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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Jul 07. 2018

주 52시간만 일하면 망할까

서글픈 한국의 자화상

최근 한국 정부가 도입한 주 52시간 근로법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크다. 고용주의 반대는 납득할 만하다. 특히 저부가 노동집약 산업에 해당하는 영세업자들의 반응은 십 분 이해가 간다. 이들이 새로운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어떠한 수혜도 얻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나,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은 없기 때문에 이 또한 감수해야 할 성장통 이리라. 현 상황에서 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다. 생산성을 개선하거나 도태되거나. 내가 만약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장이라면 아마 초기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자동화를 추진할 것 같다. (이마저 큰 정부를 지향하는 현 정권은 달가워하지 않겠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다수의 피지배계층을 위한 개선의 과정에서 손해를 보는 소수의 지배계층은 언제나 변화에 제동을 걸어왔다. 이들은 혜택을 보지 못한 소수의 스토리를 집중 부각하거나, 부작용을 과장하는 등 미디어를 통해 선동을 해왔다. 노예제 폐지가 그랬고, 성별, 인종 간 임금 차별이나, 노조 결성, 파업, 주 6일제 등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기업과 깊은 이해관계가 있던 사람들은,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 변화들을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그런데 특기할만한 것은 주 52시간 정책의 수혜자라 할 수 있는 노동자 계층의 반발이다. 선택은 곧 포기다. 더 많은 여가 시간을 원하면 필연적으로 추가 근무 수당을 포기해야 한다. 조금 덜 일하고 덜 버는 대신 '저녁 있는 삶'을 통해, 여가 시간을 가족과 보내고 개인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이 원래 정책의 취지다. 하지만 물질주의 가치관이 팽배한 한국에서는 이는 통하지 않는 듯하다. 나는 <사실, 바쁘게 산다고 해결되진 않아>에서 이 점에 대해 기술했는데, 한국에서는 이 정책이 단시간에 효과를 보긴 어렵다. 사람들은 아마도 감소한 근로 소득을 벌충하기 위해 투잡을 하거나 외벌이에서 맞벌이로 전환하는 등, 적극적으로 가용시간 (원래는 여가에 사용됐어야 할)을 돈 버는 생산활동에 쓸 확률이 높다.


그나마 현재 이 정책의 수혜자라 할 수 있는 대기업, 공무원 등의 노동자 상위 계층은 노동시간 단축을 반길 수 있다. 하지만 미래에 자동화로 인해 자신들도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다시 말해 적게 일하고 적게 버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이들도 마찬가지로 거부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물질주의 사회의 구성원은 일반적으로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수준의 집과 차, 그리고 미디어와 광고가 쏟아내는 온갖 상품을 소비할 구매력을 갖추길 '원하게끔 학습'되기 때문이다. 바쁨에서 해방돼 여가가 주어져도 물질주의 가치관이 뚜렷한 한국사회에서는 이것이 행복의 원천이 되기는커녕 불안과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대단히 서글픈 일이다.  - <사실, 바쁘게 산다고 해결되진 않아> 中 -  


사람들이 왜 일을 하는지, 그리고 돈이 많아야만 행복하다는 미디어가 주입한 왜곡된 인식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상황은 목적이 되어야 할 인간이 결국 거대 경제 시스템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듯해서 서글프다. 여가가 없는 사람을 노예로 간주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따르면, 현재 한국인의 자화상은 현대판 노예가 아닌가! 괴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유롭지 않으면서 자신이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노예만큼 비참한 노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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