 행동까지도 제대로 음미해보자.


짠맛, 단맛, 신맛, 매운맛 뿐 아니라

고통스러운 맛, 신나는 맛, 즐거운 맛, 쓰라린 맛, 외로운 맛, 후회의 맛, 무념무상의 맛까지 다양한 맛의 향연을 즐겨보자.


그리고 누군가는 나의 이 기록을 통해서 간접 미식을 하고 감정적 식사를 멈출 수 있기를.




        무참히 씹혀버린 모든 것들에 애도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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