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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Jan 01. 2019

새해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읽고 

매년 12월 31일 11시 59분 59초는 특별하다. 처음과 끝, 설렘과 아쉬움,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잠시의 순간이 머문 후,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힘찬 함성을 외친다. "해피뉴이어!" (시간을 시분초로 인위적으로 쪼갠 것이 불과 수 백 년도 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호모 사피엔스는 확실히 상상의 세계 속에서 적응해 사는 능력이 탁월하다) 화려한 폭죽이 하늘을 수놓고 음악이 울려 퍼진다. 거실에 모여 앉아 티비를 보던 가족들은 가정의 평화를 기원한다. 연인들은 그윽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곤 낭만적인 밤을 개시한다. 번화가에선 흥에 취한 이들은 용감하게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하이파이브를 한다. 제 짝을 찾지 못한 청춘들은 클럽이나 바에 모여 샴페인을 터뜨리고 외로움도 함께 배설한다. 이 환희의 순간에 가장 감흥이 없는 자는 아마도 노인일 것이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에게 희망찬 새해의 카운트다운은 오히려 죽음을 알리는 사자 (使者)의 소리처럼 느껴질 수 있다.

새해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루고 싶은 새해 목표를 세우기 전에, 가장 먼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 죽음이다.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할 수 있다. 보통 새해에 계획을 세우는 것들이 - 시험공부, 승진, 재테크 등 - 어느 정도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삶의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다. 만약 이번 년에 죽는다는 것을 상상해보라. 과연 이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평소에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들 중 상당수는 어쩌면 우리의 삶에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죽음의 프리즘을 비춰보면 삶의 진정한 우선순위를 명확히 알 수 있지만,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다. 인간은 타인의 죽음만을 체험하기 때문에 자신이 언제든 장례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망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30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유별나게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열심히 일하고 돈 많이 벌어서 행복한 (혹은 남들에게 행복하게 보이는) 삶을 사는 것'이 인생 최대 목적인 보통의 또래 친구들과 죽음에 대해 논하는 것이 쉽지 않거니와, 나이가 더 많은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직 어린놈이 무슨"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나는 죽음이 언제 어디서나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문에 나는 종종 출근하는 길에 "만약 오늘 밤에 죽으면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 만족스러울까"라는 공상을 하거나 "나중에 노인이 돼서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새해도 마찬가지다. 한 해를 시작하는 설렘과 기대가 있는 반면 생의 잔고가 차감되고 죽음에 한 층 가까워졌다는 야릇한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잘 사는 (혹은 잘 죽는)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골몰했고, 오늘을 최대한 맛있게 보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관한 생각을 <사실, 바쁘게 산다고 해결되진 않아>에서 밝혔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인생이란 기차여행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는 매일 기차에 탑승한다. 기차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역에서 승하차를 반복하고, 역들 간의 구분이 희미해지며 열차 밖 풍경이 단조로워질 때쯤, 언젠가 죽음의 종착역에서 멈출 것이다. 잘 사는 인생이란 매일 아침 내리는 오늘의 역에서 일상의 행복을 발견하고 환희를 경험하며 충만한 감정을 느끼는 것일 테다. 하지만 바쁨은 열차에 가속을 붙이고 질주하게 만든다. 열차는 죽음을 향해 빠르게 달리고, 그 과정에서 지나간 소중한 것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존재의 상실을 부추기는 바쁨은 본디 자살과 같다.

죽음은 젊음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일반적으로 죽음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것은 노인들이다. 노인들이야말로 육체 노화 및 건강 악화 때문에 죽음을 외면하려야 할 수가 없는 처지다. 탑골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들을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얼마 남지 않은 미래와 멀리 지나쳐 온 과거의 중간 지대인 지금, 노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노인들의 청춘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노인들은 과연 인생의 어떤 점을 후회할까? 노인들이 만약 파우스트 박사처럼 다시 젊음을 찾을 수 있다면 새롭게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 노인들도 한 때는 젊었으며, 나도 언젠가는 이들처럼 늙을 것이다. 젊음은 단지 생에 일시적으로 주어진 보너스에 불과하다"라는 지극히 단순하면서 두려운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그렇다. 모든 사람들은 시간에 젊음을 탈취당하고 늙는다. 어젯밤 새해에 카운트다운을 함께 외치던 젊은 연인도, 당당히 민증을 내세우며 처음 술집에 들어간 20살도, 클럽 위 테이블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며 현란한 댄스를 추던 섹시한 여자도 모두 늙고 쭈글쭈글해진다. 때문에 젊음을 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늘을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남은 날들 중에서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책에서 영감을 받았기에 제목도 유사하게 지었다. 이 책은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담백하게 풀어내고 있다. 참고로 김영민 교수는 <추석이란 무엇인가> 칼럼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산 바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에 반가움을 느꼈다. 그의 글에 배어있는 냉소, 연민, 유머를 애정 한다. 만약 아침마다 죽음을 떠올리는 것이 견딜 수 없이 거북하고 우울할 것 같다면, 적어도 새해만큼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자. 새해는 죽음을 생각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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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도저히 우울해 견딜 수 없다면, 적어도 새해만큼은 죽음을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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