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중섭 Jan 06. 2019

우주보다 경이로운 인간

김상욱의 <떨림과 울림>을 읽고

책을 고를 때 작가 소개, 목차, 프롤로그, 에필로그를 꼼꼼히 살펴보는 편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가 어떤 결을 가진 사람이고, 어떤 의도로 이 책을 썼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등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어떤 책의 경우, 책의 도입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독자로 하여금 나머지 부분을 탐독하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물론 이런 체험은 흔치 않은 일이다. 가끔씩 이런 책을 발견할 때면 나는 소풍 가기 전날의 아이처럼 설레는 기분으로 책을 구입하곤 카페로 향한다. 김상욱의 저서 <떨림과 울림>의 경우, 나를 끌어당긴 문장은 다음과 같다.   


"우주는 떨림이다. 정지한 것들은 모두 떨고 있다. 수천 년 동안 한자리에 말없이 서 있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떨고 있다. 그 떨림이 너무 미약하여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미세한 덜림을 볼 수 있다. (중략) 인간은 울림이다. 인간은 울림이다. 우리는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한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사진은 마음을 울리고, 영화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는 심장을 울리고, 멋진 상대는 머릿속의 사이렌을 울린다. 우리는 다른 이의 떨림에 울림으로 답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나의 울림이 또 다른 떨림이 되어 새로운 울림으로 보답받기를 바란다. 이렇게 인간은 울림이고 떨림이다.".


문과 출신으로서 내게 과학은 언제나 범접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평소 문학, 철학, 사회, 경제, 경영, 역사, 정치, 에세이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잡식 독서를 하는 편인데, 과학만큼은 늘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책을 펼치곤 했다. 그런데 과학 도서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된 계기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이다. 이 책을 통해 과학도 인문이나 예술이 될 수 있으며, 서로 무관한 듯 보이는 이 분야들이 사실 거대한 공통성을 공유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생각하는 힘'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과학자, 수학자, 미술가, 음악가, 작가, 사상가 등의 공통점은 남들보다 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어떤 현상을 몰입해서 관찰하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창조적 사고를 하며, 특정한 방식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구현한다. <떨림과 울림>을 읽으며 김상욱도 이런 부류에 속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외적으로 책 쓰는 과학자로 알려진 그를 함축적으로 정의하는 표현은 '생각하는 사람'이 적절해 보인다.


나는 과학자 특융의 엉뚱함과 괴짜스러운 면을 사랑한다. 가령 "우리 오른손 집게손가락 끝에 있는 탄소 원자 하나가 먼 옛날 우주 어느 별 내부의 핵융합 반응에서 만들어졌다"거나 "우리는 숨을 쉴 때마다 한 번에 500밀리리터 정도의 공기를 들이마신다." 혹은 "달에서의 하루는 자전주기인 27.3일이다. 지구에서처럼 하루의 3분의 1을 일한다면 9일을 꼬박 일해야 퇴근할 수 있다."와 같은 주제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사실 대부분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어떤 과학자들은 저렇게 사소해 보이는 것들을 알아내기 위해 실험과 연구에 평생을 바치기도 한다. 우리가 공기처럼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과학의 혜택은 모두 저런 괴짜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내게 과학자로 살아야만 하는 강제적 의무가 주어진다면, 나는 아마 천문학자가 될 것 같다. 우주는 보면 볼수록 경이롭다. 지구와 태양계가 아주 보잘것없는 우주의 먼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두렵지만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주는 왜 생겼을까?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기막힌 상상력을 동원해 신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냈지만, 견고했던 신의 입지는 근대 이후 세속주의에 의해 서서히 약해지고 있다. 우주가 대폭발로 시작됐다는 빅뱅이론 역시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왜 폭발했을까? 왜 하필 그때 폭발한 것인가? 우주 말고 다른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지구 말고 다른 행성에 생명체가 살고 있지는 않을까? 이러한 의문은 분명 탐구할 만한 주제이며 언젠가 위대한 과학자에 의해 밝혀질 문제라고 생각한다.  

<떨림과 울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 "진화에 목적이나 의미는 없다. 의미나 가치는 인간이 만든 상상의 산물이다. 우주에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의미는 없다. 그렇지만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 속에서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그렇다. 우주에는 의미가 없다. 단지 광활한 무 (無)만 있을 뿐이다. 지구는 우주를 떠도는 수많은 먼지 같은 행성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기적적인 우연의 종합에 의해 어렵사리 지구에 터전을 잡은 인간 존재 역시 원래는 의미가 없어야 마땅하다. 인간은 단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원자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무의미한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원자 분해' (죽음)라는 동일한 결말이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76억 명의 인간들은 각자가 맡은 연극의 주인공이 되어 살아간다. 문명이라는 환상의 세계 속에서 떨림과 울림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런 점에서 미루어 볼 때, 인간을 단지 원자 덩어리로 치부하는 것은 같은 종으로서 조금 억울하다. 인간은 우주보다 경이롭다.


================================================

독서할 시간이 없는 분들을 위해 책을 리뷰하는 '21세기 살롱'이라는 온라인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3분만 투자하면 책 한 권의 개괄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독은 큰 힘이 됩니다.  

유튜브페이스북인스타그램

https://www.youtube.com/watch?v=Nh5goVYVicc

매거진의 이전글 새해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