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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Nov 12. 2017

현대판 노예의 정의

인정하기 싫지만 부인할 수 없는



앞서 자신의 삶을 통제하지 못하고 시스템의 의해 끌려가는 삶은 노예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노예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먼저 아래 다이나믹듀오 <Ring my bell> 노래 가사를 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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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얼짱의 노예

어떤 이들은 학점의 노예

느슨한 넥타이 직장인들은

몇 달치 밀린 월급의 노예

-다이나믹 듀오 <Ring my bell> 노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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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다이나믹듀오 노래를 즐겨 듣곤 했는데그중에서도 Ring my bell은 수 백번은 족히 들었던 곡이다. 이 곡을 들으면서 쏟아지는 잠에 저항하며, 놀고 싶은 욕구를 눌러가며 개미집 같은 교실에 처박혀 공부를 하는 내 처지를 보며 수능의 노예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실제로 노래 가사 속에도 얼짱의 노예. 학점의 노예, 월급의 노예 등 참으로 다양한 노예가 나온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유가 없다는 것. 각자가 나름대로 추구하는 것을 욕망하지만 (외모, 학점 그리고 돈), 이것을 얻기 위해 자유를 포기한다. 자유를 내려놓은 사람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존엄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자유란 무엇인가?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 하기 싫은 것을 거부할 수 있는 것? 아니면 개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사회적 권리? 여러 철학자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자유를 정의하지만, 내가 정의하는 자유는 '나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며 나답게 사는 것이다. 자유는 내가 나로 오롯이 존재하는 것이며, 나의 정체성이 훼손되는 것은 자유를 억압받는 것이다


다시 아까 Ring my bell 가사 속 노예들의 예로 돌아가 보자. 이들이 노예가 된 것은 나라는 정체성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외모에 집착해 성형중독에 걸린 사람들,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는 학생들, 매달 나오는 월급 때문에 하기 싫은 잃을 꾸역꾸역 하는 회사원들은 모두 자신의 정체성이 훼손된, 나답게 살지 못하는 노예들이다. 사실 이들이 특별히 불우한 경우가 아니며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현대인들은 이렇게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은 비싼 차, 넓은 아파트, 명품 그리고 이것들을 살 수 있는 돈이나 명예 따위의 세속적 가치는 탐욕스러우리만치 욕망하지만 막상 자유는 경시한다. 

                                

소름 끼치는 점은, 그 누구도 표면적으로 우리에게 노예의 삶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학습을 통해 노예의 삶을 살도록 끊임없이 주입받는다. 학교에 의해, 사회에 의해 그리고 놀랍게도 나를 낳아준 부모에 의해 노예로 만들어진다.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을 노예로 키우고 싶겠냐고 반문하는 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의외로 많은 부모들이 이런 우를 범하고 있다. 줄자로 잰 것 마냥 자식의 성적을 다른 집 자식과 비교하고, 자식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정체성을 말살한 채 획일적인 방향으로 아이들을 몰아세운다. 이처럼 끔찍한 훈육으로 인해 어릴 때부터 정신이 개조된 아이들은, 자발적 노예가 되기 위한 조건들 (이를테면 질문하지 않는 것, 비판적 사고 없이 복종하는 것 등)을 하나둘씩 갖추어가며 공장의 양산품이 되어간다. 

 

누군가를 굴종시키기 위해 무력을 쓰는 것은 삼류고, 겁을 주는 것은 이류요, 상대방이 기꺼이 스스로 복종하게끔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일류다. 이처럼 가장 효과적이면서 강력한 지배는, 피지배자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과거 지배층이 노예를 다루는 방법이 채찍을 통한 무력이었다면, 현대의 시스템은 좀 더 고차원적으로 현대판 노예들을 지배한다. 현대판 노예들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착각하지만, 결국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묶여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다닐 뿐이다. 심지어 어떤 노예들은 자신의 발에 묶인 쇠사슬이 튼튼한 지 살피며, 이것이 끊어져 자유로워질까 봐 불안해한다. 본디 강제적 복종보다는, 자발적 복종이 더 무서운 법이다.  


<자발적 복종>이라는 책을 통해 훗날 프랑스혁명에 영감을 준 라보에 시는 말한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이유 중 하나는 습관 때문이라고. 이것은 마치 사람이 말을 길들이는 과정과 비슷한데, 말에게 재갈을 물리면 처음에는 재갈을 물어뜯다가 나중에는 재갈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그리고 말에게 안장을 얹으면 처음에는 반항하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자신을 짓누르는 무거운 안장과 장신구를 뽐낸다. 현대판 노예들도 한번 자발적 복종을 하기 시작하면, 습관적으로 노예로 살아가기 쉽다. 관성에서 저항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이 스스로 노예가 된 원인이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자본주의와 디지털가 강력한 원이 됐다고 생각하는데 추후에 자세히 서술하겠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나도 현대판 노예인 상태에서 온전히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것이고,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단 한 사람이라도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에 의문을 품고 주인의 삶을 사는 것에 대해 재조명해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마 내가 주인의 삶을 살고 있는지, 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래도 모르겠다면 간단한 자가 진단법이 있다. 일요일 밤만 되면 우울함을 느끼고, 왜 사는지 모르겠으며 현재 자기 인생이 쳇바퀴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한 번쯤 의심해보길 바란다. 어쩌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쇠사슬에 묶인 현대판 노예가 돼버린 것은 아닌지. 

   

자유를 외치는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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