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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May 03. 2018

<멋진 신세계> - 길들여진 인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고

베스트셀러 SF소설이 원작인 영화 <더기버: 기억전달자>의 배경은 전쟁, 차별, 가난, 고통이 없는 평화로운 '커뮤니티'이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이 곳에서, 불행이 침범할 틈은 없어 보인다. 구성원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커뮤니티가 지정한 직업을 부여받고, 충실히 임무를 수행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행복한 삶을 살던 주인공 조너스. 그는 '기억보유자'로 임명되는데, 이는 '기억전달자'에게 인류의 역사를 전수받는 중요한 역할이다. 


기억전달자는 인류가 밟아온 발자취를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자이며, 그도 한 때는 기억보유자였다. 기억전달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기억보유자에게 전달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커뮤니티를 다스리는 원로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과거를 기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일부 선택받은 사람들을 통해 지식을 보존하도록 하는데, 기억보유자와 전달자가 바로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억전달자로부터 지식을 전수받고 있는 기억보유자

조너스는 기억전달자를 만나 역사를 접하면서, 진실을 깨우치고 충격에 빠진다. 그는 커뮤니티가 사회 안정을 위해, 개인의 기억 및 감정을 제거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가령, 커뮤니티는 매일 아침 감정을 없애는 약물을 주입하는 등의 규칙을 강제하면서, 사람들에게 일말의 개성과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사회 안정과 행복을 얻는 대가로 구성원들의 '인간다움'을 희생한 것이다. 조너스는 사람들에게 기억을 되찾아주기 위해 커뮤니티에 저항하기로 결심하지만, 사회에 몹시도 길들여진 다른 사람들의 방해에 곤란을 겪는다.   


한편, 역사적으로 모든 인간 사회에서 나타난 공통된 현상은 다음과 같다. 소수의 강자는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규칙을 정하고, 이는 -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 다수의 약자를 착취하는 구조로 이어진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의하면, 국가가 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착취적 제도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수많은 제국들은, 자국의 하층민과 정복지 시민을 착취하며 강성한 국력을 키워나갔지만,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설사 아무리 진보한 형태의 민주 국가 체제가 부상했다 하더라도, 이러한 인류의 고질적 문제 - 소수의 이익을 위해 길들여지는 다수의 대중 - 는 완벽히 해결되지 않았다. 버트런드 러셀의 표현을 빌리면, 의무란 개념은 역사적으로 볼 때,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자기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주인의 이익을 위해 살도록 유도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져 왔다. 의무에서 강제력의 세기가 약해질수록, 지배받는 사람들은 자신이 길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자발적 복종을 하기 쉽다. 고대-중세-근현대를 거치며 길들임의 수단은 채찍, 신 그리고 돈으로 진화했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에 길들여져 왔다.


인간이 너무나 쉽게 길들여지는 이유는 습관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말을 길들이는 과정을 보자. 말에게 재갈을 물리면 처음에는 재갈을 물어뜯다가 나중에는 재갈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그리고 말에게 안장을 얹으면 처음에는 반항하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자신을 짓누르는 무거운 안장과 장신구를 뽐낸다. 그런데 이것이 오늘날 인간의 모습이 아니던가?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며 뽐내는 사회적 지위 및 상류의 상징적 기호가, 사실은 자신을 길들이는 재갈이라는 것을, 이 자들은 알기나 할까? 


<더 기버: 기억전달자>는 <멋진 신세계>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듯하다. 이 두 소설이 묘사하는 언뜻 천국 같아 보이는 사회는, 인간다움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충실하게 개조된 노예들만 남은 디스토피아다. 이 책을 통해 과학과 전체주의 및 길들여지길 원하는 대중의 콜라보가, 어떤 비극을 낳는지 확인할 수 있다. 독자들이 부디 길들여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bqQUlPNqq_k

<멋진 신세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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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멋진 신세계>는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태어난, 서기 1863년을 인류의 새 기원으로 삼은 미래의 세계다. 포드 기원 632년(서기 2496년)이 시대적 배경이고,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를 그린다. 이 곳은 단일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모든 것은 정부에 의해 계획되고 시스템화 된다. 심지어 인간도 인공수정에 의해 대량 생산되고, 태어날 때부터 알파-베타-감마-델타-입실론과 같은 계급이 정해져 있으며, 주입식 교육에 의해 세뇌된 사람들은 사회에 어떠한 불만도 품지 않는다. 또한, 가족이나 사랑과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 않고, 구성원 간 섹스는 자유로우며, 촉감 영화라고 불리는 포르노가 주요 오락 수단 중 하나이다. '안정'이라는 최대선을 위해서, 사회 구성원들은 완벽히 길들여진다.  


“안정이라는 것.” 총통이 주장했다. “안정. 사회 안정이 없이는 문명은 있을 수 없다. 개인적인 안정이 없이는 사회의 안정도 없다.” ... ... 차바퀴는 꾸준히 돌아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 회전에는 감시가 있어야 한다. 그들의 회전을 감시할 인간들이 있어야 한다. 축이 있는 바퀴처럼 견실한 인간, 건전한 인간, 순종하고 꾸준히 만족하는 인간이 있어야 한다 ... ... "제군들은 행복한 거야." 총통이 말했다. ''제군들의 생활을 안락하게 하기 위해서 여하한 수고도 아낀 적이 없었다 - 될 수 있는 한 어떠 감정을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정부가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단은 공포가 아닌 쾌락이다. 정부는 '소마'라는 약을 배급하고 사람들은 울적한 감정이 생길 때마다, 이를 복용하고 즉각적인 쾌락을 얻는다. 소마로 즐거움을 얻는 대신, 인간은 고독을 상실한다.

   

분노를 진정시키고 적과 화해시키고, 인내하고 수난을 참도록 하는 소마가 있다 이 말이야. 옛날에는 대단히 어려운 노력을 거치고 오랜 수양을 쌓아야 겨우 도달되는 미덕이었지. 그러나 이제 반 그램짜리 두세 알만 삼키면 그러한 수양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말일세. 이제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다네. 그러니까 덕성의 반은 적어도 병 속에 지참하고 다닐 수 있다는 이야기야.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기독교 정신을 터득하는 것-그것이 소마의 본질일세


멋진 신세계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우선, 버나드는 가장 입체적 인물이다. 그는 멋진 신세계 속 상류층이지만, 외모 콤플렉스가 있으며 사회적 반감을 가진다. 그는 부조리에 괴리감을 느끼며, 이러한 감정을 연인 레니나와 공유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사회에 너무나 길들여져, 버나드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사회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며 변화를 꾀해보려 하지만,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쳐 타협한다. 이야기의 중후반에 드러나지만, 버나드와 그와 비슷한 친구 헬름홀츠 - 또 다른 사회 반역자 - 는 세뇌교육으로 형성된 가치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자유롭다면, 조건반사적 교육으로 노예화되지 않았다면 도대체 어떤 것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버나드, 당신은 지금 가장 끔찍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레니나, 당신은 자유로워지고 싶지 않으세요?"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합니다' "우리는 다섯 살 때부터 그 문장을 아이들에게 가르칩니다. 하지만 레니나, 다른 방법으로 행복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하지 않습니까? 예컨대 당신 자신만의 방법으로 말입니다. 타인들과 같은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말입니다."


한편, 무스타파 몬드는 사회를 지배하는 총통이다. 그는 명석한 두뇌와 함께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인문학 서적들을 금서로 지정하고, 쾌락을 장려하면서 우민화에 앞장선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선, 개인의 감정과 개성을 희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세계는 이제 안정된 세계야. 인간들은 행복해.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단 말일세. 얻을 수 없는 것은 원하지도 않아. 그들은 잘 살고 있어. 생활이 안정되고 질병도 없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복하게도 격정이니 노령이란 것을 모르고 살지. 모친이나 부친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아. 아내라든가 자식이라든가 연인과 같은 격렬한 감정의 대상도 없어. 그들은 조건반사 교육을 받아서 사실상 마땅히 행동해야만 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없어. 뭔가가 잘못되면 소마가 있지."자네가 자유라는 이름으로 창 밖으로 집어단진 것 말일세. 자유라!"총통은 여기서 웃음을 터뜨렸다. "델타 계급들이 자유가 무엇인지 알기를 기대하다니! 그들이 "오셀로"를 이해하기를 기대하다니! 정말 자네답군!"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산업화 이후 가속화된 인간의 기계화 및 전체주의에 상당한 문제의식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총통을 앞세워 문명화된 사회의 잠재적 문제들을 - 인간의 부품화, 활동적인 삶 숭배 등 - 날카롭게 풍자한다. 다음의 대사는 '과시적 생산'이 미덕이 된 현대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지겨워! 그들은 지겹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지겹기는커녕 그들은 일을 좋아한단 말일세. 작업은 경쾌하고 어린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거든. 정신과 근육에 하등의 긴장을 가져오지 않는 작업이야. 하루 일곱 시간 반의 쉽고 피로하지 않은 작업을 끝내면 소마가 배급되고 게임이 있고 무제한의 성희와 촉감 영화를 즐길 수 있단 말일세... ...  까짓것 우리는 보다 짧은 작업시간을 부과할 수도 있네. 기술적으로 하층계급의 작업시간을 하루 세 시간이나 네 시간으로 줄이는 것은 간단한 일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네들이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아냐, 그렇지 않을 거야. 벌써 일세기 반 전에 실험이 행해졌었지. 아일랜드 전역에 걸쳐 네 시간 노동제를 실시했던 거야. 결과가 어떠했지는 알겠나? 다만 불안과 소마 소비량의 증가라는 결과가 따라왔었네. 단지 그것뿐이었지. "세 시간 반이나 늘어난 여가는 행복의 원천이 되기는커녕 그 여가로부터 어떻게 하면 도피할 수 있을까 하는 강박관념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단 말일세."


어느 날, 버나드는 우연히 야만인들의 주거지를 방문한다. 이곳은 문명의 때를 묻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미지의 공간이다. 야만인들은 감정을 느끼고 사랑을 하는 등, 아직 '인간다운'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책에서 야만인들은 이렇게 묘사된다.


"어떤 이유로 지나치게 자아의식이 강해서 공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있는 곳이야. 정통에 만족하지 않고 나름대로 독특한 사상을 가진 인간들이지. 한마디로 말해서 지나치게 인간다운 인간들이야."


버나드는 야만인 존을 만나 그를 문명사회로 데려온다. 하지만 존은 비인간적인 문명에 환멸을 느끼고, 떠나고 싶어 한다. 존이 셰익스피어를 자주 인용하는 것을 보면, 그는 문학에 대한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존의 '인간다움'은 이 곳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웃음거리일 뿐이다. 그는 아웃사이더로서 처참히 고통받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개인적으로 꼽는 <멋진 신세계> 속 최고의 명장면은, 존과 총통이 나누는 다음의 대화다. 


총통이 말했다. "우리는 여건을 안락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긴  침묵이 흘렀다.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야만인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조지 오웰의 <1984>와 더불어 <멋진 신세계>는 디스토피아의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소설이다. <1984>가 묘사한 비극은 감시 및 공포였지만, <멋진 신세계>는 완전한 쾌락에 따른 우민화가 얼마나 끔찍한 상황을 야기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길들여진 채, 매일 소마를 섭취하며 멋진 신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봄직한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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