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 #1
오늘날 현대 사회는 창살 없는 거대한 노예 수용소이다. 문명은 노예들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감독자이자, 곧 노예 수용소 그 자체로서 기능한다. 풍족한 물질과 편리한 이기 (利器)라는 덫에 걸린 사람들은 문명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을 송두리째 헌납한다. 문명이라는 목적을 위해 인간은 수단으로 존재할 뿐이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낸 문명이 이제는 오히려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셈이다. 탐욕과 부채가 돼지처럼 살을 찌울수록, 문명이 힘을 키우며 발전할수록, 사람들이 체험하는 ‘자기 소멸’의 상태는 심화된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문명과 인간의 주종 관계가 뒤바뀌어 버린 작금의 사태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따라서 문제의 인식이 절실한 상황인데 이를 위해선 공감을 유발하고 주의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즉, 문명의 영향력 하에 놓인 선진국과 개도국,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낄만한 사례들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인식> 장에서는 문명의 노예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몇 가지 증후군을 다룰 것이다. 이 장을 통해 독자들이 다음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는 삶의 주인인가 혹은 문명의 노예인가?” 만약 이 장에서 언급된 몇 가지 증후군들이 중복적으로 자신에게 해당된다고 느낀다면 그는 십중팔구 후자의 상태일 확률이 높다.
문명은 인류의 노예화를 위해 바이러스를 살포한다. 초기에 미미한 수준이었던 바이러스는 증식을 거듭해 치명적인 질병으로 둔갑하고 문명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한다. 바이러스는 시대에 따라 나름의 특성을 지니며 때때로 진화하고 형태를 바꾸기도 한다. 착취를 정당화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종교, 광기 어린 전체주의나 전쟁을 유발하는 민족주의 등은 모두 문명이 퍼뜨린 바이러스의 종류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문명의 노예가 되어 자신을 소멸시키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한다. 마치 나치에 선동당한 수많은 평범한 독일 시민들이 2차 세계 대전 당시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문명이 퍼뜨린 바이러스는 진화를 거듭해 오늘날 ‘불안’이라는 심리적 상태로 불린다. 우리는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다. 불안은 일종의 사회적 규범이자 강제적 의무이다. 밤낮으로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문명은 말한다. “불안에서 자유롭고 싶은가?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라, 가급적 많은 것을 소유하라, 열심히 일하라, 빠르게 달려라!” 어떻게든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은 우리는 문명에 순종하고 길들여진다. 이것이 문명의 노예로 전락하는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다. 불안의 소멸을 위해 문명이 내민 해결책이 사실은 자기 소멸을 야기할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깨닫지 못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동하는 공포>에서 “공포가 가장 무서울 때는 그것이 불분명할 때, 위치가 불확정할 때, 형태가 불확실할 때, 포착이 불가능할 때, 이리저리 유동하며, 종적도 원인도 불가해할 때”라고 적었는데 이는 불안도 마찬가지다. 불안은 불확실성을 먹고 자란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은 급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역시 문명이 의도한 결과이다)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술발전이 가속화되면서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바뀌는데도 이를 따라가는 것이 벅차다.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한 ‘저 쪽의 일’이 ‘이 쪽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뉴스에 촉각을 세우며 벌벌 떤다. 미래가 극도로 불확실하기 때문에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관용과 배려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전례 없는 수준의 불확실성과 불안의 증식은 분명 최근에 퍼진 문명의 바이러스다. 예를 들어, 중세 시대에 살았던 사람에게 수십 년 후를 예측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신은 여전히 절대자일 테고 종교 세력은 건재할 것이며 생활양식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삶은 부모의 신분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아이들은 부모의 삶을 통해 본인의 미래 모습을 투영해볼 수 있었다. 즉, 과거에는 견고한 사회 질서와 보수적인 규율에 의해 변화의 가능성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적었고 불안의 수준도 미미했다. 만약, 중세시대 사람들에게 “미래의 후손들은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 수준의 물질적 풍요와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평생 불안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라는 사실을 들려줘도 이들은 현대인의 고충을 전혀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불확실성에 의해 불안이 자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보다 근본적 원인은 따로 있다.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은 대개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허영심에 기인한다. 우리는 타인의 관심에 둘러싸여 적당히 으스대면서 뽐내고 싶어 한다. 달콤한 칭찬 앞에서 짐짓 태연한 표정을 짓지만 또 한 번의 칭찬을 듣기 위해 의도적으로 겸손을 떠는 것이 인간의 천성인 것이다. 이와 같은 허영의 일반성에 대해 <팡세>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허영은 사람의 마음속에 너무나도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것이어서 병사도 상것도 요리사도 인부도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찬양해줄 사람들을 원한다. 심지어 철학자도 찬양자를 갖기 원한다. 이것을 반박해서 글 쓰는 사람들도 훌륭히 썼다는 영예를 얻고 싶어 한다. 이것을 읽는 사람들은 읽었다는 영광을 얻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렇게 쓰는 나도 아마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마 이것을 읽을 사람들도”
허영은 태아가 어머니로부터 느끼는 원초적 애정과 연관이 있다. 태아는 어머니의 양수 속에서 사려 깊은 관심과 보호를 받고 있다는 원초적 애정을 느낀다. 그러나 탄생과 동시에 탯줄을 떼어냄으로써 태아는 어머니와 ‘분리’되고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한 인간이 느끼는 원초적 애정은 탄생과 더불어 빠르게 휘발되기 때문에, 우리는 원초적 애정의 상실을 타인으로부터 받는 애정으로 보상받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아낌없이 애정을 주었던 어머니와는 달리, 우리는 남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 – 멋진 외모, 화술, 사회적 지위, 재력 등 - 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회화를 통해 학습하고, 이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속엔 허영의 씨앗이 뿌려진다.
현대사회에는 허영을 효과적으로 증폭시키는 확성기가 여러 대 설치되어 있다. 미디어와 광고가 대표적인 예이다. 각종 미디어와 SNS는 타인과의 비교를 조장하고 허영을 장려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삶이 각종 쇼 프로그램 및 SNS를 통해 낱낱이 대중들에게 공개되고, 사람들은 더 많은 ‘좋아요’를 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가상 세계에 몰두한다. 과거에는 결코 불가능했던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비교 및 경쟁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각종 기호로 범벅이 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광고 폭격에 노출되고 유행이 시키는 대로 지갑을 연다. 값비싼 명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물건이 아닌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는 것이 더욱 타당한 표현이다. 사치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중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언제나 새로운 고급 기호를 만들어 냄으로써 상류층의 허영을 충족시키는 것에 봉사한다.
허영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간파한 문명은 교묘한 규칙을 만들었다. 문명은 세속적 성공과 명예 추구를 모두가 준수해야 할 규칙으로 지정하고 우리에게 출세할 것을 지시한다. 때마침 근현대에 접어들어 신분제가 붕괴하고 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이러한 규칙이 공고해지는데 강력한 동인이 되었다. 이제 인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출신이라는 은총 (혹은 저주)에 의해 전적으로 인생이 결정되었던 과거 대비, 이제는 노예의 후손이 유명한 운동선수나 기업가 심지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론적으로 누구나 열심히 살면 중산층이 될 수 있었고 미디어는 자수성가한 사람들을 다루며 ‘하면 된다’는 희망을 불어넣었다.
긍정성의 과잉은 불안을 증폭시키는데 한몫했다. 긍정의 시대에 마침내 사람들은 자유를 얻은 듯했지만 역설적으로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이제 실패와 가난은 운명의 여신의 책임이 아닌 노력하지 않는 자신의 몫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사람들을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굳게 막혀있던 계층 간의 벽이 허물어지자 모든 계층은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 문명이 설정한 목표를 향해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 병졸들이 되어버렸다. 성공이라는 신기루를 좇으며 끊임없이 불안을 느껴야만 하는 가련한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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