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불씨가 되기를 바라며
이것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정확히는 보통의 사람의, 보통의 사람에 대한, 보통의 사람을 위한 글이다. 당신은 아마 앞으로의 이야기에 공감을 할 수도, 거북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은 불편한 진실이라는 점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21세기는 무척 특별한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그 누구도 시스템의 작은 부품이 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지만, 변화의 소용돌이 속 보통의 사람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작아질 위기에 처해있다.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인식하고 변화해야만 한다. 반드시!
주 5일제가 시행된 지 13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월요병은 존재한다. 학생은 학교에서, 직장인은 일터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금요일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런데 왜 일주일에 하루 더 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삶이 여유가 없다고 느끼는 것일까? 왜 과거보다 절대적 부의 수준이 증가하고, 기술이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불행을 느껴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걸까? 왜 사람들은 먹고살기 바쁘다며 쳇바퀴 구르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일까? 무엇이 우리의 삶을 이토록 궁핍하게 하는 걸까? 우리의 미래는 어떨까? 나의 고민은 이러한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은 하루 24시간 중 우리가"나"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시스템의 의해 끌려가는 삶을 산다. 이런 삶은 애석하게도 노예와 다를 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누구든지 본성 때문에 그 자신의 주인이 될 수없고 타인에게 속하는 사람은 그 자신의 본성에 따라서 노예이다"
누군가는 반문할 것이다. 나는 독립적인 시민으로서, 스스로 사고하고 자급자족할만한 경제력이 있는데, 노예라고 치부하는 것은 너무 하지 않냐고. 하지만 역사 속 모든 노예들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던 아프리카 노예들처럼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로마나 고려-조선시대의 노예들은 주인의 집에서 벗어나 가정을 꾸리며 직업을 가지고 나름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고 심지어 많은 돈을 번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정체성은 주인에게 귀속된 노예였는데, 불행히도 많은 현대인은 그 당시 노예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죽하면 우스갯소리로 공노비, 사노비 같은 말이 등장했을까.
이 글은 현대판 노예에 관한 이야기이다. 무엇이 사람들을 현대판 노예로 만드는지. 왜 앞으로 현대판 노예의 삶이 비참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현대판 노예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 볼 것이다. 자신의 삶이 쳇바퀴같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학생이나 직장인 혹은 자식 교육의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무작정 사교육에 돈을 쓰며 불안감을 느끼는 학부모가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처럼, 이 글도 위대한 변화의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