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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Mar 24. 2019

성공하는 제국의 지배 방식

#1-6 진화하는 제국주의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성공한 제국들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법칙이 있다. 성공하는 제국은 개방적이고 관용적이며 혁신을 장려하는 포용적인 정치적 경제적 제도를 갖추고 있다. 또한, 성공하는 제국은 피지배자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제국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게끔 만든다. 반면, 실패하는 제국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며, 착취적인 정치적 경제적 제도는 혁신을 제약한다. 게다가 실패하는 제국은 중앙집권적인 방식으로 피지배자를 통제하고 억압한다.


성공하는 제국의 법칙 중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식민지를 지배하는 방식이다. 성공하는 제국은 식민지배를 위해 야만스러운 폭력이나 강제력을 사용하는 법이 거의 없다. 오히려 교묘하게 피지배자들의 마음을 조종해 이들을 제국의 신민으로 동화시킨 뒤 진심 어린 지지를 이끌어낸다. 나치의 선전 장관 요제프 괴벨스가 “사람들이 자신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유의지로 행동한다고 착각할 때 선동은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한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제국의 지배력도 식민지 시민들이 자율성을 지니고 있다고 착각할 때 극대화된다. 조지 오웰의 <1984> 주인공이 결국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된 것처럼 성공하는 제국의 식민지 시민들은 진심으로 제국을 찬양한다.


고대의 로마 제국, 근대의 대영제국 그리고 현대의 미국 제국은 모두 성공한 제국의 법칙을 따른다. 따라서 이들의 식민지배 방식 역시 매우 유사하다. 우선, 로마제국을 살펴보자. 기원전 8세기에 작은 도시국가로 출발한 로마가 1,000년 넘게 광활한 영토를 지배하는 제국으로 거듭날 것이라고는 건국 초기 로마인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따르면, “로마인들은 스스로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족이나 게르만 족보다 못하며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 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 인보다 뒤떨어졌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수많은 역사학자들은 로마 제국의 성공 요인으로 개방성과 관용을 뽑는다. 로마인들은 보수적인 민족주의자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로마가 식민지를 점령한 뒤 가장 공을 들인 것은 패자들의 참수, 재산 몰수, 노예화가 아니라 지역의 엘리트층을 대상으로 한 회유였다. 로마는 식민지 엘리트층이 로마제국의 일원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하게끔 만들고 싶었다. 이를 위해 로마는 식민지 엘리트층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고 기존의 지위를 보장하는 파격 대우를 실시했다. 그 결과, 식민지 엘리트층은 로마 제국에 복종하는 쪽을 택했고, 노예와 자유인으로 구성된 식민지 시민들이 다 같이 단합해서 로마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크리스토퍼 켈리는 <로마제국>에서 로마 제국의 성공 비결이 식민지 엘리트층에게 자율성을 부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로마 제국의 성공 열쇠는 지방 엘리트층에 있었다. 정복 초기의 정신적 충격을 견뎌내고, 조직적인 저항은 가망이 없다고 단념해버린 사람들은 지배 권력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분명 이득을 챙겼다. 실제로, 많은 속 주민 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지역에서 기존 과두 지배자 그룹이 경쟁자 없이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을 강화한 것에서 로마의 지배를 실감했다.”


무시무시한 성공을 거둔 근대 대영제국의 식민 지배방식 역시 로마의 사례와 비슷하다. 대영제국이 그토록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배가 중앙집권적인 방식이 아닌 식민지 엘리트층을 회유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대영제국은 식민지 권력을 그 지역에 사는 엘리트층에게 넘겨줌으로써 최소의 비용을 들여 지배구조를 유지했다. 예를 들어, 대영제국이 인도를 지배할 당시 인도의 인구는 수억 명이었지만 이들을 관리 감독하는 인도 행정부의 인력은 1,000명을 넘기지 않았다.


피지배자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대영제국의 식민 지배방식은 기존 유럽 열강들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이와 관련, 니얼 퍼거슨은 <광장과 타워>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나폴레옹의 단명했던 유럽 제국과는 달리 대영제국은 온갖 세세한 일까지 다 챙기는 천재 한 사람이 운영하는 게 아니라, 점잖고 예의 바른 아마추어들의 클럽으로 운영되는 조직이었다. 이 아마추어들은 별로 힘들여 노력하는 모습도 없이 설렁설렁 상급자의 위치를 유지했지만, 그 아래에서는 전혀 드러나지도 인정받지도 못하는 가운데 현지의 앞잡이들과 토착민 협조자들이 온 힘을 기울여 애를 쓰고 있었다. 대영제국의 팽창에 있어서 금융부터 선교 사업에 이르는 거의 전 측면이 이러한 방식으로 관리됐다. 그 ‘총본부’는 런던에 있었지만, ‘현장 요원’은 ‘토착민들 편’이 되는 기미만 보이지 않는 한 상당한 자율성을 누렸다. 어떤 경우에는 영국 중앙 정부의 지휘가 거의 전혀 없는 가운데에서 대영제국의 영향력이 확장되는 경우도 있었다.”


미국 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앞서 미국의 제국주의를 주도하는 것은 상인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지구를 통째로 삼킴으로써 상인들은 자본주의의 교리를 전 세계로 확산하는 데 성공했다. 상인들이 주축이 된 미국의 식민 지배는 표면적으로 대단히 평화롭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행해진다. 어느 누구도 채찍을 휘두르며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돈을 벌어오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매일매일 쏟아지는 광고 폭격과 사치의 의무화, 인플레이션, 불안한 미래 등이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게 만들 뿐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열심히 노력해서 출세하면 된다. 부자가 되고 말고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이다.   


그러나 미국의 식민지배는 결코 평화롭지도, 자유롭지도 않다. 한 때 미국의 경제 저격수로 일했던 존 퍼킨스는 <경제 저격수의 고백>에서 미국이 자국 기업과 정부의 이익을 위해 세계 각국의 경제를 계획적으로 파탄으로 이끌었다고 폭로한다. 그에 따르면, 경제 저격수의 역할은 공식적으로는 개발도상국의 경제계획을 돕는 것이지만 실상은 경제를 망가뜨려 ‘합법적 방식으로’ 막대한 돈을 털어내는 것이다. 미국의 요구에 동의하지 않으면 가차 없는 경제제재와 더불어 금융자본의 공격이 개시된다. 이렇게 뜯어낸 돈은 미국의 다국적 기업 및 고액 자산가의 지갑으로 고스란히 들어가고 이 과정에서 회계 부정, 정치 개입, 섹스, 살인 등 온갖 비열한 수단이 동원된다.



북저널리즘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7월에 책이 출간됩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내용을 일부 삭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ookjournali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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