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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의 ET

by 꽃피네

진료 여행 투숙객들은 밤에 더 활기찼다. 커튼 뒤 시멘트로 된 튼튼한 유령의 계단이 끼익 끼익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삐걱대었다.

병원 건물 한구석에 자리한 장례식장의 귀신들도 그 소리에 너풀대었다. 각자 제멋대로 산 그들은 나보다도 훨씬 멋져 보였다. 나는 그들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모닥불이 혀를 날름거렸으며, 잡아 먹힐까 봐 이를 피해 불티가 간단없이 하늘로 올라갔다. 먼 나라에서 온 투숙객들의 기타와 노랫소리에 손뼉 짝짝이도 리듬을 탔다.

스페인 커플이 캐스터너츠가 없는지 손뼉을 치면서 탭댄스를 추는데 그야말로 물 찬 제비가 따로 없었다.

그렇게 밤은 깊어 새벽녘이 되었다. 이제 곧 그믐이지만 그 시간까지도 가녀린 눈썹달은 뜨지 않았다. 아니 이미 떴지만 희미하여 보이지 않았다.


중환자실은 LED 등불이 밤새 밝혀져 있어 그리 무섭지 않았다.

"그거 빼지 말고 잘 끼고 있으세요"

그 말소리에 옆을 힐끗 보니 의자 4개에 모포를 깔고 곤히 잠들어 있는 연변 간병인이 뒤척이면서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콧속으로 살짝 집어넣은 산소호흡 보조기인 비강캐뉼라를 빼지 말고 똑바로 하고 있으라고 잠꼬대를 하였다.

콧속의 두 개의 플라스틱 프롱은 매우 성가시고 귀찮은 젖꼭지처럼 계속 꽂고 있기 힘들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이 산소젖꼭지를 간병인 몰래 빼놓곤 했었다.

그러면 숨쉬기가 답답해지고 수초 후에 바이탈 싸인 모니터가 재빨리 삐익 삐익~ 경보음을 냈다. 모니터의 경보음이 울리면 간병인은 거의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그녀는 내 콧속에서 비강캐뉼라가 빠진 것을 발견하고 다시 끼워주었다. 모니터의 산소포화도를 나타내는 두 번째 칸의 수치가 이미 90 밑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환자감시장치 모니터에서 경보음이 울렸던 것이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간병인과 간호사선생님에게 혼나지 않으려고 급히 서너 번 심호흡을 했다.

몇 번의 심호흡 끝에 산소포화도 수치가 90이 되었고 경보음이 멈췄다.

산소포화도 스위치를 제일 낮게 틀어놓으면 모니터 상의 산소포화도 수치는 93-95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교통사고로 인해 여기저기 많이 다쳐서 혈전이 생겼는지 평소와 달리 숨쉬기가 힘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기다리던 이지러진 그믐달이 떴다가 져버렸다. 그 젊음을 발산하는 탭댄스 소리도, 손뼉 짝짝 소리도, 기타 소리도 모닥불과 함께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또 날이 밝았다.


3월 25일 아침,

비몽사몽 간의 아침 식사를 하였다. 지금이 몇 시인지, 실제인지 허상인지 그 경계도 모호하였다.

조선대학병원 정형외과 치료여행 유스호스텔 식당, 아늑하고 구수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4인용 사각 테이블 위엔 일회용 종이로 된 흰 테이블보가 깔려 있고, 수저, 젓가락, 포크와 나이프가 가지런히 놓여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실내 중앙의 긴 테이블에는 갓 구운 크루아상, 호밀빵, 베이글이 바구니에 수북이 담겨 있었다.

그 옆엔 버터가 담긴 유리그릇, 딸기잼, 블루베리잼 통이 놓여 있고, 커피포트에선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찬 오렌지 주스며 식혜, 수정과가 입가심하라고 손님들을 부르고 있었다.

그 반대편으로는 흰밥, 잡곡밥, 볶음밥, 쇠고깃국, 된장국, 김치, 샐러드, 어묵볶음, 두부조림, 인절미 떡 등 다채로운 한식이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채핑디시에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지난밤 새벽까지 춤추며 놀았던 진료, 치료여행 투숙객들이 이 아침 식탁에서 서로의 지나간 삶을 공유하였다. 서로가 얽히는 순간이었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진료 투숙객 중 일부는 체크아웃을 하고 유령의 계단을 통해 플루토의 세상으로 향할 것이고, 일부는 진풍경을 찾아 새로운 길을 떠날 것이며, 나와 같이 삭신을 움직일 수 없는 중환자들은 바퀴 달린 메디칼 스트레처에 누워 여기저기 영상촬영을 하거나 타과의 진료를 받기 위하여 바빠질 것이었다.


중환자실의 문쪽으로 첫 번째 환자는 내 고향 해남에서 왔으며, 나이가 80여 세인데 침대에서 낙상하였다. 이 사고로 고관절. 대퇴부 경부가 끊어졌고 이에 대퇴부 인공관절 치환 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우리 4인 중 나이는 가장 많지만 흔히들 요즘을 100세 시대라고 한다면, 아직도 앞날이 창창했다.

그녀는 비구니 승려로서 해남 대흥사 근처에 있는 자신의 암자로 돌아가기를 학수고대하였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인지 좀처럼 돌아가도 좋다는 싸인이 떨어지지 않았다.

짐작하건대 그녀는 아마 주검 상태로 퇴원해 유령의 계단을 통해 플루토의 저 세상으로 나갈지도 모르며, 아니면 정토에서 와서 정토로 돌아가 마지막 윤회를 끝낼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 옆에는 50여 세 정도의 욕쟁이 남자 환자가 누워있었다. 이 웬수 괴물은 자기 아내나 딸들이 간병을 하는데도 차마 듣기 민망한 쌍욕이 끊이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이들 가족 모두는 욕쟁이의 거친 말투에도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아마도 이 욕쟁이 환자는 사고로 인해 일시적으로 미쳐 제정신이 아닌 듯싶었다.

이 욕설 전문 남자는 한옥 짓는 대목수인데, 일터에서 건축용 폼을 밟고 올라가다 약 1.5미터 높이에서 떨어져 경추의 횡돌기골절과 약간의 경추부 척수액 누수 및 다리뼈가 골절된 환자였다.

다른 한 사람의 환자는 펜션에서, 늙은 주인장 대신, 주방 천장의 LED 전등을 갈다가 삐끗해 떨어져 왔다는 환자였다.

그는 키 높이의 중간크기의 사다리에서 떨어져서 갈비뼈며 손목과 척추 압박골절된 40여 세의 아주 젊은 환자였다.

이처럼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낙상사고로 인한 골절 수술 환자는 정형외과에서는 아주, 정말로 흔했다.

흔히들 일상생활에서의 헛디딤 사고가 죽음을 향한 첫걸음이랄까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치유는커녕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침 9시경, 보라색 제복의 간호사들을 대동한 수간호사가 라운딩 하였다.

"어디 불편한 곳은 없나요?"

"밤엔 숨을 쉬기가 불편하네요"

그러자 수간호사는 밤에는 산소보조장치 스위치를 2로 올리고, 낮에는 1로 낮추라고 다른 간호사들에게 지시하였다.

수간호사의 라운딩이 끝나자, 의료용품 보조기상사에서 세일즈맨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허리만큼은 수술적 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척추센터 주치의에게 뜻을 전했더니, 보조기 착용 3개월의 보전적 치료를 척추센터에서 내렸다 한다.

그런 영업상 정보를 접한 세일즈맨이 자기네 보조기를 싸게 해 줄 테니 48만 원에 맞추라고 온 것이었다. 그러겠다고 하자, 신속배달을 약속하며, 보조기를 성형하기 위하여 허리며 가슴둘레 등 치수를 재갔다.

곧이어 드레싱과 다리에 부목을 대기 위하여 나를 실은 메디컬 스트레처는 처치실로 향했다.

"악!"

산산이 부러진 발목을 잡아당기자 나는 비명과 함께 혼절할 뻔하였다. "아아악" 비명소리가 절로 나왔다. 소리 지르거나 말거나 처치실의 남자 선생님의 손속에는 자비라고는 없었다.

환자에게 있어서 병원은 어느 곳이나 무서운 곳이겠지만, 뼈가 산산조각 난 다리를 잡아당기는 엄청난 고통으로 인해서, 나에게는 이 처치실이 가장 무섭다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발끝에서 사타구니, 허벅지까지 부목을 댄 처치실의 선생님들, 방 이름 또한 처치실이라니 무시무시한 곳으로 깊이 각인되었다.

나에게 있어 오늘, 오른 다리 전체에 부목을 댄 처치실은 고통 자체였다.

특히 오른쪽 발가락과 발목은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다리 전체에 꽉 밀착된 부목 때문에 오른쪽 무릎 또한 조금도 굽혀지지 않았다.

지금 내 몰골을 설명하자면, ICU(중환자실)의 환자감시용 여러 생체신호 센서들이 몸과 바이탈 싸인 모니터에 주렁주렁 연결되어 있어, 어디 우주에서 추락한, 방어용 장비를 장착한 작은 괴물처럼 기괴하였다.

얼굴 또한 얻어터져 마우스피스를 악문 채 헤드기어를 착용한, 비장한 복싱선수처럼 여기저기 교통사고로 인한 상처로 처절하게 보였다.

내 헤친 양 가슴팍과 팔, 다리에 심전도(ECG) 전극 패드가 부착되었고, 이것으로 심장의 전기적 활동을 측정하여 심박수며 심장 리듬 이상 징후인 부정맥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또한 오른손 인지에는 산소포화도(SpO2) 센서를 부착하고 있었는데, 이것으로 혈중 산소 농도를 실시간으로 적외선과 광선을 이용해 비침습적으로 측정하고 있었고, 비침습적 혈압 커프(NIBP)를 다리에 감아 주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외계 우주공간에서 날아와 불시착한 ET의 형상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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