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앉아서 본 세상

by 꽃피네

골절수술이 끝난 후, 회복실에서 중환자실로 돌아온 나는 늘 부착하고 있었던 심전도 ECG 전극 패드며 혈압과 산소포화도 SpO2 센서에 더하여, 골절 수술 직후의 통증조절과 감염 예방, 그리고 혈전 예방을 위한 주사들을 주렁주렁 매달게 되었다.

이러한 통증 조절을 위한 신경차단 주사며, 간병인이 이따금씩 눌러주는 무통주사 PCA는 수술의 통증으로부터 나를 완전히 해방시켰다.

거기에다가 수술 부위의 감염방지를 위하여 예방적 항생제가 지속적으로 투여되었으며, 심부정맥 혈전증(DVT)으로 인한 치명적 합병증인 폐색전증을 예방하기 위하여 항응고제도 투여되고 있었다.

간병인도 덩달아 바빠졌다. 그녀는 미리 준비해 놓은 얼음팩을 수건으로 감싸, 발이며 무릎에, 고관절 대퇴부에, 오른쪽 어깨의 수술한 부위에 대주었다.

다년간의 현장 경험으로 얼음팩이 부기를 빼는 데 최고라고 굳게 믿고 있는 그녀는

"부기에는 얼음팩만 한 게 없어요. 얼음팩을 잘해야 수술 부기를 뺄 수 있고 뼈가 잘 붙는 거예요"라고 하면서 틈나는 대로 수술 부위에 얼음팩 마사지를 해주었다.

밤이 되자, 산소 보조호흡기인 비강캐뉼라를 콧구멍에 끼고 있었음에도 숨이 가빠져 왔다. 방광에 연결된 카테터를 통해 유린백에 모여든 혈농도 수술하기 전보다 더 짙게 핏빛으로 보였다.

갑자기 산소포화도 수치가 90 밑으로 떨어져 바이탈 모니터가 자꾸만 삑삑거리자 간호사가 급히 들어왔다.

"소변 색깔이 빨갛고 숨이 차다고 그래요. 심호흡을 시켜도 그때뿐이고요. 열도 약간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라고 간병인이 얼음팩을 감싸는 수건을 교체하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간호사에게 말했다.

"그럼 산소를 지금보다 밤에는 좀 더 세게 올리고, 낮에는 좀 내리게끔 조정해 드릴게요. 소변 색깔이 빨간 것은 오늘 수술해서 그럴 거예요. 항혈전제 들어가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라고 간호사가 안심을 시켰다.

간호사가 스위치를 돌려 산소량을 늘리자, 가습 챔버 안에서 물방울들이 서로 다투듯이 세차게 뽀글거리기 시작하였고, 산소포화도 수치는 금방 90을 넘어 삑삑 대던 바이털 싸인모니터 경보음도 멈췄다.

간호사는 배가 고파 칭얼대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인자한 어머니 같았다. 그녀가 오자마자 순식간에 삑삑 대던 경보음이 사라졌다. 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그녀를 보면서 환자들은 묘한 안도감에 한숨 돌렸을 것이다.

3월 29일 아침 9시가 되자, 어제 수술하였던 집도의들이 수간호사를 대동하고 회진에 나섰다.

담당 의사는 얼굴에 난 상처 때문에 헤드기어를 착용한 복싱선수가 되어 있는 나에게, 어깨 쇄골 수술과 발목 수술, 다리 고관절 대퇴부 경부 및 간부 골절 수술이 아주 잘 끝났고, 예후가 양호하다고 희망찬 소식을 전해 주었다.

이러한 예후가 좋다는 말을 욕쟁이 대목수에게도, 전등남에게도 똑같이 하는 것을 들은 나는 무슨 매뉴얼 지침대로, 좋은 예후만 전달하는 회진을 도는 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오빠! 들었지? 오빠는 금방 좋아진대! 오늘은 아침부터 까치가 울었나? 예후가 좋다니 기분이 참 좋네!" 하고 이고녀가 화사하게 웃으며 전등남의 볼기짝을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그녀는 요즘 들어 부쩍 전등남을 자신의 아기처럼 대했다.

이에 질세라 딸기도 남편을 챙기기 시작하였다. "오빠여보! 경추가 부러진 게 아니고 경추에 붙은 횡돌기라는 게 부러진 거라고 옆 해남 환자분이 알려줬어.

경추가 부러지면 사지마비가 된다는데 우리는 천만다행이지 머야"

"그래 괜히 겁먹었잖아. 경추 머라고 횡돌기 어쩌고 그러길래 경추 부러진 줄 알고 왜 사나 싶더라고"

10시가 되자 다른 의사가 와서 폐와 흉막 사이, 즉 횡격막 근처에 고인 피나 고름, 공기 등을 빼내기 위해 양쪽 갈비뼈 사이에 동그란 배액통이 달린 흉관 튜브를 삽입하는 흉관삽입술을 하였다.

폐를 압박하는 공기나 피고름 등의 혈농을 제거해, 폐가 제대로 펴지도록 해서 호흡을 편하게 하기 위해 이러한 시술을 하는 것이었다.

시술은 아주 간단해 보였다. 먼저 국소마취를 한 후, 양쪽 옆구리 중 기흉이나 고름이 있는 쪽, 대략 4번째나 5번째 갈비뼈 사이에 약 1~2cm 절개를 해서 흉관 튜브를 삽입하였다.

흉관 튜브 끝은 물이 담긴 ‘동그란 고무공' 같은 배액통에 연결되어 몸에서 공기나 체액이 빠져나오고, 잠잘 때 고무 배액통이 짓눌려도 몸으로 역류가 안되게끔 되어 있었다.

시술 후엔 폐가 잘 펴졌는지 엑스레이를 찍어 확인하고, 통증이나 감염 같은 합병증에 주의하면서 간호사가 직접 배액량을 체크하기 시작하였다.

피고름은 아주 조금씩 줄어들어 퇴원일인 4월 8일 오전에야 겨우 흉관 튜브를 제거할 수 있게 되었다.

무통주사로 인하여 통증에서 해방된 나는 곧 걸을 수 있겠다는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 4월 5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남에 돌아가려고 계획하였다.

나는 집에 가면 무엇보다도 먼저 동쪽 뒤꼍을 시멘트로 포장할 작정이었다.

시골집은 대지가 200여 평이 넘어, 어머니 생전에 마당 대부분을 포장하였지만 동쪽 뒤꼍은 콘크리트가 약해서, 어느 해부터인가 풀들이 시멘트 바닥 사이를 뚫고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요즘엔 풀도 월동하는데, 특히 봄부터 늦가을까지 잡초들이 여간 극성이 아니어서, 뒤꼍 마당의 풀메는 일에 이골이 난 나로서는 새로 두꺼운 콘크리트 포장 작업이 절실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러 수술을 한 후, 보조기를 차고, 갖가지 주사며 유린백을 매달고, 양 옆구리에는 동그란 고무공을 찬 ET가 되어, 어떻게 4월 5일 날 퇴원해, 해남에 가 집안일을 한다는 말인가.

만약 쌍권총만 옆에 차면 영락없는 서부영화에 나오는 익살스러운 악당 '디 어글리'가 되었을 법한 몰골을 하고선 말이다. 그러한 무리한 퇴원 계획은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3월 29일 토요일, 면회시간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내 육체는 그들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나의 영혼 푸어박은 익히 아는 사람들이었다.

방문자들은 욕쟁이 딸기네의 큰딸 똑희, 둘째 똑순이, 유령들의 디오니소스의 찬가를 받고 태어난 똑남이 3형제에다가, 공주의 어머니인 또또 왕할머니, 또또엄마인 전등남의 어머니인 공주, 우주와 태민이 부부, 그리고 아이들을 포함한 대가족의 문병객들이었다. 실내가 시끌벅적하였다.

평일 같으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을 터지만 오늘은 토요일이어서 필요 인원만 근무하고 모두 휴진이었다. 이렇게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영혼 푸어박은 육체의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

"안녕하세요"

"네가 딸기네 똑남이구나. 내가 널 꿈속에서 본 적이 있단다. 너하고 태희 아주머니네 하늘이 누나하고, 하늘이 삼촌 되는 우진이는 하늘의 축복을 받았단다"

"하늘이요? 하늘이가 누군데요?"

"우리 방 저기, 전등을 갈다 낙상 사고 나서 온 환자 첫째 딸이란다"

똑남이와 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딸기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욕쟁이에게 말을 하였다.

"오빠, 해남 아저씨가 귀신 들린 것 같아. 생전 보지도 않은 애들 이름도 다 알고 있고. 세상에 이런 일이" 하면서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쉿 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전등남과 이고녀도 "저 아저씨가 무슨 신내림을 받았나 어떻게 딸기언니네며, 내 이름과 우리 아이들을 알고 있지?"라고 신기해하였다.

"안녕하세요 전 하늘이에요. 복싱 헤드기어 아저씨!"

"전 나이는 하늘이보다 한 살 적은데 하늘이 삼촌 되는 우진이예요"

"오냐오냐, 만나서 반갑구나.

다른 아이들도 다 축복 속에 태어났겠지만, 하늘이, 우진이 똑남이, 너희 셋은 특히나 하늘의 기운을 타고났으니 착하고 멋지게 살거라"

"예, 그럼요. 아저씨! 빨리 일어나세요"

아이들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알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딸기와 이고녀가 과자와 과일을 들어보라고 권해도 나는 깊은 숨소리만 내쉴 뿐 깨어나질 않았다.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렇다고 영혼과 육체가 서로 기득권 싸움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이제는 영혼이 한 언행을 육체도 어렴풋이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4월이 되어서, 담당 의사는 휠체어를 타보라고 하였지만 그렇게 쉬워 보였던 휠체어에 앉는 것조차도 나는 할 수가 없었다.

주렁주렁 몸에 달린 것은 많지, 오른쪽 하반신은 딱딱하게 굳어 통나무 일자이니 어떻게 휠체어에 앉을 수가 있단 말인가.

"아주머니, 우리가 좀 도와드릴 수 있는데 왜 말씀을 안 하셨어요?" 상냥한 목소리로 딸기가 연변 간병인에게 말했다. 나를 휠체어에 태우려고 용을 쓰다가 결국은 포기해 버린 직후였다.

"아주버니 간호하시느라 다들 바쁘고 힘드실 텐데 미안해서 말씀 못 드렸어요" 간병인의 대답에,

"병은 소문내라 했어요. 지금 한 번 휠체어에 태워 볼까요?"라고 이번에는 이고녀가 불쑥 한마디 했다.

"옆에서 도와주시겠다는데 한번 타보시겠어요?" 간병인이 내 의사를 물었다.

"허리도 교통사고로 다쳤는데 끊어질 듯이 아프네요. 말씀은 고마우나 지금은 쉬고 싶습니다"라고 내가 힘없이 대답했다. 이어서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옛날 교통사고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10여 년 전에 큰 오토바이 사고로 경추 횡돌기뼈, 그러니까 목뼈 세 번째, 네 번째 C3, C4의 횡돌기뼈가 골절되었는데 의사가 수술을 권했어요.

척수액 누수도 상당해서 삼성화재보험에서 부상 1등급 판정을 받았는데, 식물인간 돼도 운명이라는 각오를 하고 수술을 안 받았습니다.

지금 딸기씨네 보다 더 심했는데 목에 칼을 대는 것이 영 꺼림칙해서 수술하기를 거부했어요"

"우리도 경추 3번, 4번 횡돌기뼈 골절이랬는데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지금 경추가 부러졌다고 울고불고했을 거예요. 서울 가서 수술할 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라면 절대로 안 해요. 지금처럼 목에 보조기 차고 꼼짝 않고 누워 있으면 붙을 거예요. 안 붙는 뼈는 없어요. 저 천재 양반에게 내 말이 맞는지 물어보세요"

"천재가 누군데요? 설마 태희네 아저씨?"

"그 사람이 천재이니 한 번 물어보시구려"

내 말에 전등남과 이고녀가 깜짝 놀라워했다.

"에? 전 천재 아닌데요. 그렇지만 만약에 저라면, 부상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경추부 횡돌기 골절이나 척추 압박골절은 절대로 수술 안 하는 쪽입니다"라고 천재는 천재가 아닌 척 태연스럽게 말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나 보군요. 오빠! 우리 목 수술하지 말자. 일단 자연치유를 믿어보고 가만히 3달만 누워 있자. 태희네 아저씨도, 교통사고 아저씨도 보통 사람들이 아닌 거 같아"

딸기의 말이 끝나자 이고녀가 나에게 물었다.

"아저씨, 혹시 저희를 아세요?"

"아니오. 제가 알리가 있겠어요?"

내 말에 딸기가 끼어들었다.

"글쎄 그저께 밤에 아저씨가 잠꼬대로 천재가 시리우스 천랑인가 검둥개라고 하셨잖아요.

시리우스 검둥개는 우리끼리 남편 흉볼 때 태희가 자주 쓰는 말이고, 또 그날밤 잠꼬대 하시면서 딸기팬티 아껴 쓰라고 해서 제가 얼마나 놀랐는데요. 아저씨 혹시 외계인이세요?"

아! 잦됐다! 일단은 이 자리를 빠져나가자라는 생각에

"잠꼬대를 제가 어떻게 기억합니까? 아마도 잠결에 잘못 들으셨을 겁니다. 괜히 생사람 잡지 마시고요"라고 하며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척추나 목이나 최대한 누워서 안정되기를 기다려야 할 텐데 경치 좋고, 힐링되는 요양병원이나 재활병원 없을까요?"라고 천재가 물었다.

"거기에다 저희는 밥이 맛있게 잘 나오는 병원이면 딱이겠는데" 전등남의 물음에 목에 찬 보조기를 툭툭 건드리며 욕쟁이 대목수도 한마디 거들었다.

"해남우리종합병원이라고 뒤로는 해남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만대산이 버티고 있지, 앞으로는 들판에 나지막한 구릉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병원이 있는데 산책코스도 참 좋아요.

특히 병실이 아주 넓고 밥맛이 최고입니다. 저는 큰 수술은 끝났으니 재활치료는 거기로 가려고요"

"그래요? 그렇다면 한번 잘 생각해 볼게요. 태희야, 우리도 그 병원으로 갈까? 아참 앵두 때문에 안 되겠다. 멀어서"

"무슨 소리야, 오빠! 난 무조건 해남 그 병원이야! 신기한 외계인 아저씨 따라가자 오빠야. 해남 아저씨가 어느 별에서 오셨는지 난 엄청 궁금하단 말이야"라고 이고녀는 요양 및 치료 목적으로 해남행을 못 박는 것이었다.

욕쟁이도 "밥만 맛있으면 좋지요, 창밖 경치 좋겠다 3개월 누워 있기에 더할 나위 없겠군요. 저희는 좋아요"라고 생전 듣도 보도 않은 해남 병원을 결정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두 번째 시도를 했을 때는 옆 병상의 딸기와 이고녀의 도움을 받아, 두 명은 양쪽 옆구리를 부축하고, 한 사람은 내 환자복의 뒤춤을 잡고, 셋이서 간신히 나를 휠체어에 앉혔다.

앉아서 보니, 누워서 보는 것과는 사물이 달리 보였다. 전공의들의 부재로 군데군데 병동들이 소등이 되어 어두컴컴한 복도를 간병인이 휠체어를 밀고 나아갔다..

복도를 한 바퀴 돌고 나서 간병인이 나에게 화장실에 가면 변기에 앉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실은 화장실에서 가서 휠체어에서 변기로 옮겨 앉을 수 없어 나는 식사 자체를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상하리만치 식욕도 없었기도 했지만, 머라도 먹으면 화장실에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기저귀 차고 누워서 용변을 볼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강박증에, 나는 머리에 피가 마를 지경이었다.

교통사고 후 처음으로, 휠체어에 '앉아서 보는 세상'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엥 유령의 계단이 어디 갔지? 계단이 없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간병인이 물었다.

"무슨 계단이요? 여긴 중환자실인데 방안에 계단이 있을 리가 있나요"

"분명히 여기에 있었는데"

앉아서 처음으로 중환자실을 둘러보니 커튼 뒤에 있던 유령의 계단은 사라지고 없었다. 또한 유스호스텔이 아니라 큰 대학병원 빌딩이었다.

나의 넋이 창조한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그간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유령 친구들도 사귀고, 인간 세상 생활도 하면서 지냈던 모양이었다.

그동안 내 육체는 2차원의 세계에 있었다. 누워서 바라보는 세상은 거꾸로 보였다. 2차원의 세상은 아주 단순해서 참 아니면 거짓이었다. 그 세상은 중간이나 여지를 남기지 않은 명확한 세상이었다.

사물들에게는 자신의 모습을 숨길 공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3차원을 살다 온 나는 거기에 공간을 창조하여 유령들과 같이 즐기며 놀았던 것이다.

누워서 보는 세상, 2차원의 세상은 평면의 세계였다. 내가 누워서 보았던 중환자실의 천장은 2차원의 세계 속에 있었다.

천장에 붙어 있는 시스템 에어컨, 코드블루를 전달하는 스피커, 스프링클러 헤드, LED 전등 박스, 덕트에 연결된 환기구며 한 줄 한 줄 엇갈리게 붙여놓아 규칙적인 직선의 문양을 만들어 내고 있는 석고 보드 천장은 2차원의 평면의 세계였다.

이 고체적 평면의 세계를 탈출하고자 내 영혼은 육체의 속박을 벗어나, 시공을 초월한 4차원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유령들의 파티에 참가하였던 것이다.

반면에 앉아서 보는 세상은, 2차원의 면의 세계에 시간과 공간이 더해진 3차원적인 인간들의 세상이었다.

간병인이 나를 태운 휠체어를 밀고 긴 복도를 지나 돌아다닐 때에야, '아 내가 3차원의 입체적인 세상으로 돌아왔구나'하는 실감이 들었다.

다만 2차원의 면의 세상은 시공이 없는 정적이며 둔한 세상이었으나, 3차원의 인간 세상은 시공이 더해져 역동적이기에 인생은 너무나 짧아 애틋하고, 그러기에 무상한 세상인 것이었다. 나는 시간의 지배를 받는 세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여기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는 나의 선택이다. 면의 세상을 살 것인가 시공의 세상을 살 것인가는 순전히 나의 선택인 셈이다.

이 세상 3차원을 살면 생명은 유한하며 늘 따라다니는 삼라만상의 번뇌에서-고통에서, 욕망에서, 은원에서, 희노애락에서 벗어나는 것도 모두 나의 몫이다.

우주의 법칙대로, 시간의 안배와 지배대로 연이 있으면 닿을 것이며, 그러지 않으면, 나는 그저 사라질 것이다.

그 시간의 지배에 따라, 이제 4월 8일은 이곳 조선대학병원 정형외과 71 병동 중환자실에 있는 나의 퇴원일로 확정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