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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Jan 28. 2019

미래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사랑하고, 생각할까?

리처드 왓슨의 <인공지능 시대가 두려운 사람들에게>를 읽고

리처드 왓슨의 <인공지능 시대가 두려운 사람들에게> 원제는 <Digital Vs Human: How We'll Live, Love, and Think in the Future>으로 이 책은 미래의 인간사회를 조망한다. 작가는 디지털이 우리의 삶을 잠식하면서 벌어질 일들에 대해 풍부한 사례를 들어 충실히 설명한다. 내가 인상 깊었던 구절은 작가가 책의 도입부에 인용한 더글러스 애덤의 글이다. "당신이 태어났을 때 이미 세상에 존재했던 것들은 모두 정상이다. 그 후로 당신이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새로 생긴 것들은 아주 흥미롭고 획기적이다. 당신이 서른이 된 후에 새로 생긴 것들은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며 당신이 아는 문명의 종말이 시작되었음을 예고한다. 그러다 다시 10년 정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것들이 꽤 괜찮다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된다."


4차 산업혁명의 파괴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마치 세상이 끝나버릴 것처럼 걱정한다. (나도 비관론자 중 한 명이다)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형태의 독재가 출현하고, 시민들이 로봇에 밀려 일자리 경쟁에서 도태되며, 심지어 AI에 의해 인간 종이 멸종할 것이라고도 비관한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재앙이 실제로 실현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다만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점점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우리의 삶이 기존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사람들이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대신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스스로 깊이 사유하기보다는 인터넷에서 손쉽게 획득한 얄팍한 지식을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고, 진짜 본인의 모습보다는 이것에서 파생된 온라인 자아에 집착하는 모습은 더 이상 새로운 충격을 주지 않는다.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간의 삶이 정말로 고통으로, 지옥으로 변하는 건 두 시대, 두 문화, 두 종교가 서로 교차할 때뿐입니다. 어떤 고대인이 중세에 살았어야 했다면, 그는 그것 때문에 애처로우리만치 숨 막혀했을 겁니다.  그건 한 야만인이 우리의 문명 한가운데에서 숨 막혀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꼭 같은 이치입니다." 그렇다. 시대마다 준칙으로 여겨지는 패러다임이 있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태동하는 변곡점에 놓인 사람들은 적지 않은 혼란을 느껴야 한다.

 

미래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사랑하고, 생각할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래는 분명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헤르만 헤세가 지적했듯이 바로 지금이 두 패러다임이 교차하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내가 볼 때, 지금 2019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 쪽으로 나아가는 것은 두렵고 저 쪽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결국 우리는 경제성장 및 기술신봉론자들에 의해 급격한 변화를 체험할 것이고 이로 인해 상당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적 갈등 폭발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세계화에서 소외된 계층이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이라는 특이점을 만들었다면, 기술의 발달에서 소외된 계층이 또 다른 특이점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나는 더글러스 애덤이 말했던 것처럼 어쩌면 미래 사회를 우려하는 것이 단지 우리 세대의 기우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미래 세대의 후손들이 정말 SF 영화들 - <레디 플레이어 원> (궁핍한 현실을 사는 사람들이 가상 세계로 도피해 아바타를 진짜 자신이라 착각), <그녀> (주인공이 알고리즘과 사랑에 빠짐),  <네버 렛 미고> (자의식을 지닌 클론들은 인간 주인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시 장기를 척출당함) - 에 나오는 것처럼 살게 된다면, 이것을 지켜보는 '야만적인 우리 세대는' 아마 불편한 감정을 느끼겠지만,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것을 당연한 삶의 표준으로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는 것은, 미래의 후손들은 자신들이 기술의 편리함을 택한 대가로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조차 인지하게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미래 사회에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표징이 역사책 (만약 책이 존재한다면)이나 예술, 혹은 극히 일부의 인간들에게서나 존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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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vMkGKdTTXPk

 세상에 존재했던 것들은

모두 정상이다. 그 후로 당신이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새로 생긴 것들은 아주 흥미롭고 획기적이다.

당신이 서른이 된 후에 새로 생긴 것들은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며

당신이 아는 문명의 종말이 시작되었음을 예고한다.

그러다 다시 10년 정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것들이 꽤 괜찮다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된다.

당신이 태어났을 때 이미 세상에 존재했던 것들은

모두 정상이다. 그 후로 당신이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새로 생긴 것들은 아주 흥미롭고 획기적이다.

당신이 서른이 된 후에 새로 생긴 것들은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며

당신이 아는 문명의 종말이 시작되었음을 예고한다.

그러다 다시 10년 정도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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