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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해 Jul 21. 2023

당연한 맛, 만남과 이별은 늘 예상치 못해서

대란이었던 연세 우유 크림 시리즈. 빵수니였던 나는 진즉에 모든 맛을 섭렵했고 연세 뿐 아니라 고대 빵, 브레디크 등등 편의점의 신상 빵들은 거의 다 먹어보았다. 그 중 내 입맛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바로


[연세우유 황치즈생크림 빵]이었다.


처음 접한 날, 거짓말 조금 보태서 눈물을 흘릴 뻔했다. 미간을 찌푸리며 ‘미쳤다.’ 를 연신 내뱉었다. ‘왜 내가 이제야 이걸 먹은거야.‘ 하면서 스스로 꿀밤을 때릴 정도였으니. 물론 밤 11시, 야식으로 먹어서 배로 더 맛있었을지도 모른다.


며칠 뒤, 조금 더 제정신인 낮에 먹은 황치즈 생크림 빵은 역시나 정말, 너무나, 진짜 맛있었다.


봉지를 뜯으면 플라스틱 안에 통실한 빵이 들어있는데 그 옆구리에 묻어나와 있는 크림 모양까지 어쩜 이리도 사랑스러운지! 크림은 식물성크림, 가공유크림이었는데 개인적인 기준으로 식감이 너무 미끌거리지 않고 부드러워 좋았다.


오징어 먹물을 첨가한 빵피는 퍼석퍼석했지만 잔뜩 들어 있는 크림이 입 안에서 빵피를 촉촉하게 적셔 주어서 오히려 합이 좋았다. 게다가 황치즈 크림 밑에는 단단한 체다치즈가 깔려 있어서 씹는 맛도 있었다.


바로 하나 더 구매해서 냉동고에 얼려놓았다. 하루를 꼬박 얼리고 다음날, 반으로 잘랐다.


한 조각은 꽁꽁 언 상태로, 한 조각은 실온에 조금 둔 상태로 먹으니 이게 웬걸. 치아 자국 고대로 나는 꾸덕 꾸덕함이 살아있는게 아주, 아주 내 스타일이었다. 실온에서 살짝 해동시킨 후에 먹는 게 꾸덕함과 쫀쫀함의 베스트였다.


그러나 역시 사람들 입맛은 다 비슷하다고 편의점에 가면 어느 순간부터 우유생크림, 초코생크림, 솔티캬라멜은 그득그득한데 황치즈만 품절이었다.


갈 때마다 허탕을 치고나니 우리의 만남이 한 여름의 꿈만 같았다.


그러던 중 자주 가던 편의점이 며칠간의 리뉴얼로 장사를 안하다가 문을 다시 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방문하니, 이게 웬 걸! 황치즈생크림빵이 진열대에서 활짝 반겨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음 날도, 또 다음날도 편의점에 황치즈가 넉넉하게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싱글 벙글 웃으며 몇 개씩 구매해 냉동고에 쟁여두기도 하고 일일 일 황치즈를 하기도 하며 한동안 황치즈를 마음껏 즐겼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간사한게 늘상 황치즈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자 초반에 ‘이런 행운이!’ 했던 마음이 점점 식어갔다. 게다가 슬슬 체다치즈의 짭짤함에 혀가 아려오기도 했다. 이윽고 ‘내일도 있겠지.’하며 구매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 나의 안일함을 후회하게 된다.




진열대에서 계속 또 황치즈만 사라지길래 역시 인기템은 다르군! 하면서 어느 날 행운처럼 다시 다가올 날만 오매불망 기다렸다.


그러던 중 연세쪽에서 말차생크림을 신메뉴로 출시했다. 차라리 황치즈 수량을 조금 더 풀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말차까지 품절대란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 ‘그래, 언제까지고 미련하게 행운만 기대할까. 나도 적극적으로 IT를 이용해보자.’ 하며 편의점 앱을 깔고 예약을 걸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깔걸’하는 생각이 들었다.


황치즈 생크림을 검색해보니 역시나 예약 앱에서도 품절이었다. 슬슬 애가 타기 시작했다. 치즈에 아렸던 혀는 회복되어 그 짭쪼롬한 달콤함을 얼른 선사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있을 때 잘해, 흔들리지 말고.’ 하는 노래가삿말을 중얼거리며 말차 생크림 빵이라도 사자 해서 두 봉지 구매했다.


예약 까지 걸어 만난 말차 생크림빵은 맛있었지만 감동까진 아니었다. 생각보다 말차의 쌉쌀한 맛이 진해서 음! 오! 했지만 그게 다였다. 애초에 선택의 기원부터가 잘못되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횡치즈를 향한 그리움의 대체제였기에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말차 생크림 빵을 맛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며칠이 지나도 편의점의 진열대에서 횡치즈만 텅 비어있다. 덩그러니 놓인 네임택이 또 왔냐며 나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어느날 앱에서 ‘황치즈’를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질 않았다.


쎄한 마음에 그제야 인터넷에 검색해보았다.


[연세 황치즈생크림 단종....]

[단종된 연세 황치즈...]

[...황치즈 이제 안나온다...]


최근 업로드 된 블로그들의 충격적인 헤드라인이 보였다.


단종이었다.

그것도 황치즈생크림만.


단전에서부터 ‘엥!’ 소리를 내며 황급히 엄지 손가락으로 화면을 훑었다. [연세 황치즈 내돈 내산 찐 후기]의 블로그들은 몇 달 전에 멈춰 있었다.


“안돼!”

탄식이 터져나왔다.


이렇게 빠르게 우리가 헤어질지는 몰랐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에 반전 이별에 머리가 띵했다. 몇 번이고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뻥 차버렸던 나였기에 미련이 뚝뚝 흘러 넘쳤다. 후회 가득한 마음이 여기 저기 발자국을 남겼다.


‘편의점에 많이 있을 때 냉동고에 계속 쟁여놨어야지.’

‘앱을 깔거면 진작에 깔았어야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알아봤어야지.‘


뒤늦은 후회만큼이나 어리석은 게 또 어디 있을까. 아무리 곱씹고 매달려봐도 과거로 돌아갈 순 없다며 황치즈빵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난 아직 이별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달콤 짭쪼롬한 잔향을 아련하게 더듬고 있는데 황치즈빵이 내 어깨를 잡으며 갑자기 질문을 훅 던져왔다.


“나처럼 놓쳐버린 만남이 또 있진 않아?”



아…? 아…!


황치즈가 던져준 질문에 나를 비춰보았다.


나는 깊은 관계를 맺는게 두려운 사람이다. 그래서 관계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황치즈가 정말로 맛있었지만 주도적으로 앱을 깔고 찾지는 않았던 것처럼 곁에 사람이 오면 오고, 아니면 말고 식이었다. 어찌보면 이 태도는 관계에 연연해 하지 않는 긍정적인 요소도 있지만 기저에는 사람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었기에 썩 건강하진 않았다.


이렇게 관계를 맺는데 수동적이고 소극적이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1차적으로는 가정내에서 마음을 수용받은 경험이 적어서 그렇구나를 알게 되었다. 타인의 마음에는 의심이 들었고 내 마음에는 확신이 없다 보니 불확실한 것들로부터 나를 보호해야 했다.


그래서 10대 때는 적당히 얇고 넓은 관계를 추구했고 20대 때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남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그리고 지금, 30대 중반 지점이 되어서야 관계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동안은 운 좋게 인복이 있었다. 마치 우연찮게 그 시기에 리뉴얼한 편의점이 있어서 황치즈를 언제 가도 만날 수 있었던 것처럼 곁에 사람이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로또인 줄 알았던 인생이 월급제였구나를 깨닫자마자 젊은 날의 운빨이 떨어졌고 남아 있는 자산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바닥난 인사고과로 혼자 승진하지 못한 채 헐떡이는 나를 발견한 후에야 보너스로 아쉬움과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돌이켜보니 나의 무지무감과 자만으로 놓쳐버린 연들이 많았다. 반성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고 바꾸어야 할 생각과 마음가짐도 많았다.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내가 먼저 노력해야 하는 것들도 보였다.


그 뒤로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황치즈와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다시 한 번 나의 부족함과 현재를 진단해 볼 수 있었다.


생각난 김에 곁에 있는 고마운 인연들에게 소소한 안부 인사를 바로 돌렸다.


깊은 관계가 부담스러워 마냥 피하던 나는 몇 년 전부터 마음의 조각을 조금씩 표현해보고 있다. 우선은 고마운 것은 고맙다고, 미안한 것은 미안하다고 또 나는 이런 감정이라고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꺼내보고 있다.


수용 받은 경험이 적었으니 앞으로 경험을 하며 채워 나가고자 한다. 물론 아직도 방법을 잘 몰라서 가끔은 너무 추상적인 표현으로 상대방이 이해를 잘 못할 때도 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마음을 드러내는 시도를 해보고 있다. 시절 인연이든 오래된 인연이든 새로운 인연이든 지나보면 모두 감사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황치즈는 ‘잃어버리고 나서 소중함을 깨닫지 않도록 지금처럼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라.’며 다독여 주었다.


또 ‘이왕지사 감정적 폭식을 할거면 나처럼 맛있는 걸로 해. 그리고 그 맛을 꼭 꼭 음미해봐. 그러다 보면 언젠가 감정적 폭식과 이별하고 비로소 네 마음과 잘 만날 수 있을거야.’ 라고 한 뒤 아~주 쿨하게 떠나갔다.


마음에서 맴도는 이 짭쪼롬한 맛이 미련 남은 내 눈물인지 황치즈의 맛인지…


그런데 이 이별이 왠지 낯설지 않은 기분이었다. 뭐지 하며 곰곰히 생각하다가 떠오른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바로 그건,


꼬북칩 스윗 바닐라


얼려 먹으면 아이스크림 맛이나서 진짜, 정말, 너무 맛있었는데 왜, 왜 단종을 시킨걸까. 내부사정이 대체 뭐길래…!으아거ㅣㅁ ㅓㄷ;ㄱㅏㅣㅁ;ㄷ;ㅐ ㄱ!@321!


단종 예고를 조금이라도 해준다면 이별을 겸허히 받아 들일텐데 말이다. 역시 인생에서 만남과 이별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그래서 때론 달콤하고 때론 너무 짠가보다.


그래도 확실한 건, 만남과 이별은 나를 반드시 성장시킨다는 것이다.


황치즈 크림빵, 너를 알게 된 건 정말 감동이었다.

최근엔 너를 그리워하며 어글리베이커리에 뽀또맘모스를 먹었어. 난 잘 지내고 있어. 너도 잘 지내.

안녕.



그리운 황치즈!!!!
아, 또 최근엔 개리치즈크래커로 널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랬어. 큰 거 한 박스를 다 먹은 게 함정이지만.... 치즈는 늘 옳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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